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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3. 겨울의 중심으로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3-01 16:36:05
추천수 3
조회수   806

제목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3. 겨울의 중심으로

글쓴이

정하엽 [가입일자 : 2002-11-28]
내용
글을 쓸 여유가 있는 주말에만 쓰다보니. 한없이 늦어집니다.
그러나 마감이 있는것도 아니고 ... 여유있게 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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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안으로 돌아오니, 이제 당장 해야 할일은 없다.
창밖을 보거나, 책을 보거나, 차를 마시거나, 이런저런 옛생각을 하거나... 시간을 보내는 일뿐이다.
어제저녁 민박집에서 늦게까지 TV를 보고 아침에 서둘러 일어나서 그런지 잠이 슬슬온다.
까무룩 잠들었다가 일어났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규칙적으로 덜컹이는 기차소리 뿐, 사방이 조용하다.
이따금 복도에서 들리는 라디오소리만 듣는이 없이 주책많게 흐를 뿐
창밖으로 보이는 그림은 사열하듯 철로를 따라오는 전나무와 자작나무 숲들 뿐.. 아직 잠에서 덜깨 모든것이 비현실적이다.
나침판을 보니 기차는 북쪽으로 향하고 시계를 보니 오후 3시39분 블라디보스톡에서 기차를 탄지 5시간이 지났다.
마치 기차는 나를 점점 겨울을 중심으로 데리고 가는듯 하다.




서울에서 인쇄해간 시간표와 맞춰 보니 기차는 Spassk-Dalny 라는 곳을 막지났다.

그토록 타보고 싶었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그런데 지금 내가 그기차안에 있다는 사실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어쩌다 이곳까지 내가 와 있을까 ?
태평양바닷가에서 대서양바닷가로 대륙을 가로질러 보는꿈, 대륙의 크기를 몸과 시간으로 재어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적막한 곳으로 나를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오후햇살이 눈쌓인 벌판에 비껴 반짝인다.





여행을 떠나면서 한가지 실험해보고 싶은것이 있었다.
나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일
러시아말을 못하는 나에게 길동무가 없다면 어쩔 수 없이 긴긴 시간 침묵을 강요받을 수 밖에 없다.
밖으로 향할 수 없는 내자신이 안으로 파고 들면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
혹시 외로움이 풍경과 어우러져 펑펑 울게 되지는 않을까 ?

커피를 마시려고 등산용 스텐레스 컵을 들고 물을 받으러 복도를 따라 객차 앞쪽으로 간다.
차장근무실 문이 열려있어 힐끗 들여도 보니 아줌마 승무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소 닭보듯 바라본다.
예전에 미국영화를 보면 항상 소련여성들을 그릴때 과장되게 굳은표정에 싸늘한 인상을 그리는데 그것이 그리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가끔 오가며 몇번 눈이 마주쳐도 절대 엷은미소 한번 짓는 일이 없다.

사실 이들의 노동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도 하다.
기본적인 차장역할에 화장실청소 객실청소, 각종 물품 판매원은 기본이고 기차가 정차하면 화장실에서 흘러내려 얼어붙은 오물덩어리를 기다란 쇠파이프로 깨는 일도 이들의 몫이다.
그리고 일에 따라서 복장까지 달라진다. 정차역에 서면 털모자에 멋있는 코트를 입지만, 청소할때는 청소복으로 갈아입는다.

펄펄끓는 뜨거운 물을 받아와서 인천공항에서 사온 맥심모카 마일드 봉지를 뜯어 톨톨 털어넣는다.
커피가 뜨거운 물에 녹아내리는 것을 보면서 물수건으로 세수도 하고 로션까지 바르고 말끔한 기분으로 커피를 마신다.
친구는 그저 차창을 경계로 끝없이 따라오는 자작나무 뿐이다.

자작나무를 바라보는 창에 먼지가 자욱하다.
기차가 달리면서 어쩔 수 없이 먼지가 묻게 되는지 아니면 원래 닦지않는 것인지는 알수 없지만 차창만 잘 닦여있다면 더이상 바랄 것이 없는데 너무 아쉽다.
나중에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갈때는 이보다 한등급 높은 기차를 탔는데 그기차는 유리창이 막 닦은것 처럼 깨끗했는데 모스크바에 도착할때까지 변함이 없었다.


