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ed Link: http://www.cyworld.com/jbler/3504472
■ 관련글 : http://www.cyworld.com/jbler/3504472
방청소를 하다가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쓰고 있던 오동나무 상자를 발견했다.
몇년전만해도 우리집 가보로 물려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고에츠 카트리지가 아니던가.
한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오디오취미를 멀리했던 나.
그래도 먼지를 덮어 쓴 고에츠를 보니, 제작자인 스가노씨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년전 이곳에 올린 글과 겹치는 내용도 있지만, 그동안 새로 알게 된 이야기도 있으므로
새롭게 정리하기로 한다.
단, 아래 내용에는 개인적인 의견, 소문등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절대적 진실은 아님을 미리 밝혀 둔다.
光悅의 일본어 발음은 "코에츠"가 맞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에 고에츠로 알려졌으므로
이후 표기는 고에츠로 통일함.
菅野義信씨 (스가노 요시아키, Sugano Yoshiaki) & 고에츠 오닉스 플래티넘 애니버서리 시그니처 (光悅 オニクス プラチナ, Koetsu Onyx Platinum Anniversary Signature)
우선 고에츠(光悅) 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를 설명하자면, 임진왜란(1592 - 1598)이 일어났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本阿弥光悅(혼아미 고에츠 1558~1637)라는 사람이 었었는데, 그의 집안은 일본도(日本刃)를
갈고 감정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일본은 칼만드는 사람, 칼 손잡이를 만드는 사람, 날을 세우는 사람등이 분업화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일본 오디오잡지 "스테레오 화일 1991년 6월 10일호"의 기사에 따르면, 菅野義信씨(스가노 요시아키)는
本阿弥光悅(혼아미 고에츠)의 자손.
이에 자신이 제작한 카트리지에 "光悅(고에츠)"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는 일본도(日本刀)를 직접 만드는 장인으로서 "本阿弥光佑"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었지만, 2차 세계대전 일본이 패전하면서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에 의해 일본도(日本刀) 제조금지 조항이 생겨났다.
스가노씨는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된 일본도를 대신하여, 취미삼아 카트리지를 제작했는데 이것이 고에츠의
시초이다. 카트리지의 바늘과 코일에 일본도(日本刀) 제작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고에츠는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고,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지지층이 존재한다.
모든 것이 수작업인 관계로 일년에 만들 수 있는 양이 최대 60개정도로 한정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것도 20 ~ 30개 단위로 세상에 내 보냈기때문에, 유럽과 미국의 유저들은 더욱 고에츠 입수에 열광했고,
건강상의 이유로 몇개월간 공급이 없을 때는 스가노씨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특히 1982년 봄 이러한 소문이 더욱 확산되자, the absolute sound紙 6월호에, "스가노선생은 일시적으로
병원에 입원했으나 지금은 회복중이며, 앞으로는 카트리지 제작에 전념할 것이다"는 글이 실릴 정도였다.
그는 1994년경부터 뇌경색으로 오른쪽 손과 발에 마비가 왔고, 1997년경부터는 그 증상이 심해져 외출시에
휠체어가 필요한 상태였는데도, 카트리지 제작을 멈추지 않았다니 그의 정열에 박수를 보낸다.
(이때부터 아들 菅野文彦(스가노 후미히코)씨에게 전수작업도 시작됨)
그렇다면 고에츠는 어떻게 해외에 널리 알려진 것일까?
거기에는 오디오계의 거장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이 있었다.
1970년대초 마크 레빈슨이 일본에 왔을때, 고에츠 오닉스 플래터넘(일본어 : 프라치나) 카트리지의 소리를 듣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후 마크 레빈슨社의 오디오 기기의 데모에 고에츠 카트리지가 사용되었다.
당시 마크 레빈슨社의 데모 이벤트에는 세계의 유명 오디오인들이 대부분 초청되었는데,
고에츠 카트리지의 실력은 그들의 귀에 인상깊이 각인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인연으로, 마크레빈슨사가 초창기 발매한 일부 카트리지의 알맹이는 고에츠였다고 전해진다.
어떤제품이 들어있는지 한번 열어보고 싶다. ^^
당시, 예약주문을 하면 전달받기까지 대략 3개월가량 걸렸다고 하는데, 모든 것이 수작업이었으므로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카트리지의 달인이 만든 것이라도, 기계에서 찍어 낸 제품들에 비해 품질이 일정하지 못했는데, 이에 스가노씨는 자신의 갈라드 401턴테이블에 완성품을 장착하여 직접 들어본 후, 합격,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물론 합격품만 골라내어 [光佑作]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적어 세상으로 내 보냈는데 이것이 시그니처 제품인 것이다.
