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즐겨찾기추가
로그인 회원가입 | 아이디찾기 | 비밀번호찾기 | 장바구니 모바일모드
홈으로 와싸다닷컴 일반 상세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엄~청 웃기는 단편 하나 보실랍니까아~?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2-19 10:56:02
추천수 0
조회수   1,726

제목

엄~청 웃기는 단편 하나 보실랍니까아~?

글쓴이

황보석 [가입일자 : ]
내용


오 헨리의 단편들 중에서 가장 익살맞은 <붉은 추장의 몸값>입니다.

지금부터 23년 전인 1986년에 번역한 것인데, 웹상에서 읽기 편하도록 행을 좀 더 나누었습니다.



단편이기는 해도 비교적 긴 글이어서 읽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겠지만,

읽고 나면 들인 시간만큼 본전은 충분히 뽑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거라고 봐, 나는.^^





붉은 추장의 몸값





어쩐지 잘 돼 간다 싶더라구. 아, 기다려. 지금부터 얘기할 거니까. 어린앨 유괴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건 나하고 빌 드리스콜이 남부, 그러니까 알라바마로 내려가 있었을 때였어. 그런데 그게 말야, 나중에 빌이 말한 대로 '얼마 동안 도깨비에 홀렸던' 거였다니까. 하지만 그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때가 너무 늦어 있었지.

거기에 내려가서 보니까 핫케익처럼 납짝한 마을이 하나 있더군. 그런데도 마을 이름은 뭐 '써미트'(풀이:정상 또는 꼭대기라는 뜻)라나? 어쨌든 그곳 사람들은 5월제에 모여든 사람들만큼이나 선량하고 만족해 뵈는 농사꾼들이더라구.

빌하고 나는 합쳐서 밑천이 한 6백 달러쯤은 되었지만, 서부 일리노이에다 사기 복덕방을 하나 내려면 자금이 꼭 2천 달러는 더 있어야 했어.

우린 여관 앞 층계에 앉아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그러다 이런 반(半) 시골 같은 읍에서는 아이에 대한 애착심이 유별나다는 얘기가 나왔고, 그래서---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유괴를 하기엔 그런 일로 기자를 보내서 떠들고 자시고 할 만큼 신문사의 세력이 미치는 곳보다는 거기가 더 낫다는 거였지.

우린 써미트 읍 정도라면 기껏해야 졸짜 순경 몇하고 거기다 어쩌면 축 늘어진 경찰견이나 몇 마리 보내서 뒤를 쫓게 하거나 아니면 그저 '주간 농경(週刊 農耕)'에서 한두 번 호되게 두드려대는 걸로 그만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이거 잘 돼 간다 싶었던 거지.

우리는 에브니저 도시트라는 마을 유지의 외아들을 제물로 택했어. 그 애 아버지는 제법 그럴 듯한 유지면서도 노랑이 고리대금업자라서, 교회 연보함 앞에서는 고개도 까딱 않고 지나가는 주제에 저당을 잡았다 하면 사정없이 처분해 버리는 작자더군.

꼬마 녀석은 열 살짜리 머슴애였는데, 얼굴엔 주근깨가 새긴 것처럼 다닥다닥 나 있고, 머리칼 색은 기차역 신문 판매대에서 파는 잡지 커버처럼 빛바랜 색깔이었지. 빌하고 나는 그 에브니저 같은 노랑이가 몸값을 치르겠다고 2천 달러를 고스란히 현찰로 바꿀 거라는 생각을 했었으니...... 아, 기다려. 지금 얘기할 거니까.

써미트에서 한 2마일쯤 떨어진 곳에 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조그만 산이 하나 있더군. 그 뒷쪽 좀 높다란 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고. 거기다 우린 식량을 비축했지.

어느 날 저녁, 해가 넘어간 뒤에 우리는 마차를 몰아 도시트 영감네 집 앞을 지나갔어. 꼬마 녀석은 한길 가에 나와 맞은편 담장에 앉아 있던 새끼 고양이한테다 돌멩이를 던지고 있더군.

빌이 '야, 꼬마야. 과자 한 봉지 줄 테니 신나게 한 번 타 보지 않을래?' 하고 말을 거니까, 녀석이 벽돌 조각으로 빌의 눈퉁이를 정통으로 한 방 맞히데. '이 몫으로 영감쟁이한테 5백 달러는 더 받아낼 테다'고 한 건 빌이 마차 바퀴를 밟고 기어오르면서 했던 말이고.

