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모델이 수입되어 입고되자마자 들고왔으니 벌써 10년이나 흘렀네요.
제가 실버 모델 구입한 첫번째 고객이라고 했으니... (당시엔 수입사 직영매장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흔들리지 않고 좋은 음악을 들려준 이제는 가족같은 존재입니다.
그냥 이대로 고장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자리를 지킬 것 같습니다.
레가처럼 고집스럽게 자신의 사운드를 철저하게 지키는 곳도 없지 싶습니다.
지금 라인업은 소리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레가 사운드의 핵심은 (카이트/EL8 →) 아라/알야 + 엘라 스피커가 아닌가 싶습니다.
2000년 라인업은 사실 껍데기만 바꿨을 뿐이지 알맹이는 그전과 거의 동일합니다.
지금도 보니까 신모델과 스피커 라인 빼고는 2000년 라인업을 그냥 끌고 오더군요.
10년전 매장에서 고를 때 면밀하게 비교한 바로는,
레가 사운드는 하위 기종과 상위 기종간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엔 브리오와 마이라 사이에 루나도 있었지만 3기종이 출력만 조금 다른 정도입니다.
아라/알야, 엘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들어보면 이것이 레가 사운드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우퍼 구경이 약간 큰 쥬라는 조금 살집이 있는 박력 있는 소리가 나고,
최상위 모델이었던 나오스는 완전히 다른, 전혀 레가스럽지 않은 사운드였습니다.
엘라가 아라/알야와 다른 점은 트랜스미션 라인 설계라는 것과 좀더 비싼 트위터를 쓴 점 정도.
알아/알야는 비파 트위터를 수정한 것이고 엘라는 스캔스픽 트위터를 수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비파건 스캔스픽이건 간에 레가는 결코 상위 라인 트위터는 쓰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쥬라와 나오스를 제외한 모델들의 우퍼는 모두 레가 RR125를 사용해서 공통적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지금 나오는 RS 시리즈도 여전히 RR125 우퍼를 쓰더군요.
어쩌면 레가 사운드의 핵심은 페이퍼콘을 쓴 이 작은 우퍼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레가의 로이 갠디는 복잡한 크로스오버를 싫어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해외포럼에서 스피커를 뜯어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저항 정도만 달려있는 매우 심플한 구성이라고 합니다.
레가가 워낙 Simple is Best를 부르짖는 회사라... 모든 모델이 다 그렇습니다.
엘라는 그나마 바이와이어링 단자가 달렸지만 레가는 대놓고 바이와이어링은 별 효과가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금도금 단자 안쓰는 것도 그렇고, 매뉴얼에 비싼 케이블 쓰지말라는 얘기도 빼놓지 않으며,
턴테이블 VTA도 조정이 안되게 만드는 등.. 덕분에 개조부품 회사들이 덕을 보는지도...
레가는 심지어 개조해서 소리가 바뀌는 것이 필연적으로 더 좋은 소리로 바뀐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역설합니다.
이 똥고집 회사의 소리 특성은 밝고 화사해서 기분좋은 소리가 나지만 날카롭지 않으며
작은 디테일까지 포착하는 revealing한 사운드는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아라/알야같은 경우는 묵직한 저음은 없고 통통거리는 듯한 저음이지만 그렇다고 심하게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대체로 슬림한 저역대의 양감으로 가려운 곳을 시원하지는 않지만 살살 건드려주는 맛이 특색입니다.
박력있는 Big Sound를 기대하고 레가를 선택하면 후회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릴 가능성이 거의 99% 이지만,
반대로 풍성한 저역을 포기하고 다른 특색을 취할 생각이라면 만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10년전에 주파수대역을 나누어 시디로 녹음해서 테스트했을 때 엘라가 45Hz 정도까지도 내려갔습니다.
야마하 YST-SW315 서브우퍼와 1:1로 비교를 했을 때 엘라의 저역이 더 단단합니다.
(야마하가 따앙~ 이라면 엘라는 땅~)
저역이 슬림하게 느껴지는 것은 100Hz 아래의 저역이 문제가 아니라 250Hz 아랫쪽 때문에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아라와 엘라가 동일한 우퍼를 쓰지만 볼륨을 높여서 들어보면 아라는 통통 튀는데 반해 엘라는 양감이 오히려 살아나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에 제 시스템 총액의 10배 정도에 해당하는 장비를 가지고 계신 분이 놀러오신 적이 있는데
잠시 오이스트라흐의 멜로디아 녹음을 들려드렸더니 놀라시면서 이건 얼마짜리냐고 물으시더군요.
디테일이 아주 뛰어난 시스템이었다면 50~60년대 선명도가 떨어지는 라이브 녹음이 기분좋게 들릴 수가 없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적당히 밝고 화사한 레가 사운드가 더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아무튼 지금까지 이 변태같은 레가 시스템이 먹어치운 시디만 2천장이 넘습니다.
만약 시디 1천장 구입한 비용을 기기에 투자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역시 소리에 대한 욕심보다는 음악에 대한 욕심이 더 크다는 것을 알기에,
음악을 듣는 것은 단순히 귀로 소리의 재현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작곡자가 혹은 연주자가 바라본 것을 함께 상상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음악에 빠져들게 해준 이 가족들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얼마전 어릴 때 듣던 아바의 the Album을 LP로 다시 구매를 했습니다.
이사하면서 LP를 잃어버린 탓에 항상 가슴이 아팠는데,
다시 들어보니 코 찔찔 흘리던 시절 인켈 전축 Pro-10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소리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이 레가 시스템에 딱 맞는 음악이 아닌가 싶습니다.
'so I say, Thank you for the music for giving it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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