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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사기빨이면 좀 먹힐라나요?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2-27 04:22:32
추천수 2
조회수   1,270

제목

이 정도 사기빨이면 좀 먹힐라나요?

글쓴이

황보석 [가입일자 : ]
내용
아 뭐, 꼭 사기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책 번역을 끝낸 뒤 역자후기를 쓸 때마나 이 절믄옵하는 그것을 "사기친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출판사들에다도 "아, 이번 책은 사기를 치려니 너무 어려워." 또는 "그 정도 사기빨이면 좀 먹히겠느냐?" 또는 "이번 사기는 치느라고 치기는 했는데 어떤지 모르겠다." 하는 등등의 말을 하지요. 출판사 편집부 직원들도 대체로 "아주 잘 치셨어요!", "사기술이 정말 대단하세요!" 하며 맞장구를 쳐주고요.^^



이번에 나온 책은 주니어 김영사에서 출간된 <소년, 세상을 날다> 입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되는 호주 작가 소피 라구나의 소설인데, 이 소피 라구나는 처음엔 법학을 공부했지만 적성에 맞지않아서 그만둔 뒤 배우수업을 받아 현역 배우로 뛰고 있기도 한 빼어난 미인이랍니다. 작가, 배우, 방송작가로 투잡이 아니라 쓰리잡을 하고 있는 팔방미인이지요.







옮긴이의 말



사랑, 상실과 역경을 이기는 힘



가족과 친구, 그리고 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소년, 세상을 날다>는 한 외로운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감정까지도 투사하면서 우정과 상실감, 그리고 아이가 표출할 수 있는 슬픔과 홀부모인 아버지의 힘겨운 삶이라는 녹녹치 않은 주제들을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태피스트리처럼 엮어나간다.

이 기발하고 엉뚱하면서도 감동적인 소설을 읽는 즐거움에 또 다른 즐거움을 더해주는 것은 소피 라구나의 빼어난 표현력이다. 격앙된 감정을 상황묘사로 대치하는 절제되었으되 더욱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 방식, 유머러스한 문장들 속에서 번뜩이는 바닥모를 깊이를 지닌 사유,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 보인 잘못되어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고발로 그녀는 독자들을 각성시키지만 절대로 강요하지 않고 다만 실제로 보는 것처럼 눈앞에 여실히 그려낼 뿐이다.



버드와 슈거는 제일 친한 친구 사이로 단지 둘뿐이지만 함께 있을 때는 온전한 팀이 된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물수제비 뜨기, 철길에 동전 납작하게 갈리기 같은 놀이와 낚시질, 자전거 타기 같은 야외활동을 하는 버드와 슈거 보이 사이의 우정은 요즘 아이들이 집에 틀어박혀 하는 인터넷 컴퓨터 오락 같은 것보다 훨씬 더 건전하다. 버드는 새들에 “홀려” 있고 새들에 대한 지식과 새들을 그리는 즐거움은 그 아이가 오해를 받았거나 불안을 느낄 때 정신적인 도피처가 된다. 슈거가 그 아이를 제임스 버델이라는 이름 대신 버드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도 그 아이의 새에 대한 엄청난 열정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엄마가 달아난 탓으로 홀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버드에게는 엄마가 달아난 것이 제 탓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어머니에 대한 그 아이의 희미한 기억은 젖은 모직물 냄새뿐, 어머니의 얼굴은 아무리 떠올리려 애를 써도 어렴풋한 윤곽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가장 친한 친구인 슈거마저 달아나려고 하자 버드는 그것도 제 탓이라 믿고, 슈거가 떠날 날이 가까워올수록 모든 사람을 다 잃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그 아이 가까이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더군다나 버드에게는 슈거 외엔 별다른 친구가 없었기에 그 아이가 떠난다는 것은 그때까지 받았던 어떤 충격보다도 더 심한 충격, 마치 제가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슈거를 잃는 것은 그 아이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어서 버드는 슈거가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버드는 누군가에게서 버림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고 애쓰면서 슈거가 제 상실감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그 아이와의 우정에서 제가 먼저 거리를 두고 물러서는 동안, 작가는 그런 의도를 손에 잡힐 듯 그려낸다.



그날 하루 종일 나는 슈거 보이에게서 뚝 떨어져 있었다. 그 아이가 내게 “우리 오늘 뭐뭐 하지 않을래?” 하고 묻는 것도 싫었고 나를 더 제대로 된 식사에 초대하는 것도 싫어서였다. 그날 오후에 나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철길 쪽으로 내려갔다.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새끼 새들에 대해, 그 새들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어미 새에게 주둥이를 내뻗어 그처럼 넓게 쫙 벌리는 법을 어떻게 아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새끼 새들은 그러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는데, 사실은 정말로 그랬다. 벌레를 받아먹지 못하면 그날 하루를 버틸 수 없을 테니까. 나는 그 새들이 눈이 감겨 있는데도 먹이를 물어오는 어미 새를 어떻게 알아보는지, 또 어미 새가 둥지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위험에 처해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면 새끼 새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면 새끼 새들은 무엇을 할까? 주둥이를 닫고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슈거가 먼 곳으로 떠나버린 상실감은 버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것이어서 그 아이는 제가 좋아하는 책 <새들: 들판의 안내자>의 저자인 A.P. 데이비스가 실고 있다는 블루 마운틴을 찾아 집에서 달아난다. 새들의 성소인 곳에서 어떤 피난처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하지만 그 아이의 여행은 갈수록 점점 더 도기 심해지는 불유쾌한 사건들로 가득 채워질 뿐이다.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버드의 아버지는 혼자 힘으로 아들을 키우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살아가기 위해 힘들게 일을 해야 하고 정상적으로라면 부모가 함께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도맡아 집안일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동반자를 잃은 것은 삶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지만 그 역시 아내가 아이를 남겨두고 떠났을 때 느꼈던 상실감으로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물론 그에게는 개리, 레나, 카비, 애니멀 같은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는 아들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강할지라도 버드의 어머니가 떠난 것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 이야기조차 못하고 그것이 버드를 불안하게 만든다.



비록 버드가 직계가족은 아버지 하나뿐이고 엄마가 없어서 때때로 상실감을 느낀다고는 해도 그 아이에게는 개리 아저씨, 레나 아주머니 같은 친밀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버드와 그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정신적 지원자들로 행동하고, 그들의 결속력은 버드가 사라졌을 때 다시 함께 모여 그 아이를 찾아내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달아났던 버드가 다시 찾아내어져 정신이 들었을 때 그 아이의 마음을 잡아주는 것도 그들 모두의 사랑이다.



소피 라구나는 주인공인 버드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중 상당수가 집안의 문제점들을 제 탓으로 돌린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런 아이들의 느낌과 정서를 고스란히 전하면서도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사랑이며 궁극적으로 사람을 바꾸고 발전시키는 힘은 사랑임을 역설한다. 어린아이의 생각을 그대로 투영하는 표현력과 카메라 같은 기억력에 힘입어 이 소설은 한 외로운 아이가 상실과 역경을 거친 뒤 사랑을 재발견하고 제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내는 과정을 여성 특유의 필치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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