녀석은 웰터급 갈색곰처럼 마구 날뛰었지만, 우린 마침내 마차 바닥에다 녀석을 쑤셔 넣고 그대로 말을 몰았지. 그리고는 녀석을 동굴까지 데리고 왔는데, 나는 삼목 숲에다 말을 매놓았다가 어두워진 다음에 우리가 마차를 빌렸던, 그러니까 거기서 3마일쯤 떨어진 작은 마을로 내려가 마차를 돌려주고 걸어서 산으로 돌아왔어.

돌아와 보니까 빌은 얼굴에 난 손톱 자국이며 얻어맞은 상채기에다 반창고를 붙이고 있더군. 동굴 입구의 커다란 바위 뒷쪽에서는 모닥블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는데 녀석은 빨간 머리칼에다 독수리 꼬리 깃을 두 개 꽂고서 커피가 설설 끓는 주전자롤 들여다보고 있었어. 그러다가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까 막대기로 나를 가리키면서 '야, 이 더러운 백인놈아! 네가 감히 대초원이 벌벌 떠는 이 붉은 추장의 진지에 들어왔겠다?' 이러는 거야.

'녀석 지금 한참 신이 나 있다구.' 빌이 바지를 걷어올리고 정강이에 난 상처를 살펴보면서 이러더군. '우린 지금 인디언 놀이를 하고 있는 중인데, 이건 뭐 버팔로우 빌(풀이:1846-1917, 미국의 정찰병 겸 흥행사) 쇼가 공회당에서 환등기로 돌려대는 팔레스타인 풍경처럼 될 판이라니까. 나는 올드 행크라고 올가미 사냥꾼인데, 붉은 추장의 포로가 되어서 내일 아침이면 뭐 머리껍질을 벗기게 된다나? 제로니모(풀이:미군을 몹시 괴롭힌 아파치족의 족장)한테 말야! 저 꼬마 녀석한테 한번 채여 보라구, 굉장하다니까.'

그래, 녀석은 정말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어. 동굴에서 야영을 하는 게 재미있어서 제가 유괴되어 온 줄도 모르고 있더라니까. 녀석은 내게 곧바로 '스파이 뱀눈깔'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더니 제 부하들이 싸움터에서 돌아오면 해가 뜨는 대로 나를 불에 태워 죽이겠다고 선언하더군. 그러고 나서 우린 저녁을 먹었는데, 녀석은 베이컨과 빵과 고기국물을 한입 가득히 쑤셔 넣고서도 또 떠들어대기 시작했지. 녀석이 저녁을 먹는 동안에 했던 얘기는 대강 이런 거였어.

'난 이런 거 굉장히 좋아해. 밖에서 자 보긴 이번이 처음이야. 그렇지만 주머니쥐는 길렀던 적이 있어. 그리고 난 지난번 생일 때 아홉 살이 됐어. 난 학교 가는 게 제일 싫더라. 지미 티보트 아주머니네 얼룩닭이 난 달걀을 쥐가 여섯 개나 먹어치웠대. 이 숲 속에 진짜 인디언 있어? 고기국물 좀 더 줘. 나무가 흔들려서 바람이 부는 거야? 우리 집엔 강아지가 다섯 마리나 있었어. 행크, 네 코는 왜 그렇게 빨갛니? 우리 아버진 돈이 아주 많아. 별은 뜨거워? 토요일날 에드 워커 녀석을 두 번이나 두들겨 패 줬지. 난 계집애들은 싫더라. 노끈이 없으면 두꺼비를 잡을 수 없어. 황소도 울어? 오렌지는 왜 동그래? 이 동굴엔 침대 없어? 아모스 머레이는 발가락이 여섯 개야. 앵무새는 말을 하지만 원숭이나 물고기는 말을 할 줄 모르나 봐. 얼마에 얼마를 보태야 열둘이 되게?'

녀석은 2,3분마다 제가 빈틈없는 인디언이라는 게 기억나는지 막대기총을 집어 들고 동굴 입구로 살금살금 걸어가서 혹시 못돼먹은 백인놈의 정찰대가 오지는 않나 하고 목을 길게 뽑곤 하더군. 그리고 이따금씩 아메리카 인디언의 고함 소리를 질러대서 올가미 사냥꾼 올드 행크를 벌벌 떨게 만들었지. 녀석은 처음부터 빌에게 겁을 줬었다니까.

