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즐겨찾기추가
로그인 회원가입 | 아이디찾기 | 비밀번호찾기 | 장바구니 모바일모드
홈으로 와싸다닷컴 일반 상세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정보] 제철에 만나는 굴...oyster 알고 먹자!! [펌]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8-12-16 07:03:04
추천수 0
조회수   990

제목

[정보] 제철에 만나는 굴...oyster 알고 먹자!! [펌]

글쓴이

김창욱 [가입일자 : 2000-06-04]
내용
제철에 만나는 굴...oyster 알고 먹자!!



-글쓴이:칼릴지브란



경남 통영에서 생산되는 굴은 국내 생산량의 약60%이상을 차지 하고 있다.



그만큼 조류의 흐름이 빠르지 않아 안정적인 양식을 할수 있고 자연 수정을 많이 할수 있는 여건이 잘



되어 있다고 볼수 있다. 때문에 굴의 생장 속도나 그 육질이 타 지역의 굴보다 좋다고 말할수 있다.







여기서 이 칼릴지브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굴의 진부한 영양학적 가치를 말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다.



흔히들 알고 있기로 굴에는 비타민,무기질, 단백질등이 그 어떤 식품보다 풍부하게 함유된 바다의 우유라고 한다.



물론이다. 남자의 정액을 구성하고 있는 요드와 아연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정력에 좋다고도 알려져 있으며,



신부나, 스님등이 금기시하거나 타부시하는 음식중에도 당연 으뜸으로 포함되어 있다.



실제예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흔히들 생굴을 섭치하지 않는걸로 알고 있으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쪽지방의 굴들이 생굴로서 섭치가 불가능한 종일 뿐이지 실제로 생으로 섭취되는 굴은 1개당 3달~5달러를



넘고 있으며, 부자들과 바람둥이들은 한끼식사에 굴울 40개혹은 50개까지 먹는다고들 한다.



여자에게 있어도 마찮가지다. 흔히 여자들은 굴의 그 물컹한 육질땜에 굉장히 싫어들 하시는데



참고하시라 아마도굴은 지금 사용 하고 있는 그 어떤 화장품보다 더 뛰어난 천연 화장품이라고 할수 있다.







그럼 이쯤에서 내가 말하고자하는것은 무엇일까...



바로 아직도 굴을 양식과 자연산으로 구분 짓는 정말 단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자연산은 말 그대로 자연적으로 수정되어 자연적으로 자란것을 말하며, 양식은 인공적으로 수정되어



인공적으로 자란것을 말하는데 이는 사료등을 먹여 키운것을 말한다.



하지만 굴은 양식이란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단지 생육과정이 보다 더 효율적이냐 비 효율적이냐의 차이라고



말할수 있다. 굴의 양식은 중국에서 이미 5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굴의 양식 방법은 침목식, 투석식, 수하식 이 세종류로 구분되어 있다.



전라도 서해안에서는 투석식(돌을 굴의 착란 장소로 제공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남해안에서는 침목식



(해안가 지방의 해변에 나무로된 침목을 박아 그기에 빨랫줄 같은 줄을 달아 빈껍질을 매달아 놓으면



산란기때의 굴의 포자가 그 껍질에 붙어 자라는 방식)과 수하식(수심이 깊은 바닷가에 부자를 뛰우고



그 부자사이에 줄을 친후 그 줄 사이에 착란된 굴의 빈 껍질을 매달아 수심5미터 아래에 침수시켜



다발처럼 굴을 양식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이돈키호테도 양식이라고 말하면서 양식과 자연산의 차이를 논하지 말라는건 무엇일까?



이것을 간단하게 비교하면 이렇다.



투석식(가난한 초가집) 침목식(중산층 단독주택) 수하식(대단위 아파트)



이것이 내가 말하는 생육의 환경을 말하는 것이다.



굴은 사료를 먹여서 키우는 것이 아니다. 오직 바다속에 존재하는 프랑크톤이라는 미생물을 먹고 자란다.



태어 날때부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투석식 굴은 월력에 의하여 15물이라는 물때에 맞추어야하며,



그것도 모자라 밀물과 썰물에 따라 물속에 잠기는 시간이 짧다보니 자연 먹는것이 작을수 밖에 없다.



