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비밀입니다-비밀(秘密)



외롭고 고통스러운 영혼들이 오갈 데 없는 귀신이 된 후 인연 따라 들러붙어 이상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빙의(憑依)라 한다. 영화 <비밀>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아내와 딸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 온 헤이스케. 그가 깊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아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 그녀의 영혼이 혼수상태인 딸의 육신으로 옮겨간 것. 사랑하는 남편 곁에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그녀의 영혼이 딸의 몸을 빌어 기적적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이때부터 딸과 아버지의 이상한 동거가 시작된다.



1998년 9월 일본에서 출판되자마자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 <비밀>은 평단과 독자들의 막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영화화 발표가 된 후 일본내 최고의 스탭이 속속 모여들었다. 코미디와 액션, 드라마 등의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온 다키타 요지로가 감독을, 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된 사이토 히로시가 각본을, 촬영은 <쉘 위 댄스>로 제20회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 촬영상을 수상한 가시노 나오키가 각각 맡으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었다. 여기에 일본 최고의 아이돌 스타, 히로스에 료코가 아내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딸역을 맡아 1980년생이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 폭넓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이 작품의 히로인 히로스에 료코는 94년 화장품 모델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이래 드라마와 영화, 가요, CF 등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일본 최고의 아이돌 스타. 18살 사춘기 딸의 몸에 들어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시 다니고 멋진 선배의 프로포즈도 받는, 40대 주부의 내면을 절묘하게 연기해 내면서 제23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어렵지 않게 기억해 낼 수 있는 인물들이 다소 포진해 있다. 영혼이 뒤바뀐 엄마 역으로 <기쿠지로의 여름>과 <하나비>에 출연한 바 있는 기시모토 가요코, <키즈리턴>에 출연한 청춘스타 가네코 겐의 모습이 등장한다.



플레이어 버튼을 누르면 서서히 나타나는 영화의 메인 카피 '사랑하기 때문에 비밀입니다'란 문구가 오랫동안 가슴을 적시는 <비밀>은 무엇보다 밝고 아름다운 영상이 돋보인다. 포그 필터를 쓴 듯한 감미로운 영상에 1.85: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이 시원스레 펼쳐지기 때문. 간혹, 잡티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눈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며 돌비 디지털 5.1과 2.0 포맷을 지원하는 사운드 또한 무난한 편이다.



영화 본편 이외에 영화속 8개의 명장면을 모아놓은 Best of the Best, '천상의 한숨'을 비롯한 두 곡의 음악을 영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뮤직 비디오, 영화의 수상 내역을 텍스트 형태로 소개하는 Awards 코너, 역시 텍스트로 제공되는 인터뷰와 배우 소개, 포토 갤러리, 극장용 예고편 등을 제공한다. 그리 적은 분량은 아니지만 제작과정 다큐멘터리를 엿볼 수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비밀>은 심플한 메뉴 디자인과 깔끔한 파스텔톤의 영상, 여기에 잔잔한 음악이 곁들여 지면서 <러브 레터> 이후 최고의 멜로 영화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