나는 꼬마 녀석에게 이렇게 물어 봤지. '어이, 붉은 추장, 너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니?'

그랬더니 녀석이 이러더군. '에이, 뭐하려구? 집에선 재미 하나도 없어. 학교 가는 것도 싫구. 난 야영하는 게 더 재밌더라. 야, 뱀눈깔, 너 나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진 않을 거지?'

그래서 난 '당장은 아냐, 얼마 동안은 이 동굴에서 지낼 거니까.'라고 대답해 줬지.

그랬더니 녀석은 '야, 신난다! 그거 굉장하겠는데. 이렇게 재미있어 보긴 머리 털 나고 처음이야.' 그러더군.

열한 시쯤 해서 우린 자리를 폈어. 좀 널찍한 담요에다 누비이불을 몇 장 깔고 가운데다 추장을 뉘였지. 녀석이 달아날까봐 걱정을 할 건 없었어.

녀석은 어디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나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발딱발딱 일어나서 막대기총을 집어 들고는 나하고 빌의 귓전에다 '너네들 조용히 해!'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세 시간 동안이나 잠을 못 자게 굴더라니까. 아마 그런 소리가 녀석의 어린애다운 공상으로는 무법자 패거리가 몰래 접근해 오는 소리로 들렸던 모양이야. 그러다 간신히 잠이 들었더니, 아 이번엔 내가 사나운 빨간 머리 해적한테 납치되어 나무에 묶이는 꿈을 꾸게 되었지 뭐야.

막 동이 틀 무렵, 나는 빌이 연거푸 끔찍하게 비명을 질러대는 바람에 잠을 깼어. 그건 고함 소리도 아니었고 울부짖는 소리도, 외치는 소리도, 부르짖는 소리도, 찢어지는 소리도 아닌, 남자의 발성기관에서 나오는 소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리더군. 뭐랄까, 그저 여자가 귀신이나 지네를 보았을 때 질러댔을 법한, 그런 꼴사납고 겁에 질린 창피스러운 비명 소리였어. 이른 새벽 동굴 속에서 빌처럼 건장하고 겁 모르는 뚱뚱한 사내가 걷잡을 수 없이 질러대는 비명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까 정말 등골이 오싹해지더라구.

난 도대체 무슨 일인가 해서 벌떡 일어났지. 그랬더니 붉은 추장이 빌의 가슴패기에 올라타고서 한 손으로 빌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있더군. 그리고 다른 손에는 우리가 베이컨을 자를 때 썼던 날카로운 주머니칼을 들고서 진짜로 빌의 머리 껍질을 벗기려고 드는 거였어. 간밤에 제가 선고했던 대로 말이지.

나는 녀석에게서 칼을 뺐고 녀석을 다시 자리에 뉘였어. 그렇지만 빌은 그때부터 혼쭐이 빠져 버렸지. 다시 꼬마 옆자리에 눕긴 했어도 녀석이 우리하고 같이 있는 한 통 잠을 자려고 들지 않더라니까. 그러고 나서 난 얼마 동안을 꾸벅꾸벅 졸았는데, 해가 뜰 때쯤 되니까 붉은 추장이 나를 말뚝에 묶어 태워 죽이겠다고 했던 게 생각나더군. 뭐 그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거나 겁이 났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난 일어나서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바위에 기대 앉았지.

그랬더니 빌이 '야, 샘, 너 뭐하려고 이렇게 일찍 일어났지?' 하고 묻더군.

그래서 나는 '나? 으응, 어깨가 좀 결리는 것 같아서 말야, 앉아 있으면 좀 나아질까 하구.' 그렇게 대답했지.

그러자 빌이 '야, 거짓말 말아! 넌 겁이 나는 거라구. 해가 뜨면 널 태워 죽이기로 했으니까, 넌 녀석이 정말로 그럴까봐 겁이 나는 거야. 그리고 녀석도 성냥을 찾을 수 있다면 정말로 그러고 말걸? 어때, 겁나지, 샘? 넌 도대체 이런 꼬마 도깨비 같은 녀석을 다시 데려가려고 돈을 치를 작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니?' 그러더군.

그래서 난 이렇게 대답했지. '그야 물론이지. 부모들은 이런 개구장이 녀석을 더 귀여워하는 법이니까. 자, 이제 너도 일어나고 추장 녀석도 깨워서 아침 먹을 준비들이나 하고 있어. 그 사이에 난 꼭대기에 올라가서 정찰을 좀 하고 올 테니까 말야.'