생육환경이 나빠 빨리 자라지 않는것이다.(서해안의 굴과, 해안가 바위에 붙은 굴들이다)



그에 비해 중산층인 침목식은 그나마 투석식보다는 나아 수심이 조금 깊은 곳에서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고만 있기때문에 조금은 나은 편이다. (진해 가덕만의 굴이다)



하지만 통영의 수하식은 연중 24시간 수심 5미터의 수중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24시간 플랑크톤을



섭취하므로 그 생장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때문에 알이 굵고 검은테가 선명하며, 우유빛을 띠고 있다.



부자들이 잘먹어 혈색이 좋은것과 같다고 생각하면된다.



여기에는 중금속이라던지 기름의 유분띠등이 굴에 함축되지 않는다.



지금은 인공수정이 가능해졌지만 불과 몇해전만 해도 통영에서는 굴 채취가 끝날무렵에 튼튼한 껍질들을



줄에 꿰어 땟마에 실어 두었다가 굴이 한참 산란을 시작하는 5~6월에 조류의 흐름에따라 수정난들이



진해의 가덕만이나 진동의 진동만으로 모이기 시작하면 그곳 어촌계에 소정의 착상비를 지불하고



일정기간 침수시켰다가 다시 그 껍질들을 땟마에 담아 실어 수하식 어장으로 가지고 와 설치하여



그해 겨울 농사를 준비 하곤 하였다.







이렇듯 굴은 인위적인 환경에 의하여 그 생장의 속도가 달라질뿐 양식과 자연산의 구분이 지어지지도 않는데



어떤이는 서해안의 작은 굴( 흔히 어리굴젓을 담아 먹는다, 너무작아 그것 아니면 먹을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님 해변에 붙은 작은 굴 들이 자연산이라며 조금은 이해 안되는 핸동을 한다.



생산량이 적어 가격이 비싼것도 사람들을 현혹하는데 한목한다.



요즘은 바위에 붙은 굴, 홍합등은 먹어면 절때 안된다.



바다가 오염되지 않았던 20년 전만해도 저녁 찬을 위해 바위에 붙은 굴들을 쪼세기라는 연장으로 따오곤 했는데



지금은 패류의 특성상 중금속이나, 기름의 부유물등을 체내에 축측하는 섭성이 있기때문에 그 냄새나,



성분 상태가 식용으로 부적합 하기에 함부로 채취해서 먹어면 안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무지가 있는데 바로 굴은 여름에는 먹을수 없다이다.



지금은 우주선이 달나라 가는시대이다. 옛날..아주 옛날 롱롱 어고데이, 원서 어폰어 타임에



버틀러라는 양반이 식사 지침서라는 것을 썼다.



그기에는 굴은 영문 계절의 R자가 빠진 계절에는 먹지 마라고 되어 있다.





그것은 5월에서 6월 7월에는 굴의 산란철이기 때문에 아린 맛이 있으며, 육질이 물러져 쉬 변패되므로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높기때문이었다. 허나...





그말을 아직까지 듣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1800년도 얘기다.



현재 여름에 먹고 있는 굴은 (굴의 산란기때 포함) IQF 즉 아이켐플이라고 굴의 생육이 가장 좋은



1월과 2월에 채취하여 깨끗하게 손질, 영하 40도씨에서 지하청정수로 2번의 수막막(보호막)을 입히는



과정을 거친 굴이다.



즉 참치와 동일하다고 보시면 된다, 그런데 마구로, 참치는 4계절 냉동육을 먹어면서 굴에는 참으로



무지한 편견을 가지고들 있다.







모쪼록 바다의 보물, 바다의 우유, 천연 화장품, 카사노바도 , 돈쮸앙도, 나폴래옹 오빠야도 즐겨 잡숫고,



클래오 파트라 언니야도 피부에 양보 안하고 걍 먹었다는 굴의 계절이 돌아 왔다.



올 겨울부터는 우리 부맛행 회원님들 만이라도 굴에대한 확실한 상식으로, 무지한 사람들을 선도하며



먹을수 있겠금 해보심이 어떨런지.....



올해 굴의 작황이 좋지 않아 지금 10킬로 그램에 13만원에 육박한다고 하니 에고 어쩌나..



