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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3. 기차내부 공부하기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2-22 23:06:40
추천수 0
조회수   1,586

제목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기] 3. 기차내부 공부하기

글쓴이

정하엽 [가입일자 : 2002-11-28]
내용



기차는 출발하는데 어째 좀 썰렁한 느낌이다.
혹시 지나가는 승객이 있을까 싶어 복도쪽 문을 열어놓고 있어봐도 오가는 사람이 없다.
잠시후 반팔에 가벼운 옷차림의 여자가 한명 지나가는것은 봤는데 그외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로 우글우글하는 것 보다야 다소 한가한 것이 더 좋겠지만 그렇다고 객차에 달랑 나혼자 있는것은 좀 그렇다.
그래도 한사람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가져온 양식을 테이블위에 펼쳐놓고 보니 너무 초라하다. 가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사진을 보면 테이블에 음식물이 넘쳐나던데 말이다.
입었던 옷들은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서 침대발쪽 벽에 걸어두고, 배낭은 2층침대 쪽 짐칸으로 옮긴다.
내 자리는 아랫쪽이지만 어차피 손님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윗자리로 자리 잡았다.
낮이면 아랫칸 침대는 같은방 승객들의 공동소파역할을 하기때문에 나혼자 음악도 듣고 책을 보려면 윗칸이 훨씬 좋다.
나중에 뭐라고 하면 바꿔주면 되고...

책들과 세면도구니, 각종 충전기에 아이팟 등등을 꺼내서 침대옆 벽에 붙은 간이 그물선반에 올려두니 이제 그럴듯게 자리잡힌듯 하다.

기차는 어느새 도시를 벗어나서 창밖으로는 칙칙한 회색건물들이 사라지고 하얀색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기차길을 따라 자작나무가 끝없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뒷쪽으로 끝없는 벌판이 펼쳐진다.

그런데 출발할때만 짠 하고 음악을 들려주고 끝날줄 알았던 음악소리는 쉼없이 쿵작거리면 끝날 줄 모른다.
가만듣다 보니 중간중간 진행자도 나오는게 라디오를 틀어놓은듯 하다. 음악이라는게 창밖의 풍경과 어울린다면 고맙겠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분위기라 내가 꿈꿔왔던 여행의 그 분위기를 완전히 망치고 있다.
차장에게 가서 음악을 꺼달라고 얘기해볼까 하다가 내가 기차를 전세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방만 끌 방법이 있을것 같지도 않아서 죄없는 천정 스피커만 노려보았다.

천정을 뜯어내고 스피커 연결선을 끊어버릴까 생각도 했는데, 돌려볼 만한 나사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어폰을 끼고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어봐도 천정스피커의 음악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저 기차의 덜컹이는 소리와 침묵, 그리고 내가 준비한 음악만으로 여행을 채우려고 했는데 보통심각한 일이 아니다.

그래도 방법이 있을거라는 생각에 객실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창문과 천정의 중간쯤에 작은 단추가 보인다 그리고 그아래 РАДИО ... 어설프게 익힌 러시아어 발음으로 읽어보니.
' 라... 디....오' 그래 바로 이거다.
도무지 볼륨조절 노브같이 생기지 않았던 놈이었는데 왼쪽으로 딸깍 딸깍 돌려보니... 드디어 소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혼자서 쾌재를 불렀다.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문제거리를 해결하고 나니 갑자기 할일이 없다.
책을 두권준비했으나 그건 앞으로 150시간 동안 지겹고 지겨워지면 읽을 생각이니 벌써 펴들어서는 않된다.
일단 객차 탐방에 나선다.




내가 탔던 출입구쪽으로 가보니 맨먼저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그다음은 승무원의 작은 근무실, 의자가 하나밖에 없어서 한사람만 근무하는데 그방문은 항상 반쯤 열려있다.
들여다 보니 컵라면 등 몇가지 음식도 준비되어 있어서 나중에 이곳에서 사서먹으면 된다.

그방 맞은편 그러니까 복도쪽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기계가 있는데, 단순하게 생긴게 아니고 이리저리 복잡하게 관이 연결되어 있고 그중간에는 학교다닐때 과학실험실에서나 볼 수 있는 플라스크에서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고 있었다.
기계에 달린 아날로그 온도계는 100도를 가르키고 있다.
그리고 그옆에는 그 기계의 설계도가 붙어있는데 물하나 끓이는기계가 참 오묘하다 싶을 정도 였다.




승무원 근무실 그옆 방은 바로 승무원 숙소다. 객차마다 두사람의 차장이 있는데 동시에 두사람이 근무하지는 않고 한사람이 근무하면 다른 사람은 그 방에서 쉬게 된다.

그다음 부터는 승객용 방들이 죽 이어지고 복도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3개의 전기콘센트가 있었다.

복도의 끝까지 걸어가는데 대부분의 방문은 닫혀있거나 문이열린 방에도 손님은 보이지 않는다.
복도끝 문을 열고 나가면 작은 공간이 있고 복도쪽에 쓰레기통이 있고 반대쪽에 화장실이 있다.
한번더 문을 열면 마지막 공간인데 이곳은 난방이 되지않아 항상 유리창에는 성에가 끼어서 밖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문을 열면 바로 다음객차와의 연결공간인데 예전 비둘기호 열차처럼 어설프게 연결되어 있고 적당하게 막아놓은 주름천막
아래로 철로가 바로 보인다. 빈틈으로는 눈보라가 그대로 들친다.

다시돌아와서 화장실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생각보다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인간의 몸에서 나온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모았다가 발로 패달을 밟으면 물과함께 기차길 아래도 내려가는 시스템이다.

문쪽 구석에는 작은 세면대가 있는데 지름20센터 정도의 세면대에는 물마개가 없어서 그대로 아래로 흘러간다. 더더욱 난감한것은 물을 트는 방법이다.




한국에서 알아두었던 사전정보에서는 버튼을 누르는 동안만 물이 나오는것 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이놈의 버튼이 없는 것이다.
아무리 여기저기 돌려도 한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아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왠걸 버튼이 바로 물이나오는 수도꼭지 아래에 붙어 있는것이다.

즉 물이 나와야할 수도꼭지에 버튼이 끼워져 있어서 아래에서 위로 눌러야 수도꼭지와 버튼의 틈새로 물이 졸졸 나오는 것이다.
위에서 누르는 버튼으로도 손을 씻기 힘든데 도대체 물을 쓰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게다가 졸졸흐르는 물은 바로 물마개도 없는 세면대 아래로 흘러가 버리니 아무리 물을 아껴야하는 기차안이라고 하지만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것을 만든 기술자는 위로 부터 이런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 며칠씩 달리는 기차이니 수도가 없을 수는 없고 다만 수도는 만들되 최대한 물을 쓰지 못하게 만들도록 하라'
그렇다면 그 기술자는 위의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한 셈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그 열악한 세면대에서 양치,면도,세수는 물론 나중에는 샴푸로 머리까지 감았다.

다시 내방으로 돌아오는 길, 나를 제외하고 유일한 승객이라고 생각했던 그 여성이 복도를 따라가더니 승무원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팔에 체육복 차림의 그 여자는 승객이 아니라 비번의 승무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객차에 승객이라고는 달랑 나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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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물에 있는 대부분의 사진은 여행중 메모리 분실사태로 인하여 인터넷상에서 구한 자료사진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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