나는 조그만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그 부근을 한번 휘 둘러봤어. 내 예상은 써미트 쪽을 보면 마을의 건장한 농사꾼들이 낫과 갈퀴로 무장을 하고서 비열한 유괴범을 찾아 그 근처를 샅샅이 뒤지고 있는 게 보이겠지 하는 거였지만, 눈에 띄었던 건 어떤 남자 하나가 암갈색 노새를 부리면서 쟁기질을 하고 있는 한가한 경치뿐이더군.

냇물 바닥을 훑는 사람도 없었고, 거의 미치다시피한 부모에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는 기별을 전해 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심부름꾼들도 없었어.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란 그저 끝없이 뻗어나간 알라바마의 표면에 번진, 나른하고 졸리는 듯한 숲의 경치뿐이었지.

그래서 난 이렇게 중얼거렸어. '아마 늑대들이 양 우리로 들어와 귀여운 새끼양을 훔쳐갔다는 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군. 하느님, 늑대들을 도와주소서!' 라고 말야. 그러고 나서는 아침을 먹으러 산을 내려왔지.

동굴로 돌아와 보니까 빌은 동굴 벽에 몰려서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꼬마 녀석은 코코넛 열매의 반쯤 되는 큼직한 돌멩이를 들고서 빌을 박살내 버리겠다며 으르렁대는 중이더군.

'녀석이 내 등짝에다 시뻘겋게 달은 감자를 쑤셔 넣잖아.' 그러면서 빌이 설명을 하데. '그리곤 그걸 발로 콱 으깨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귀싸대기를 한 대 갈겼지. 샘, 너 총 가진 거 있지?'

나는 꼬마 녀석에게서 돌을 뺐고 싸움을 일단 가라앉혔어. 그런데 꼬마 녀석이 빌에게 '너 두고 봐,' 하면서 이러더라구. '붉은 추장을 때린 놈 치고 안 당한 놈 없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걸!'

아침을 먹고 난 뒤 꼬마 녀석이 주머니에서 끈으로 둘둘 말린 가죽 조각을 꺼내 가지고 끈을 풀면서 동굴 밖으로 나갔어.

그러자 빌이 걱정이 되는지 '저 녀석 지금 뭘 하려는 거지? 설마 달아나려는 건 아니겠지, 샘?' 하고 묻더군.

그래서 나는 이래 줬지 '그건 걱정 없어. 저 녀석 별로 집안에 처박혀 있을 체질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건 그렇고 몸값을 받아낼 계획이나 좀 짜야겠다. 그런데 녀석이 없어졌는데도 써미트 부근이 별로 소란스러운 것 같지가 않단 말야. 아마 녀석이 없어졌다는 걸 아직 모르고들 있는 모양이지. 식구들은 아마 녀석이 제인 아주머니 집이나 아니면 다른 이웃집에서 잤는 줄 알고 있나 봐. 어쨌든 오늘 안으로 녀석이 없어졌다는 걸 알게 되겠지. 오늘밤에 저 녀석 아버지한테 애를 찾아가려면 2천 달러를 내놓으라고 편지를 내야겠어.'

그런데 바로 그때,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때 질렀을 법한 고함 소리 같은 게 들렸어. 붉은 추장이 호주머니에서 꺼냈던 게 바로 돌팔매질을 할 때 쓰는 장난감이었던 거야. 녀석이 그걸 머리 위로 빙빙 돌리고 있더라구.

나는 몸을 잽싸게 피했는데, 다음엔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빌에게서 한숨 소리 같은 게 새어나왔어. 왜 말안장을 벗길 때 말이 내는 소리 같은 거 말야. 달걀만한 차돌멩이가 빌의 귀 바로 뒤에 와서 맞은 거였어. 빌이 그대로 쭉 뻗더니 접시 닦을 물을 끓이고 있던 프라이팬을 덮치면서 불 속으로 넘어박히더군. 나는 빌을 끌어내 가지고 반시간 동안이나 이마에 찬물을 끼얹어 줘야 했다니까.

얼마쯤 있으니까 빌이 일어나 앉더니 귀 뒤를 만지면서 이러더군. '샘, 너 내가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누군지 알아?"

그래서 내가 '진정해, 이제 곧 정신이 들 거야 했더니, 빌이 '헤롯 왕(아들들을 모두 죽인 왕이라서 끌어다 댄 것임)이야. 샘, 너 나를 여기다 혼자 두고 가버리진 않겠지?' 그러더군.

