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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대세동참] 서정적인 시 한편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9-01-08 22: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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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58

제목

[늦은 대세동참] 서정적인 시 한편

글쓴이

이동옥 [가입일자 : ]
내용
제 십팔번은 박노해 시인의 글에 곡을 붙인 '노동의 새벽'입니다.

오랜동안 백무산 시인의 시나 박노해 시인의 시, 정호승 시인의 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누구나 다 아는 시를 고를 것입니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입니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시 구를 떠올릴 때 마다 제가 남도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능선 너머로 해가 넘어갑니다.

벌겋게 퍼져나가는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는데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가 바닥에 깔립니다.

그런 남도의 시골길을 혼자 조용히 걸어갑니다.

길은 외길로 쭉 뻗어있고, 그 길을 저는 걸어가야 합니다.

바쁘지는 않지만 가야만 하는 길..

오늘 밤 쉴 곳이 있는 지 아련하지만

밥짓는 연기와 아이를 부른 소리로 마을이 잠시 소란스럽습니다.

그러나 금새 아이들은 집으로 들어가고 집집마다 가족들이 뜨스한 밥상을 둘러 앉습니다.

저는 이런 마을을 보면서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길의 끝에는 내 가족들이 있을 것이고

이 길을 가면서 보이는 밥짓는 연기와 아이들의 웃음 소리, 그리고 가족들이 둘어 않은 밥상의 모습은 저에게 한 없이 보이는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때는 가을입니다. 저 마을의 집 집마다 술을 담그고 있을 것입니다.

어릴 때 따끈한 문간방에 배를 깔고 누워 듣던 술익는 소리가 그립습니다.

어떤 소리가 나도 만지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기 때문에 술항아리를 만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 꿀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솨~ 하는 소리가 납니다.

술이 잘못되는 것이 아닌지 어린 마음에 걱정이 됩니다.

살짝 뚜껑을 들어 안을 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뚜껑을 들어 볼 엄두가 안나서 그냥 다시 눕습니다.

할머니에게 술단지에서 소리가 들렸다고 이야기하러 일어납니다.

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원래 그런 소리가 난다고 웃습니다.

같이 웃으면서 안심하고 다시 술단지 옆으로 파고듭니다.



문득 정신을 차립니다.

저는 남도의 밀밭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마을에 어둠이 깃들고 정적이 마을을 싸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저녁의 잠자리를 걱정해야 합니다.

옷깃을 세우고 걸을을 재촉합니다.

하지만 아직 눈은 조금전까지 애들을 부르고 밥짓는 연기가 넘실거리고 그 안에서 술이 익는 마을을 바라봅니다.





시 한수가 소설 한권과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반신반의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술익는 마을'이라는 다섯글자 안에도 소설 한권이 들어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구나 시는 소설보다 그 사연들이 훨씬 다양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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