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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소설] 시내 2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1-27 09: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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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099

제목

[자전소설] 시내 2

글쓴이

박두호 [가입일자 : 2003-12-10]
내용


땅은 어느 새 눈으로 뒤덮였는데, 잿빛 하늘과 대조되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k는 휭단보도를 건너가면서 어젯 밤에 암중모색했던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다시 한 번 상기한다. 인파들이 그를 잣대로 하여 모세가 지팡이를 흔들듯 갈라지고 있었다.

k는 어젯 밤 특수상대성이론의 맹점을 발견한 것일까? 주마등처럼 추상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논문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빛의 속도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에 있어 가능한 최고의 속도라고, 즉 모든 사물을 측정하는 데 있어 일종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불변의 속도라고 선언했다. 빛은 모든 시공의 객체의 경험적 주관성의 차이 즉 상대성을 배제시키는 절대적인 관찰자다. 그러나, 그런 빛의 속도가 1초에 약 30만km임을 가정할 때 그 유명한 빛에서 시간의 개념이 소거되는 것, 말하자면 빛이 시간을 따라잡는다면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적으로연결되어 총화로서 눈에 상영된다. 빛은 영속성의 개념에, 그 범주에 등극한다. 나아가 기억이 기억이 아닌 것이 되면서 개인의 자아가 와해되어 주체는 다다한 기능으로 변질된다.

다시 말해 빛이 현상을 상정한다는 게 영원한 진리라는 게 여기서의 필요조건이라면, 빛이 시간이라는 유한성을 잃어버린다면 하나의 현상 자체가 성립되지 않게 된다. 마찬가지로 현상 자체도 와해되는 것이다. 주관성이라는 개념이 파탄남에 따라 객관성이라는 개념도 파탄에 이른다. 따라서 동양사상의 무의 정신이 추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둠이며, 온갖 삼라만상의 개개의 파멸은 유한성에 대한 종결을 반증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주의 존재는 영원히 유有이다. 왜냐하면 빛이 시간을 따라갈 수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k는 커피집에 당도했다. 눈은 이제 드문드문 내려 가느다랗게 점멸해가고 있었다. 땅거미가 지면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k는 자신이 즐겨 이용하는 개인 커피집에 발을 내려놓았다.



커피집의 조명은 던킨 도넛과 맞먹었다. k는 언제나 이러한 조명의 감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없었던 것 같았다. k는 빛을 사랑했다. 빛이야말로 행복이란 현상을 위한, 천국의 색채에 입각한 가장 인간생활에 현학적인 매개체 아닌가? 빛이 아리땁게 그만의 세상을 메우고 있었다. 그 빛깔이 그의 지갑을 더욱 더 근질거리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순간 그는 요의를 느꼈다.





"아이스 까페라떼 샷 하나 추가요."



이 집은 자바커피를 원두로 써서 아주 마일드한 맛이 특징이었다. 사실 특별히 뛰어난 맛은 아니었지만 인간의 버릇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의 발걸음은 항시 여기 머무는 것이었다.



주인이 정성껏 만든 커피를 직접 자기손으로 테이블에 대령하고서, 그는 도도히 자기 자리로 물러간다. k는 바깥의 밤의 풍경의 한조각 낭만을 느낀다. 커피에서 새어나오는 방향은 아스라히 그의 코끝을 감싸안는다. 섬세한 향기가 베어든다.





그에게 커피는 자신의 무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무릇 기사들이 검을 자신의 유일한 무기로 여기듯 그는 커피를 자신의 하나뿐인 지성의 도구로 여겼다. 커피는 그의 생명이었다. 듀피오[더블]로 나온 커피의 향취를 천천히 탐미하자면 그는 이윽고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담배를 않 피고 술을 않 먹는 자에게 커피는 하나의 일용할 양식이요, 꺼지지 않는 촛불의 불줄기였다. 더군다나 커피는 지식이라는 세피로트, 일종의 영지주의적 계시를 그에게 내려주었다. 그에게 커피는 축복이었다.



시간이 풍금소리처럼 흐르고 커피는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었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커피집에는 아무 사람도 없어 고요한 배경음악만 연주되었다. 언뜻 들으니 젊은 치기가 깃들어 있는 쇼팽의 에튀드인 것 같았다. 정온의 단정한 음이 실내를 따뜻하게 녹아내렸다. 커피의 불멸의 맛과 상반된 이 연주곡이 커피와 일말의 상관성이 있다면 그건, 그것들의 실루엣에 가만히 깃든 단정함이었다. 이 교양적 하모니의 광휘란 얼마나 본질스러운 것인가. k는 가만히 자신의 내적인 저 밑의 본능의 공통분모를 응시했다. 수컷의 야수적 본능이 교양이란 여성성에 의해 말도 못할 정도로 잘 잠재워지는지. 그것은 마치 인위적인 어머니였다.



"가보겠습니다, 아저씨." 무뚝뚝하지만 체면치레가 잦은 커피집 아저씨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그 풍모는 마치 오늘도 당신의 본질을 살아가기 위해 저희 집을 이용해주시군요, 하는 매세지를 흘리고 있는 듯했다.



커피집을 나가면서 그는 지그시 바깥의 내음을 응시했다. 차가운 겨울의 유년스런 감수성이 은은히 순식간에 재편되는 느낌이었다. 자연은 이토록 사람의 감성을 감흥시키는가!







k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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