나는 밖으로 나가서 녀석을 붙들어 가지고 주근깨에서 따닥따닥 소리가 날 때까지 따귀를 올려붙였어.

그리고는 '너 얌전히 굴지 않으면 곧장 집으로 쫓아 보낼 테다. 어때, 지금부터 얌전히 굴래, 안 굴래?' 하고 다짐을 받았지.

녀석은 샐쭉해져 가지고 '난 그냥 장난으로 그런 건데 ' 하면서 이러더군 '올드 행크를 해칠 생각은 없었어. 그렇지만 저 자식은 왜 날 때린 거지? 알았어, 뱀눈깔, 얌전하게 있을게. 나를 집으로 쫓아 버리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오늘 블랙 스카우트 놀이를 하게 해준다면.'

그래서 나는 이랬지 '나는 그런 놀이 모른다. 그건 빌 아저씨하고 알아서 해라. 오늘은 그 아저씨가 너하고 놀아줄 거니까. 난 일이 있어서 좀 나갔다 와야 되겠다. 자, 이제 빌 아저씨한테 가서 화해하고 다치게 해서 미안합니다 하고 사과해라. 안 그러면 당장 집으로 쫓아 보낼 테니까.'

나는 녀석과 빌에게 악수를 시키고 나서 빌을 한 옆으로 데려가 이제부터 나는 동굴에서 3마일쯤 떨어진 포플라 글로브라는 조그만 마을로 내려가서 써미트에서는 이 유괴 사건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되도록이면 자세히 알아보고 오겠다고 했어. 그리고 또 그날 중으로 도시트 영감에게 몸값의 액수와 그 지불 방법에 대해서 최후통첩을 보내는 게 좋을 거라는 얘기도 했고.

그랬더니 빌이 '샘, 너도 알 테지만,' 하면서 이러더군. '여태까지 나는 지진이 나건, 화재가 나건, 홍수가 나건, 도박판에서건,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릴 때건, 경찰 수색을 당하건, 열차 강도질을 하건, 태풍이 불건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너를 도와왔어. 저 다리가 두 개 달린 폭죽 같은 꼬마 녀석을 유괴해 오기 전까지는 한 번도 겁을 먹은 적이 없었다구. 하지만 녀석에겐 두 손 들었어. 샘, 너 나를 저 녀석과 오래 내버려 두지는 않겠지?'

그래서 나는 '점심때가 좀 지나면 돌아올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저 꼬마를 재미있게 해줘서 얌전히 있게 해야 돼. 자, 그러면 이제 도시트 영감에게 보낼 편지나 쓰자.'고 했지.

빌하고 나는 종이와 연필을 꺼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러는 동안 붉은 추장은 몸에 담요를 두르고서 제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동굴 입구를 지켜 주더군. 그런데 빌이 몸값을 2천 달러로 하지 말고 l천 5백 달러로 하자고 애원하면서 내게 이러는 거였어.

'부모의 애정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도덕적 관점을 헐뜯으려는 건 아니지만 말야, 그래도 우린 인간적으로 거래를 하고 있잖아. 저렇게 주근깨가 덕지덕지한 살쾡이 같은 40파운드짜리 덩어리 하나를 가지고 2천 달러나 내줘야 한다는 건 암만 생각해 봐도 비인간적이야. 나는 l천 5백 달러로 하고 싶어. 모자라는 건 내 몫에서 빼도 좋아.'

그래서 나는 빌을 안심시킬 셈으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둘이서 머리를 짜내 이런 식으로 편지를 썼지.



에브니저 도시트 귀하.



우리는 귀하의 아들을 써미트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곳에다 숨겨 두었소. 귀하나 또는 제아무리 수완 좋은 명탐정이 아들을 찾으려고 한대도 그건 모두 헛수고일 거요. 귀하가 아들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이것뿐이오. 우리는 아들을 돌려주는 데 대해 고액권으로 l천 5백 달러를 요구하겠소. 돈은 오늘밤 귀하가 회답을 보낼 바로 그 장소, 그 상자에 넣어 두어야 할 것이오.---그 점에 대해서는 뒤에 적겠소.

