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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환경 또는 변화에 대한 부적응 현상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3-06 00: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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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60

제목

새로운 환경 또는 변화에 대한 부적응 현상

글쓴이

김인봉 [가입일자 : 2002-02-04]
내용
3월 2일과 3일 이틀 동안 처가가 있는 제주엘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서울 흑석동에서부터 15년째 장인어른과 함께 해온 흰색 소나타가 몇 번의 수술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흰 김을 내뿜으며 깔딱거린다 했습니다.



차없이 외출하시기 힘든 곳이라 딸들이 모여 걱정하는데, 아는 분이 맞춤하니 2004년형 까만 색 EF소나타 골드, 그것도 연식에 비해 주행거리가 4만 km밖에 되지 않는 ‘시장에만 갔을 뿐이고’ 형 중고자동차가 싸게 나왔노라 하였습니다.



시간 남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하기 좋아하는 제가 제주까지 갖다드리마 하고 말씀드린 후,어떻게 갈까? 인터넷을 뒤지고 전화로 알아본 결과, 완도-제주, 목포-제주, 인천-제주 세 가지 각각 장단점을 지닌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완도나 목포까지 가서 카페리를 이용하는 방법은 빠르고, 또 남도의 봄정취를 길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특히 봄나물과 맛있는 남도의 곰삭힌 맛을 느껴볼까나 하는 기대도 가질 수 있다는 장점과 그 대신에, 새벽에 일어나서 완도나 목포까지 달려가야 하고, 배를 타고 도착하면 저녁이라 그 다음날이나 되어야 이전등록과 폐차 등 이런 저런 일을 봐드리고 올 수 있어 회의시간에 늦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인천-제주 배편은 저녁 7시에 출항하여 다음날 아침 8시 30분에 닿는다니 꼬박 열네 시간걸린다는 단점과 밤이니 자면서 가면 된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아참! 한 가지 더 비싸다는 단점도...



하지만 인천-제주행 이 배가 3월 2일만 운항하고 다음날부터 보름간 정기점검과 정비수리관계로 운행을 중단한다는 안내문구에 그만 다짜고짜로 예약하고 말았습니다. ‘이 물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멘트가 나오면 어느새 전화버튼을 누르고 있더라는 쇼핑중독 고백을 체험학습한 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네시 반까지 연안부두에 오라고 해서 차량을 선적하는 데 갖다 주고, 여객터미널 가서 배표를 끊었습니다.



침대칸도 있고 특실 등도 있었지만 싸기도 하려니와 3등 객실에서 뛰굴뛰굴 가보겠다는 낭만으로 C5번 방에 들어섰는데 내 몸은 낭만을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솔직하였습니다. 같은 방을 쓰는 어떤 아주머니가 이 칸은 난방을 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 이를 어째! 갑자기 시려오는 무릎 때문에 좀 더 좋은 방으로 옮기려니 현금 2만 3천 원을 더 내라는군요. 지갑엔 카드와 천 원짜리 몆장이 달랑....카드가 안 되는 곳도 있구나. 바닥 난방을 안할 뿐, 이불을 나눠주니 춥지는 않을 거라는 승무원의 이야기를 위안삼으며 그래! 버텨보자 하였습니다.



어마어마한 배라 음식도 팔고, 맥주와 내가 좋아하는 라이브를 하는 레스토랑도 카드를 받지 않으니 갑자기 허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왔습니다. 맹물을 몇 컵 들이키며 어린 시절 수도꼭지 틀어놓고 물배를 채우던 게 떠오르며 다시금 내 청춘이 벌써 까마득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눈을 붙이려고 모포를 깔고 누웠는데, 막장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지지직거리기까지 합니다. 억지로 눈을 붙이고, 얼마나 지났을까? 큰 배의 그르렁대는 소리에 맞춰 저마다 고로롱대는 소리가 화음을 이루고, 현관을 지키는 불투명백열등이 스무 켤레 신발을 지켜주는 풍경이 갑자기 낯설었는지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물배가 꺼지는 압박에 볼일도 볼겸, 슬리퍼를 신고서 매점이라도 들러보렸더니 이곳은 열두 시도 못되었는데 문을 닫았군요.



6층 배꼭대기에 올라 하릴없이 깜깜한 바다도 바라보고, 한 점 불빛이 무얼까 뚫어져라 보기도 하고, 별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찬바람과 일렁이는 파도, 멀어져가는 포말을 보면서 아! 청춘이 저렇게 덧없이 가고 이렇게 캄캄한 곳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 바로 천명을 알아가는 그 지천명(知天命)인가 싶었습니다.



젊은 날엔 이런 3등 선실이 이렇게 낯설지 않았는데... 사소한 일 따위가 나를 난감하게 하지 않았는데...카드가 안 되어도 어떻게 하나? 휴대폰이 안 터져도 어떻게 하나? 뭐가 안 될 때마다 나는 불안의 어두움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너무너무 내 몸과 마음이 유연성이랄까 적응력을 잃고 딱딱해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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