잠시후 블라디보스톡 시간 오후 5시 7분이면 기차는 루지노 역에 도착한다.
한국에서 준비해간 시간표에 그렇게 되어있고 기차는 약속대로 정확하게 출발하고 정확하게 멈춘다.
이번 여행준비물중에서 어쩌면 가장 유용한 물건이다.

하염없이 달리는 기차안에서 지금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유일한 물건이다.
기차역 도착 30분전 출발 30분후 화장실 문을 걸어잠그니 그것을 미리 알 수도 있고 역마다 얼마동안 정차할 것인지도 알 수 있어 밖에 나가서 찬바람을 맞으며 담배라도 한대 피고 올지 말지 결정하는데도 적지않는 도움이 된다.




창밖으로 집들과 건물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잠시후 기차는 루지노역에 도착했다.
창문에 머리를 박고 아무리 두리번 거려봤지만, 행상은 보이지 않는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기차가 도착하면 행상들이 플랫폼에 우르르 몰려들어 먹을것과 마실것들을 판다고 들었고 그런 사진도 여러번 봤는데, 왠걸 형식적으로 내려서 손님을 기다리는 차장을 제외하면 사람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하긴 객차에 달랑 한명 손님을 태우고 가는 기차를 대상으로 무슨 장사를 하겠다고 행상들이 몰려들겠는가?
3일동안 양식이라고는 이제 도시락면 두개밖에 남지 않았다.
이게 떨어지면 좀 비싸긴 하겠지만 식당차에서 끼니를 떼우는 수 밖에 없다

블라디보스톡 시간 6시 28분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편하게 라운지복 바지대신 외출용 바지를 입고 양말도 신고 슬리퍼대신 등산화로 갈아신고 식당칸을 찾아나선다.
눈보라가 들이치는 연결칸을 지나 다음객차로 가는데 낮선 손님을 발견한 차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기왜 왔냐고 묻는다.
식당칸에 간다고 했더니 이기차는 식당칸이 없다는 청천벽력같은 사실을 선포한다.
물론 모든 대화는 바디랭귀지다.

나름 형이상학적으로 외로움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고민했는데 이제는 굶주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형이하학적 고민을 해야 할 판이었다.
불쌍한 표정으로 차장얼굴만 바라보고 있는데 불쌍하게 여겼던지, 근무실안에 있는 몇가지 음식을 보여준다.

다행이다. 컵라면도 있고 스프도 있고 게다가 쵸코파이도 있었다.
어쩌면 이것마저 곧 동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손에 들 수 있느만큼 사재기를 해서 다시 눈보라를 맞으며 내방으로 돌아왔다.

블라디보스톡 시간 9시53분
밤이어서 그런지 쿵짝거리던 복도의 음악소리는 많이 나긋나긋 해졌다.
고마운 배려다. 경음악으로 예스터데이, 딜라일라 온리유 ...등등

그 사이에 옆방에 남자손님이 탄모양인지 두런거리는 소리가 가끔 들린다.
사람들의 목소리 때문인지 해진후 쓸쓸한 풍경이 창밖으로 보이는 어스름 무렵보다는 차라리 캄캄한 밤이 덜 우울하다.

공기가 너무 건조해서 로션을 한번더 바르고 맆크린도 발랐다. 이상하게 나는 맆크린을 바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불과 이틀동안 노트를 너무 많이 썼다. 글씨를 작게 써야 하는데 흔들리는 기차안이라 그럴 수록 글씨가 엉망이다.

블리디보스톡 시간 12시 정각 하바로프스크 도착 .
조용하던 객차안이 어수선해진다. 내방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두사람의 젊은이가 들어선다.
몽골사람 처럼생긴 동양인 한명과 전형적인 러시아 사람 한명이다.

이제 독방시대는 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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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에 있는 대부분의 사진은 여행중 메모리 분실사태로 인하여 인터넷상에서 구한 자료사진임을 밝힙니다.


■ 실용정보

* 러시아 기차시간을 쉽게 알 수 있는 사이트
http://www.realrussia.co.uk/main_train_screen.asp

* 기차안에서 차를 마시려면 한국에서 컵과 티백을 갖고 가도 되지만, 승무원에게 시키면 멋진 컵에 차를 준다.
그 컵은 내릴때까지 쓸 수 있으니 짐이 많을 경우 컵을 굳이 갖고 가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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