귀하가 이 조건에 승낙한다면 서면으로 회답을 적어 오늘밤 여덟 시 반에 한 사람의 심부름꾼을 시켜 보내시오. 포플라 글로브로 통하는 길에서 까마귀 계곡을 건너면 오른편에 있는 밀밭 울타리 가까이에 약 l백 야드 간격으로 커다란 나무가 세 그루 서 있소. 그 세 번째 나무 맞은 편 담장 말뚝 밑을 보면 조그만 마분지 상자가 있을 것이오.

심부름꾼은 상자에 회답을 넣는 즉시 써미트로 돌아갈 것. 만일 귀하가 배신을 기도한다든가 상기(上記) 요구 조건에 응하지 않는다면 두 번 다시 아들을 보지 못할 것이오.

귀하가 요구된 금액을 지불하면 세 시간 이내에 아들을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소. 이 조건은 최종적인 것이며, 만일 귀하가 이 조건에 응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연락은 없을 것이오.

겁을 모르는 두 사나이



나는 편지에 도시트의 주소를 적고 주머니에 집어넣었어. 그런데 내가 막 떠나려니까 꼬마 녀석이 내게로 와서 이러더군. '어이, 뱀눈깔. 네가 없는 동안 블랙 스카우트 놀이를 해도 괜찮다고 했지?'

그래서 나는 '그럼 해도 되지. 빌 아저씨가 너하고 놀아 줄 거니까.' 하고 이렇게 물어 봤어. '그런데 그건 어떤 놀이냐?'

그랬더니 붉은 추장이 '나는 블랙 스카우트가 되는 거야.' 하면서 이러더군. '그리고 이주민들에게 인디언이 쳐들어온다는 걸 알려 주러 방위 울타리까지 말을 타고 달려가야 해. 이젠 나 혼자서 인디언 놀이나 하는 건 싫어졌어. 난 블랙 스카우트가 되고 싶어.'

나는 '좋아, 별로 나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아마 빌 아저씨도 네가 귀찮은 야만인들을 쳐부수는 걸 도와 줄 거다.'했지.

그러자 빌이 그럼 나는 뭐가 되는 건데?' 하고 미심쩍은 눈길로 아이를 바라보며 묻더군.

그러니까 블랙 스카우트는 '내 말이 되는 거야. 네 발로 땅에 엎드려. 말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방위 울타리까지 가니?' 그러는 거였고.

나는 '계획이 제대로 돼 갈 때까지는 녀석을 재미있게 해 주는 편이 좋을 거야. 잘 좀 해 주라구.' 그랬지.

빌은 네 발을 짚고 엎드렸는데, 그 친구 눈을 보니까 꼭 덫에 걸린 토끼 같더라구.

빌이 쉰 목소리로 '방위 울타리까지는 얼마나 머냐, 꼬마야?' 하고 물으니까, 블랙 스카우트 녀석이 '90마일이야.' 하고는 '시간에 맞춰 가려면 부지런히 가야 돼, 끼럇, 끼럇!' 그러더군.

그리고는 녀석이 빌의 등에 펄쩍 뛰어올라 뒤꿈치로 빌의 옆구리를 마구 찔러 대는 거였어.

그러자 빌이 이러더군. '제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좀 돌아와 줘 샘, 몸값을 천 달러로 할 걸 그랬나 보다. 너, 발길질 그만두지 않으면 일어나서 호되게 두들겨 패 줄 테다."

나는 포플러 글로브까지 걸어가서 우체국을 겸한 가게에 앉아 물건을 사러 들어온 촌뜨기들과 얘기를 좀 했지. 구레나룻이 텁수룩하게 난 어떤 사내가 써미트에서는 엘더 에브니저 도시트의 아이가 없어져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그러더군. 내가 알고 싶었던 건 바로 그거였어. 나는 담배를 사고 완두콩 값을 물어 보고 하다가 슬쩍 편지를 부치고는 거길 빠져나왔지. 우체국장은 한 시간쯤 더 있으면 써미트로 가는 우편물을 배달할 우체부가 올 거라고 하더군.

동굴로 돌아와 보니까 빌과 꼬마 녀석이 보이질 않더라구. 나는 동굴 근처를 찾아보기도 하고 위험을 무릅쓰고서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지만 통 대답이 없었어.

그래서 난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이끼가 긴 둑에 앉아서 좀 더 기다려 봤지.

반시간쯤 지나니까 덤불 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빌이 동굴 앞에 있는 빈터로 비실비실 걸어 나오데.

그 뒤로는 꼬마 녀석이 정찰대원처럼 발소리를 죽이고 씨익 웃으면서 따라 왔고. 빌이 멈춰 서더니 모자를 벗고 빨간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치더군. 꼬마 녀석도 8피트쯤 뒤에서 걸음을 멈췄고.