경기 안좋은땐 이런 눔이라도 싸게 먹고 건강들 유지해야 할터인데...







굴을 사랑하는 칼릴지브란



--------------------------------------------------------------------------------









충무김밥의 유래...알고 먹으면 힘이 된다. [펌]







충무김밥의 유래...알고 먹어면 힘이 된다.



글쓴이: 칼릴지브란





한려수도의 중심지 통영(옛지명- 충무시)시의 미륵산 케이블카가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탑승인원 50만명을 돌파할거라는 얘기와 함께 많은 분들이 통영을 방문 하고 더 나아가



욕지도, 사량도, 한산도, 매물도, 등으로 섬 여행을 많이 떠나시고 계십니다.



이와 함께 통영을 다녀 오신 분들이 한번씩 먹고 오거나 사서 오는 음식 중의 하나가 충무김밥이라는 음식인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음식에 만족 혹은 불만족 그리고 가격 면에대한 만족도를 토로하고 계셔서



여기에 충무 김밥에 대한 작은 역사를 올려드립니다.







충무 김밥의 역사는 정확하게는 고증된것이 없으나 대략 60년이상 된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통영에서 어업을하던 어부들은 한번씩 조업을 나가면 몇일씩 걸리곤 했습니다.



현재의 어선처럼 선내에 취사장이 별도로 없던 그들은 도시락, 혹은 간편하게 먹을수 있는 김밥등을



싸가지고 나가곤 하였는데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음식들이 쉬 상하고 하였습니다.



하여 생각 해 낸것이 쉬 상하지 않는 음식 혹은 상하여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생각해 내게 되었던거죠.



통영은 예로부터 수산물의 보고라고 할 만큼 많은 어종들이 잡히곤 하였는데요



그중 하나가 쭈꾸미, 갑오징어였다는군요.



또한 일본인들이 많이 산 곳중에 하나인 통영은 지금의 어묵, 즉 오댕의 가공 기술또한 많이 발전해 있었구요...



배추김치 보다는 조금 익어도 맛을 내는 무를 어스썰은 슷무김치와 말린홍합 조림,



맨밥을 김에 말은것을 함께 가지고 나가 먹었던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서민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었던거죠.



이 음식이 상업화 되기 시작한것은 1970년대 부터라고 합니다.



경제 사정이 조금 넉넉해지고 충무가 한려 해상 국립공원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면서



충무를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 나기 시작했구요,



또한 충무 주변의 도서 지방에서 생필품 구매와 섬에서 생산되는 물건들을 팔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이 늘어 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정기여객선 혹은 유람선 선착장 주변으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 하였습니다. (모든 물류의 운송이 육로가 아닌 해로를 이용한 이유도 있었겠죠)



그때만 해도 충무김밥은 미리 김밥을 싸서 온기가 빠지지 않게 함지박에 담아



무명천으로 덥어 두어 수분의 증발과 보온을 하는정도 였고,



무김치를 뺀 나머지 음식(쭈꾸미,혹은 갑오징어,오댕,적당하게 말린 홍합 조림)은 먹기 좋게 하기 위하여



대나무 꼬치에 꿰어 한 꼬치에 4개정도가 꿰어져 있는 상태로 판매가 되었는데요...



주로 판매되는 곳은 현제의 강구 안이라 불리는 중앙동, 항남동 일대의 여객선 터미널 근처였습니다.



아마도 40여곳 이상의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들이 충무김밥 행상을 하였던것으로 기억됩니다.



이곳은 이 두곳은 여객선 터미널과 유람선 터미널로 나누어져 있었는데요



주로 판매되었던 곳은 유람선 터미널 즉 현재의 충무 뚱보 할매김밥이 있는 그장소 앞



(그때는 유람선 터미널)이었습니다.



여객선 터미널에서는 활성되지 못했던 이유가 그때 당시 금성호, 명성호라는 충무발 부산행 여객선이 있었는데요



그 시간이 무려 3시간에서 4시간 정도가 소요되어 그 여객선 안에서 김밥을



여러사람들이 판매를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배안에서 김밥을 사서 소주도 한잔하고 허기도 채우고 했던거죠.



