시작페이지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즐겨찾기추가
로그인 회원가입 | 아이디찾기 | 비밀번호찾기 | 장바구니 모바일모드
홈으로 와싸다닷컴 일반 상세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4.자작나무 숲사이로 흐르는 로망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3-08 20:21:47
추천수 2
조회수   962

제목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4.자작나무 숲사이로 흐르는 로망스

글쓴이

정하엽 [가입일자 : 2002-11-28]
내용
시계를 보니 밤12시 정각 여행 3일째 1월 30일을 기차에서 맞는다.
새로 들어온 두사람의 젊은이는 잠잘 생각이 없는지 둘이서 한참 떠들고 있었지만 나는 다시 스르르 잠들었다.

눈을 뜨니 8시49분. 밤새 몇번 뒤척이긴 했지만 그런대로 잘잤다.
처음에는 다리를 똑 바로 펴고 누워자려 발끝이 침대의 걸쇠에 걸려서 힘들었는데 잠들면서 몸이 알아서 자기 편한자세를 찾아간다.
기차는 브레야 라는 곳을 지났다. 지도를 보면 블라디보스톡에서 북쪽으로 달려 하바로프스크에 도착하고 거기서 부터 본격적으로 서쪽으로 달리는 것으로 나오지만 나침반을 보니 아직 기차는 북쪽을 향하고 있다.
어젯밤에 탔던 두친구는 건너편 침대 아래위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다.

창밖을 보려는데 차창 가장자리는 두꺼운 성에가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 놓았다.
어린시절 입김이 나는 방안에서 자고 일어나면 머리맡에 걸레가 얼어있고, 창호지를 바른 여닫이 문을열면 마루끝 유리창에 항상 같은 모양의 성에가 끼어있었다.
재미삼아 손가락으로 긁어 본다.





세수를 하러 화장실로 간다. 어제 손님이 없어서인지 잠겨있던 객차 뒷쪽 화장실이 오늘아침에는 열려있다.
러시아는 거의 모든 세면대의 마개가 없다. 적어도 15일동안 내가본 세면대는 모두 그랬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마개대용 노란두껑으로 물빠지는 구멍을 막고 물을 받아보니 탁한 회색빛이다.
그래도 그물로 세수도 하고 이빨도 닦고 나오니 기분이 상쾌하다.
좁은 복도를 비틀거리며 걸어서 방으로 돌아오니 배가 조금 고프다.
무엇으로 아침을 먹을까 생각하다가 우선 차한잔을 마시기로 하고 가방을 뒤져본다.
출발전날 집안 여기저기에 돌아다니는 이런저런 티백차를 모두 들고 나왔는데 가장 좋아보이는 놈을 꺼냈다.
Darjeeling HImalayan black tea
차를 마시면서 아이팟을 꺼내 쇼스타코비치의 Jazz 모음곡을 선택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눈쌓인 숲을 바라보니 음악과 완벽하게 어울린다.
예전 언제인지 모르지만 처음으로 이음악을 들었을때 머리속에 그려진 그림이 생각난다.
눈이 푹푹 쌓이는 벌판을 지나면 나타나는 숲속 아담한 저택 환하게 불이켜진 그집에는 성장을 한 남녀가 환한 얼굴을 하고 왈츠를 추고 있는 모습이다.

오전 10시 35분 기차에 오른지 24시간이 지났다. 지금까지 달린 거리는 1380km
그런데 좀 이상하다. 막연히 내일아침이면 이르쿠츠크에 도착할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48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것이 된다. 일정표를 다시 확인해보니 아직 두밤을 더자야 하는 것이다.
역시 만만한 거리가 아니었구나.

카메라 배터리가 방전이 되어서 충전하러 복도로 나갔다.
아침에 화장실에 갈때 본 200 B 이라고 써진 화장실앞 콘센트에 꽂으니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복도쪽에 100 B 라고 써진 콘센트에 꽂으니 불이 들어온다. 다행이다.
카메라나 아이팟이 그저 여행물품의 하나지만 그 유용성은 같은 크기의 다른 물품과 비교할바가 아니다.
이제 유일한 걱정은 디카 메모리 용량이다. 모두 3개의 메모리에 12기가를 준비해왔지만 모자랄지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카메라 배터리 충전을 하면서 복도에 서서 경치를 구경한다.
둘다 먼지낀 2중창을 통해서 보는 비슷한 풍경이지만 복도에 서서 보는 풍경은 뭔가 좀 달라 보인다.

아이팟의 음악을 '해변의 노래'로 바꾼다.
아이들의 합창이라 음절하나하나가 가슴에 꽂힌다.
시베리아 벌판이 주는 막막함과 이노래의 애잔함이 어우려져 가슴속에 바람이 하나 휙하고 지나간다.