빌이 '샘,' 하고 나서 이러더군. '너는 나를 배신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어. 나는 배짱도 있고 당하면 갚을 줄도 아는 사내야. 그렇지만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죄다 없어져 버릴 때도 있는 거라구. 녀석은 이제 없어. 내가 집으로 보내 버렸어. 모두 도로아미타불이지 뭐. 옛날에는 자기네들의 특별한 이익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순교자들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말야.' 그러면서 빌이 또 지껄여 대더라구. '그 사람들도 아마 나처럼 지독한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을 거야. 나도 우리가 약탈한 물건을 잘 지키려고 애는 썼지만, 그러는 데도 한계가 있는 거라구.'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인데, 빌 ?' 하고 물어 봤지.

그랬더니 빌이 이러더군. '나는 방위 울타리까지 90마일을 1인치도 에누리 없이 달려갔어. 그런데 이주민들을 다 구하고 나니까 귀리라면서 주는 게 모래니 그걸 어떻게 먹어. 그러고 나서도 한 시간 동안은 녀석에게 구멍 속은 왜 텅 비었느니, 길은 왜 두 갈래로 갈라졌느니, 풀은 왜 초록색이니 하는 것들을 일일이 설명해 줘야 했다니까. 이봐, 샘, 사람이 참는 것도 그 정도가 한계일 거야. 나는 녀석의 멱살을 잡아끌고 산을 내려왔는데, 그러는 동안 녀석이 어찌나 발길질을 해댔는지 정강이 밑으로는 온통 멍 투성이라구. 게다가 엄지손가락이며 다른 손가락을 두세 번 물렸더니 지금도 손이 얼얼하고 말야. 하지만 녀석은 인제 없어' 하고 빌이 계속 떠들어 대더군. '집으로 가버렸다구. 나는 녀석에게 써미트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고는 발길로 한 방 걷어차서 써미트 쪽으로 8피트쯤 가까이 보내줬지. 몸값을 못 받게 된 건 미안하지만 그렇게 안했더라면 이 빌 드리스콜이 정신병원으로 가게 될 판이었다니까.'

빌은 침을 튀기며 열을 올렸지만, 그 친구의 붉으레한 얼굴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함과 점점 더 커가는 만족감이 배어 있었어.

그래서 나는 '빌, 너네 집안에 심장병은 없겠지?' 하고 물어 봤어.

그랬더니 빌이 '없어' 하면서 이러더군. '학질하고 사고만 빼놓곤 말야.'

그 말에 나는 '그렇다면, 뒤로 돌아서서 네 뒤에 뭐가 있는지 한 번 봐' 했지.

빌이 돌아섰다가 녀석을 보고는 얼굴이 해쓱해지면서 땅에 털썩 주저앉더군. 그러더니 풀이며 잔가지를 마구 쥐어뜯더라구. 나는 한 시간쯤 빌이 미치지나 않았나 해서 걱정이 되더라니까.

얼마쯤 뒤 나는 빌에게 계획을 당장 실행에 옮겨서, 만일 도시트 영감이 우리 제안에 응한다면 밤중까지 몸값을 받아서 날라버리자고 했지. 그랬더니 빌도 용기를 내서 꼬마 녀석에게 힘없이 웃어 주고는, 기분이 좀 나아지는 대로 러일전쟁 놀이에서 러시아군이 되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더군.

나한테는 역습을 당해서 붙들릴 위험 없이 몸값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직업적인 유괴범들에게도 권해 볼 만한 계획이 하나 있었어.

회답이, 그리고 나중에는 돈이 그 밑에 놓여지게 될 나무는 길가 울타리 옆에 서 있었는데, 그 주위로는 사방이 모두 허허 벌판이었지. 그래서 만일 경찰대가 편지를 가지러 오는 사람을 감시하려고만 든다면, 들판을 가로질러 오거나 길을 따라오는 사람을 멀리서도 쉽게 볼 수 있었을 거야. 그렇지만 천만의 말씀. 여덞 시 반에 나는 벌써 그 나무 위로 올라가 심부름꾼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청개구리처럼 꼭꼭 숨어 있었거든.

딱 그 시간이 되니까 어른이 다 된 사내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길을 따라 올라와서 담장 말뚝 밑에 있는 마분지 상자를 찾아내더니, 접은 종이쪽지를 그 안에다 밀어넣고 다시 페달을 밟아 써미트 쪽으로 돌아가더군.