그러던 어느날 현재의 대부분 사람들이 원조로 알고 있는 뚱보 할머니께서



그때 당시 서울의 모 대학에 진학중이었던 자재분의 권고로 1981년 서울 대학로 축제였던



국풍81이라는 축제에 참석하여 그 김밥을 판매하게 되었는데요.



그해 그 축제의 최고 하이라이트 였던 가수 이용과 함께 속이 없는 희안한 김밥이라는



충무 김밥이 언론의 스포라이트를 받게 되었던 겁니다.



하여 그 이후로 충무를 찾는 외지인들은 마치 충무김밥이 특별한 먹거리라도 되는양



그것을 먹고 오지 않으면 안되는것처럼 과 포장하기 시작했구요.



지금은 사라저가는 광관 버스 여행이 한창일무렵, 한려 해상국립공원을 보러 오기위하여



관광객이 피크를 이룰때에는 상상 이상의 판매가 이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줄서서먹는 모습은 일상이 었죠.



그러다 1980년 중반 무렵 동양의 나포리라 불리던 강구 안이 얕은 수심으로 인하여



대형화 된 선박들의 접안이 불가능해지자 굴착과 매립으로 인하여 항구 접안 시설로 둔갑하면서



유람선 터미널은 현 서호동과 도남동으로, 여객선은 육로 교통의 발전으로 사리지게 되면서



도서지방 정기 여객선만 서호동으로 이전되었고



이로부터 충무 김밥의 난전 함지박 시대는 막을 내리고,



관광지 정돈 사업에 의하여 점포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충무김밥하면 뚱보 할매를 떠 올리는데요.



물론 그 할머니로 인하여 대중화 된것은 사실이기는 하나 그때 당시 그 할머니와 함께 함지박 난전을 하셨던



많은 분들이 전부다 원조라고 할수 있고요.



그중 한일 김밥(뚱보 할매 김밥 옆집), 풍화 김밥(여객선 터미널 이전 당시 서호동으로 이전)등과 같이



모여 있는 전부는 그때의 분들이거나 가업을 승계하신분들인지라 다들 원조라고 할수 있는겁니다.



그리고 현재 통영의 뚱보 할매김밥의 승계자는 지금 영업을 하고 있는 사장님이 아니라 그의 따님이었는데요,



아주 어렸을적부터 할머니를따라 김밥 장사를 해오던 따님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당연히 가업을 승계할거라 생각했는데요.



갑자기 대구에서 살고 있던 아드님과 며느리가 상속권자임을 내세워



가계및 상호등록등을 걍 가지고 간것이기 때문에 짖접적인 원조라고는 할수 없는것입니다.



직접 손으로 말던 전통은 사라지고 쓰시기계로 김밥을 마는걸로 알고 있구요.



그분의 따님은 그 이후로 고향을 떠나 서울의 롯데 백화점 근처에서 아주 큰 가계를 하고 있으며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무 김밥의 판매 가격이 그 질과 양적인 면에서 조금 비싼편이라고들 생각하시는데요.



사실은 없잖아 그런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 만드는 과정과 정성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고도 할수 있습니다.



무김치와 오징어(현제는 쭈꾸미와 갑오징어가 안남), 오댕 등의 조리 과정이



그냥 일반인들이 생각하는것 처럼 단순하지가 않기때문입니다. (만드는 과정은 향토 음식 노하우라 비밀입니다.)



그리고 점포를 잘 선택하여 들어 가시면... 특히 풍화 김밥 같은 경우에는 아침에는 김밥뿐만 아니라



해장국과 계란등 푸짐한 음식을 대접 받을수 있으므로 굳이 유명세를 타지 않는 집을 선택하시는것이



진정한 원조의 집이고 참맛임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충무김밥의 밥알 한알 한알에는 충무사람들의 긴 시간 삶의 애환과 거친 숨소리가 묻어나 있으며,



해풍에 젖어 있는 한려 해상국립공원의 정취 하나하나가 담겨져 있으므로 눈으로 담아오는 행복과 사연의 가격으로



비교하여 본다면 그다지 거친 가격은 아니지 않을까요??







고향 충무를 사랑하는 칼릴지브란-^^



추천스크랩소스보기 목록
  • 광고문의 결제관련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