그런데 선대가 만든 이 시그니처에 대해선 아래와 같은 소문도 있었다.
"시그니처중에는 세상에 내보내지 않고 잘 보관 해 두었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만 건네 주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보통 판매되는 고에츠 시그니처는 별 볼일 없는 것이다"
시그니처중에서도 소리가 출중한 최상급만을 다시 골라내어, 자신의 나이와 이름을 기입한 애니버서리 시그니처가 있다는 것. 애니버서리 시그니처는 오동나무 케이스에 [OO翁 光佑作]이라고 쓰여지는데, OO에는 제작당시의 나이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위의 것은 [八十二翁 光佑作]이라고 나와 있으므로, 스가노씨가 82세때였던 1989년에 제작한 애니버서리 시그니처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직접 스가노씨에게서 구입한 것이 아니라서 그 진상은 알 수 없으나,
이 말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귀한 것임에 틀림없다.
뇌경색으로 인한 마비로 고생하던 菅野義信(스가노 요시아키)씨는 지난 2002년 1월 20일 향년 95세로 이 세상을 떠났고, 아들 菅野文彦(스가노 후미히코)씨가 그의 기술을 전수받아 명맥을 이어왔지만, 돌연 2006년부터 여러가지 사정상 일본국내에서의 판매를 중지하고, 앞으로의 제작재개 계획도 서 있지 않다고 발표했다.
단 지금도 바늘교환등 수리는 실시한다고 하는데, 이런 서비스도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다.
光悦は諸事情により日本国内での販売を中止しております。
販売再開の目処は立っておりません。
光悦ファンのお客様にはご迷惑おかけいたしまして申し訳ございません。
위의 글은 고에츠 판매점에 내걸린 안내문인데,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일본국내에서의 판매중지"라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해외수출용으로는 계속 제작한다 것인가?
위의 발표문은 일본국내용이지만, 해외로 나가는 수출용 카트리지도 제작중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미확인)
일본 국내용은 제작중지하고, 수출용만 만든다는 것은 어쩐지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음... 고에츠 카트리지는 역사속의 전설로 묻혀 버리는 것일까.
아래는 아들 菅野文彦(스가노 후미히코)씨가 아버지로부터 전수작업을 받을 당시(1996년경) 지인에게 하소연한 내용인데, 이를 통해 위 안내문의 "여러사정으로 인한 판매중지"의 원인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예전에 비해 원재료, 부품의 입수가 무척 어려워졌다.
지금까지는 오닉스 플레터넘의 몸체가공을 甲府市(야마나시현 고후시)에 살 고 있는 장인에게 부탁했었는데, 앞으론 의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수소문끝에 대만의 장인에게 부탁해 보았으나, 정밀도가 많이 떨어진다.
고육지책으로 약간 크게 커트를 해 와(보석이므로 컷팅할 필요가 있음), 일본에서 다시 연마하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고순도의 코일을 제작하는데 필요한 재료도 메이커의 경영합리화로 인해 생산중지의 위기에 있다. 이러다가는 지금의 두배가격으로도 판매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알고 있는 나고야(名古屋)의 오디오샵 주인이 있는데, 그의 샵은 나고야에서 몇개 안되는 고에츠 정규판매점이었고, 선대 菅野義信 (스가노 요시아키)씨와도 면식이 있었다.
그에 말에 의하면, 선대는 아들에게 고에츠 제작기술은 전수해 주었지만, 듣는 귀(耳)까지는 전달해 주지는 못한 것 같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말이 아들의 제작실력은 인정하지만, 그의 귀(耳)는 신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사실, 선대 스가노씨가 손이 마비되어 모든 작업을 아들에게 물려주었을 때에도, 마지막 테스트만큼은 그가 직접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2002년 세상을 떠났으니, 그 이후 아들에 의해 제작된 카트리지는 선대의 테스트를 거치지 않았다.
이로 인한 품질저하가 결국 제작중지라는 극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억측)
아니, 위의 두가지 요인..
제작에 필요한 부품조달의 어려움 + 품질검사의 어려움이 아들 菅野文彦(스가노 후미히코)씨를 압박했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 전세계 아나로그 매니아들의 귀를 매료시켰던 고에츠 카트리지는
더 이상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글이 너무 길어진 듯.
나머지 사진과 글은 아래에서...
http://www.cyworld.com/jbler/3504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