나는 한 시간쯤 기다려 보고 나서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나무를 타고 내려와 쪽지를 집어들고 울타리를 따라 살금살금 숲 있는 데까지 갔다가 다시 30분쯤 더 걸려서 동 굴로 돌아왔지. 그리고는 쪽지를 펼쳐 들고 불 가까이로 가서 빌에게 읽어 주었어. 그건 펜으로 알아보기 어렵게 쓴 편지였는데, 요약하면 그 뜻은 대강 이런 거더군.



겁을 모르는 두 사나이 귀하

내 아들을 돌려주는 대가로 당신들이 요구했던 몸값에 관한 편지는 오늘 우편으로 받아 보았소. 본인의 생각으로는 귀하의 요구액이 좀 높은 것 같아서, 이에 대안을 하나 제시하려 하오. 아마 수락해 줄 거라고 믿소.

귀하가 죠니를 집으로 데려와서 본인에게 2백 50달러를 현찰로 지급한다면 본인은 귀하로부터 내 자식을 인수하는 데 동의할 것이오. 되도록이면 밤에 오는 게 좋을 거요. 왜냐하면 마을 사람들은 내 아들이 유괴된 걸로 믿고 있을 뿐더러, 그들이 내 아들을 데리고 오는 사람을 보고서 무슨 짓을 한대도 나로서는 책임을 질 수 없기 때문이오. 이만 줄이겠소.

에브니저 도시트



그걸 보고 나는 '이 날강도 같은 놈, 이런 뻔뻔스러운......' 하다가 빌을 한번 흘꿋 쳐다보고는 그만 멈칫하고 말았어. 그 친구 얼굴을 보니까 말을 할 줄 모르는 짐승이건, 말을 할 줄 아는 짐승이건 간에 내가 그때까지 보아 왔던 어떤 짐승보다도 더 애절한 표정이 서려 있어서였지.

빌이 '샘,' 하면서 이러더군. '도대체 2백 50달러가 어쨌다는 거지? 우리도 그만한 돈은 가지고 있잖아. 이 녀석하고 하룻밤만 더 보낸다면 나는 정말 정신병원으로 가고 말 거야. 내 생각엔 도시트 씨가 아주 신사인 데다가 그렇게 관대한 요구를 하는 걸 보니 꽤 너그러운 사람인 것 같아. 너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 버리지는 않겠지?'

그래서 나는 이랬지. '사실 나도 말야, 빌, 이 꼬마 녀석이 얼마쯤은 신경에 거슬리더라구. 좋아,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서 몸값을 치르고 달아나자.'

그러고 나서 우리는 녀석을 그날 밤에 집으로 데려갔어. 집에 가면 아버지가 은을 박아 넣은 라이플이며 인디언들이 신는 신발을 사놓았다느니, 내일은 곰 사냥을 갈 거라느니 하면서 녀석을 꼬드겨 가지고 말야.

우리가 에브니저 도시트네 대문을 두드렸던 건 딱 열두 시였어. 당초 계획대로라면 내가 나무 아래에 놓인 상자에서 1천 5백 달러를 꺼내고 있어야 할 바로 그때에 빌이 도시트의 손에다 2백 50달러를 세어서 건네주고 있었으니.

꼬마 녀석은 우리가 저를 떼어놓고 가버릴 것 같은 낌새를 채자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빌의 다리에 거머리처럼 착 들러붙더라구. 그래서 걔네 아버지가 반창고를 뜯어내듯이 녀석을 조금씩 조금씩 떼어내야 했어.

'아드님을 얼마나 오래 붙들어 둘 수 있습니까요?' 하고 빌이 묻더군.

그러니까 도시트 영감은 '기운이 옛날만은 못하지만, 아마 10분은 장담할 수 있을 거요.' 했고.

그러자 빌이 '그럼 됐습니다요.' 하면서 이러더군. '10분이면 나는 중부, 남부, 중서부에 있는 주를 지나서 캐나다 국경 쪽으로 열나게 뛰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는 그렇게 어두운 밤이었는데도, 또 빌은 나만치나 뚱뚱한 데다 뜀박질 실력도 나하고 거의 비슷비슷했는데도, 내가 따라잡을 때까지 써미트에서 1마일 반은 족히 가 있더라니까.







추천스크랩소스보기 목록
  • 광고문의 결제관련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