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정치관련글들을 보다 보면



"이놈이나 저놈이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글을 많이 보게 되죠.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저는 이런 생각은 어리석거나 위험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정치에 있어서는 "그 넘이 그 넘"이란 생각만큼 현실을 왜곡하는

사고방식이 없습니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북군과 남군이 똑같았고 이차대전 당시

히틀러와 루즈벨트가 똑같은 사기꾼이었다는 말과 같은 거죠.



똑같은 과학자인데도 불구하고 양반출신인 이천은 우대하고

천민이었던 장영실은 천대했다는 이유로 세종대왕을 형편없는

국왕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몰역사적인 생각입니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성인을 뽑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것 중 최선"을 뽑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요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정권)가 가지고 있는 숱한 결함을 이유로 독재(정권)보다

나은 게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어리석거나 교활한 주장일 것입니다.



기자가 윈스턴 처칠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를 묻자,

"지금까지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정치제도를 제외한다면

민주주의제도는 최악의 정치제도"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지난 1년과 지난 10년을 비교하면서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다른 정치"와 민주주의 정치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지난 1년과 그전 10년의 차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은 아니어도 북한산과 동네 뒷산 만큼의 차이는 있습니다.

둘다 산이라고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똑같다.

남한이 천국이냐"라고 주장하는 거나 똑같은 것입니다.



인간 사회는 어느날 성인이 나타나서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북군이 남군을 이기고, 미국과 소련이 나치독일을 꺾고,

김대중의 민주당이 이회창의 한나라당을 이기는

'작지만 역사적 의미를 갖는 진보'들이 축적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사실 역사가들은 이런 사건들을 작은 변화가 아니라 '거대한 변화'로 평가합니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는 건 이회창, 이명박과 김대중, 노무현의 차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차이, 지난 1년과 그 이전 10년의 차이를

은폐하기 위한 물타기밖에 안됩니다.



지난 1년간 벌어진 사태는 바로 그런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낸 것입니다.

교활한 사기꾼들은 우리들의 그런 바보같은 단순함을 부채질하고 이용합니다.





P.S.

오프라인에서 "그놈이 그놈"이라는 분들 중 70% 정도는 그게 틀린 생각이긴 해도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변화 가능성이 있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온라인에서 "그놈이 그놈"이라는 분들 중 70%는 실제로는 무슨 짓을 벌여도 무조건 한나라당 찍을 사람들입니다. 한나라당을 옹호할 논거가 딸리니까 양비론을 가장하고 있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양심불량자입니다.



나머지 30%의 분들을 이 70%의 양심불량자들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이분들은 상황에 따라 변화가능한 분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