음악은 바뀌어 므라빈스키가 지휘하는 차이코프스키 심포니 6번이다.
처음 이곡을 들었을때 언젠가는 꼭 러시아에서 들어보리라 생각했는데 지금에야 그꿈을 이룬다.
볼륨을 최대한 올려놓고 눈을 가늘게 감는다. 실루엣으로 보이는 자작나무가 뭐라고 말을 거는듯 하다.
지금이 해지는 저녁무렵이라면 분명 눈물이 한방울 뚝 하고 떨어졌을 것이다.
1악장이 끝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두친구는 여전히 꿈나라다. 어지러진 테이블을 보니 어젯밤 늦게서야 잠든 모양이다.


블라디보스톡 시간 오후 2시 14분 스마노브스카야 도착 1567 Km 지남.
침대에 누워 아이팟으로 닥터지바고를 열었다.

17년전 쯤 왕십리 자취방에서 시각장애인용 영어자막 해적판으로 처음보고, 그로부터 8년후쯤 경향신문사 뒤 문화체육관이 잠시 영화관으로 쓰이던 시절 그곳에서 70미리로 본것이 두번째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 침대위에 누워서 세번째로 본다.
공간이 공간인지라 대사하나 장면하나가 오롯이 가슴속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지바고가 전쟁에 참여했다가 라라와 다시 만나는 장면까지 보고 아이팟 충전을 위해서 잠시 휴식이다.
그사이에 일어난 러시아 두친구는 음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지 이어폰을 한쪽씩 나눠끼고 내내 음악만 듣고 있다.
커피를 마시려고 물을 받으러 나가면서 인스탄트 봉지커피를 하나씩 주는데도 멀뚱멀뚱 고맙다는 표정조차 없다.

잠시후 백인친구가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침대위에 있는 나에게 봉지하나를 건넨다.
열어보니 해바라기씨다.

해바라기 씨를 받아드니 오랜된 영화 '해바라기'가 떠오른다.
전쟁으로 실종된 남편을 찾아 소련까지 찾아갔지만 남편은 부상으로 낙오당한 자신을 돌봐주던 소련 여인과 같이 살고 있었다던가 하는 줄거리로 기억된다.
영화 여기저기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해바라기 밭이 장관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들은 해바라기씨를 까서 먹기도 하고, 뜨거운물로 차를 우려내서 먹기도 한다.
이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 이빨로 까보려 했지만, 알만 쉽게 까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않았다.
정성을 생각해서 먹어주긴 해야겠는데,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여기저기 흩어지고 버려지는 것이 더 많았다.
양도 적지않아 이르쿠츠크에 도착할때 까지 과연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블라디보스톡 시간 오후 3시 54분 1689 km를 달려 우슈문 이라는 작은 역에 도착했다.
기차는 러시아특유의 하늘색 목조건물앞에 정확히 섰다.
아담한 역사앞에 작은 레닌상이 서있고 그앞에 놓여진 붉은꽃 두송이가 하얀눈위에 피빛처럼 빛난다.





기차안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조심성은 오히려 사라진다.
방안에 지갑과 카메라를 그냥두고 나오고 충전중인 아이팟은 복도에 그냥둔다.
처음본 사람은 경계하지만, 두번째 보면 조심성이 사라지고 말한마디 나누지 않아도 좁은 공간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내면 근거없는 믿음까지 생긴다.
사실 여행지에서는 이런 방심은 경계해야 한다.
서울에서야 뭔가 없어지더라도 조금 속상하고 경제적 손실이 전부이지만, 이곳에서는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여행을 완전히 망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첫인상을 많이 믿는 편이고 그 느낌이 틀린적은 거의 없었다.

좁은 공간에서도 하루는 간다.
복도로 나가서 자작나무 숲사이로 해가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해가 나무위에서 부터 점점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하얀눈과 하얀나무 파란하늘로 뚜렷이 대비되던 색깔에서 파란하늘이 점점 여러가지 빛깔로 나누어진다.
아래의 붉은색에서 위로갈 수록 주황색, 노란색 파란색으로 변한다.
흰색눈은 점점 푸른 빛을 띄기 시작한다

흰눈위로 끝없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 그 사이로 쇼스타코비치의 로망스가 볼쇼이 합창단의 장중한 목소리로 흐른다.

가슴깊이 서러움인지 최고의 아름다움 앞에서 저절로 나오는 감동인지 커다란 한숨이 내려앉는다.

기차가 지나가는 작은 마을, 낮게 웅크린 작은 집들의 굴뚝에서는 마치 그림처럼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따스한 불빛이 창문사이로 흘러나오지만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 여행중 메모리 분실사태로 인하여 게시물에 있는 대부분의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구한 자료사진임을 밝힙니다
추천스크랩소스보기 목록
  • 광고문의 결제관련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