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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누나의 쪽지를 찢어버린 사연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1-31 14:39:32
추천수 2
조회수   2,446

제목

첫사랑 누나의 쪽지를 찢어버린 사연

글쓴이

황보석 [가입일자 : ]
내용
그 누나를 처음 본 것은 중 2때, 여름의 열기가 아직 가시지 않았던 9월 초의 어느 오후 다섯 시쯤이었습니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놈 집에 놀러갔다 하얀 반소매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 교복 차림으로 학교에서 돌아오는 그 누나를 만난 것이었지요.



놀러온 동생 친구에게 짤막한(뭐라고 했는지는 잊어버렸습니다만) 인삿말을 건네며 환하게 웃어보이는 그 모습을 본 순간 온 세상이 환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또 그 누나의 모습 뒤로 열린 문과 문밖 정원 끝쪽 담벼락 앞에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일렬로 늘어서 있던 해바라기들도.



그때 그 누나가 입고 있던 교복, 잘룩한 허리선과 팡파짐한 엉덩이가 콘트라스트를 이루었던 그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 치마는 아마도 제가 마지막 숨을 쉬는 날까지 제 기억 속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공부를 같이 하겠다는 핑계로 거의 매일같이 그 친구의 집으로 건너갔고, 고 3이었던 그 누나는 과자도 가져다 주고 과일도 깍아다 주고 하면서 때론 한참씩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다 가곤 했지요.



그렇게 차츰차츰 그 누나와 가까워지는 사이 저는 중 3이 되었고, 그 누나는 인문계 출신이기는 했어도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가사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저도 친구놈과 함께 있기보다는 그 누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는데, 그건 아마도 둘이 같이 음악을 좋아했고 또 한 가지는 제가 팝송을 꽤 잘 부르는 묘한 녀석이기도 해서였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누나와 저 사이가 그냥 누나와 동생이라는 관계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머리 맞대고 엎드려 트랜지스터 라니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들을 때 풍겨나는 그 누나의 머리결 냄새, 그 머리칼을 만지작거리곤 할 때마다 이는 설레임과 흥분, 실을 꼬아 한 끝은 입에 물고 다른 한 끝은 손으로 잡아당기며 누나의 얼굴에 난 솜털을 뽑아주곤 할 때마다 저절로 일어서는 고추.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둘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밤이면 미리 정해둔 약속시간에 집을 빠져나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손잡고 걸으면서 노래도 부르고 때로는 에로틱한 영화도 보러 가고 영화를 본 다음에는 실습도 해보고 하는 일이 잦아졌지요.(단, 어디까지나 허리상학적이었으니까 오해는 금물!!)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초가을 무렵쯤이 되자 둘이 연애한다는 소문이 온동네에 파다하게 퍼졌고, 그 시점에서 친구놈은 제게 절교를 선언하고 친구놈 집에서는 제게 금족령을 내렸지요. 하지만 그게 말린다고 될 일은 아니어서 저는 뻐꾸기 울음소리(양손을 둥글게 합쳐 모아 바람을 불어넣어 내는 소리인데, 진짜 뻐꾸기가 화답을 할 정도로 그 소리가 똑같습니다,)로 누나를 불러냈고 그 다음에는 서로 팔짱끼고 콧노래로 웨딩마치 부르며 결혼식 예행연습을 하곤 했지요.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만 되나요? 제가 고등학교 입학하고 채 한 달도 안 되어 그 누나는 그만 시집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학년은 네 학년 위라도 나이는 세 살 위였으니 겨우 스무 살 되자마자 말이지요. 그 누나 집에서 저하고 둘이 사고칠까 두려워 급히 서둘러서 시집을 보낸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 뒤로 그 누나를 꼭 두 번 다시 만났습니다. 한 번은 제가 스물여덜 살 때였는데 그 누나가 놀러오라며 살고 있는 아파트 동호수를 알려주었지만 그때는 제가 마눌은 삼지 못하고 놓쳐버린 애인과 한참 열애 중이어서 그대로 흘려보냈고 두 번째로 만난 것은 몇 년 전 은행에서였습니다.



때는 연초 겨울이었으니까 이맘때쯤이었지요. 돈을 좀 찾으러 은행에 갔는데 공교롭게도 친구놈들 중 하나가 바로 얼마 전 그 은행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저를 보자 큰소리로 야 황보석 하고 부른 것이었지요. 그래서 볼일부터 보고 (지점정실로) 들어가마 한 뒤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맵시 고운 부인이 다가오더니 "저 모르시겠어요?" 하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 모습 그대로더군요. 나이들어 원숙해졌을 뿐, 화사하게 웃는 이미지는 그 누나를 처음 보았던 날 그대로였습니다.



볼일 다 보고 나서 그 누나와 함께 지점장실로 들어가 저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순탄하게 잘 살아왔더군요. 아들딸 모두 일류대 보냈고 남편도 상당히 성공을 거두었고... 그런데 헤어지려는 참에 그 누나가 쪽지에 전화번호를 적어주면서 며칠 내로 한 번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 뒤로 며칠 동안 갈등 참 많이 했습니다. 이 누나를 다시 만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옛정이 되살아나서 불륜이라도 저지르게 된다면? 혼자 머리 속으로 오만 가지 소설을 다 썼지요. 그러다 결국에는 그 쪽지를 찢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위험한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나 참 쑥맥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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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호 2012-03-05 06:21:29
답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br />
<br />
참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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