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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십여년 전부터 트랜지스터 앰프와 CD플레이어들간의 음질 차이는 없다고(설령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요근래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오디오파일이 제법 늘기는 하였지만, 전체 오디오 마니아를 놓고 본다면 극히 미미한 숫자일 것이다. 이같은 오디오觀은 한 사이트에서 전파되었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사이트의 이름을 따 '실용오디오 사상'이라고 불리워지는데, 사실 나는 그 명칭엔 불만이 아주 많다. '앰프의 음질 차이는 가격 차이만큼 그렇게 아주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돈이 많다면 좋은 기기를 쓰는게 더 좋겠지만, 가격대성능비가 좋은 기기를 잘 골라 쓰는 것도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라 좋다' 정도로 오인되기 딱 좋은 명칭이기 때문이다. 실용오디오 사이트를 만든 교수님의 오디오관, 즉 내가 지지하는 오디오관은 전혀 그런 생각과는 비슷하지도 않다. 이 이야기는 이정도만 해두자.
하려던 얘기는 이거다. 지난 주에 전격적으로 안방에 놓고 쓰던 파워 앰프와 프리 앰프, CDP, 턴테이블, 스피커들을 몽땅 팔아버렸다! 길게는 십수년 전부터 하나씩 모아온, 그야말로 소년적부터의 꿈의 상징같은 기기들이었다. 본격 오디오파일들의 기준으로야 별로 값나가는 기기들도 아니겠지만, 내 형편으론 하나씩 구입할 때마다 굉장한 결심과 경제적 출혈을 수반했던 것들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외면하고 어렵게 결심해 구입한 것도있고, 소중한 날의 기념으로 선물받은 것도 있다. 저마다에 얽힌 사연은 다르지만 어느것 하나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서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 놓여있던 게 없다. 그런 기기들을 한꺼번에 다 내쳤으니, 우연히 [와싸다] 장터에서 내 판매글을 본 윤성우 감독이 화들짝 놀라서 무슨 일 있냐며 걱정하는 댓글을 남긴 것도 무리가 아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은 앰프의 차이를 믿지 않으면서 왜 마크 레빈슨이나 크렐 같은 고급 메이커의 앰프를 쓰나? 그때마다 나는 최대한 성실하게 답했다. 소리가 다르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기기들이 내 어린날의 꿈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음악을 듣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도달한 지금의 자리에서(그것이 시간이든, 환경이든, 무엇이든) 그 전의 자리를 돌아보게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는 것을 질문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헤어라인 브러쉬드 처리된 마크레빈슨 파워앰프의 차가운 메탈 섀시와 정교한 방열핀, 금속을 덩어리째 뚝 떼어 가공한 것 같은 크렐 프리앰프의 무뚝뚝하고 미니멀한 디자인, 세계 최고의 목수가 혼을 담아 마무리한 것 같은 린의 손덱 플레이어... 그것들을 보며 얻는 만족감이 일종의 쾌감이기도 하고, 허영심이기도 하고, 자기동일시이기도 하다는 것은 아무리 솔직하게 답하려고 했어도 사실은 남에게 환히 드러내기 창피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갑자기 나는 생각했다. 더이상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하지 말자. 내가 어떤 모양으로 드러나는지 신경쓰지 말자. 그런 생각 할만큼 나는 젊지도, 예민하지도, 넉넉하지도 않다-라고. 나부터가 지금의 내 모습에 자신이 없는데 남에게 그 나를 전하고 설명하고 상상하게 하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한가-라고. 그리고 내겐 더이상 여유있게 즐길 '허영'이 남지 않았다고.
껍데기였지만, 내겐 소중했던 껍데기들이었다. 힘들게, 하지만 그야말로 나답게 있는 힘껏 속도를 내어 그 껍데기들을 벗으니, 내겐 내 첫 오디오 기기였던 소형 인티 앰프 하나와 이번에 고장난 CDP대신에 들인 새 CDP가 남았다. 오라(AURA)의 VA-80SE 인티 앰프와 크릭(CREEK)의 에볼루션 CDP다. 일주일 사이 그 앰프와 CDP를 연주해줄 후보로 세 조의 스피커가 우리집 거실에 드나들었다. 소누스 파베르의 콘체르티노 홈, 틸(Thiel) CS2.3, 그리고 마지막에 선택된 프로악(ProAc) 리스폰스 D15. 원래 제일 유력한 후보는 틸이었다. 몇년 전 지인의 집에서 워낙 좋게 들었던 기억이 생생한 데다, 틸은 그럭저럭 하이엔드의 한 자락에 속하는 스피커이기도 해서 이름있는 기기들이 모두 나간 내 음악공간의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급히 구하느라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주고 들여온 틸은 내가 원하는 소리를 내주지 않았다. 하이엔드라는 평이 괜히 따라붙는 것은 아니어서 굉장한 분해능을 과시하는 스피커였다. 독주 피아노나 현의 재생은 그야말로 백조의 노래를 듣는 것 같이 아름다웠다. 가늘고, 세밀하고, 예리했다. 엄청 잘 만든 스피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날인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 거실에서 이 스피커로 폴리니가 연주한 쇼팽의 전주곡을 들었다. 새벽의 공기를 가로세로로 짜넣어 뽑아내는 소리결같았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이런 소리가 아니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틸이 택배로 도착해 앰프에 연결하여 첫 음을 낸 그 순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는 지난 수년 동안 소중히 아끼며 들었던 스펜더 SP100이 내주는 소리였다. 맑으면서도 넘칠 만큼 풍윤하고, 어느 한 순간 심연처럼 끝없이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 가뜩이나 손해를 많이 보고 구입한 틸을 다시 다음 스피커로 바꾸며 또 손해를 보았다. 그렇게 해서 꽤나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프로악을 맞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에서 짐작하는 이도 있겠지만, 프로악은 내가 원래 들어왔던 그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따듯하고, 풍윤하고, 아련한 슬픔의 냄새를 낸다. 이 스피커의 디자인은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고, 그동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온 거실 인테리어와의 조화라는 면에서도 꽝이다. 하지만 껍데기를 벗어버리기로 하였으면 그런 것까지 다 벗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스스로 등을 밀었다. 그러고 나니 온전히 음악이 남았다. 나는 다시 그 소리 앞에서 웃고, 눈물 글썽이고, 꼬박꼬박 잠든다. 그래, 내게 음악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이었다. 단호하게 결심하고 모질게 실천하지만, 나는 본질적으론 언제나 뒤를 돌아보고, 오래오래 후회하고, 그 흔적을 갈무리해 간직하는 종류의 사람. 당신이 그걸 뻔히 알고 있다면 당신은 나를 사랑한 게 맞다.
## 틸로는 쇼팽을 많이 들었고, 프로악으로는 롯시니와 슈베르트를 듣고 있다.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롯시니의 [현을 위한 소나타]를 리핑해 이 페이지에 올려 놓는다.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다연이는 스피커 앞을 지날 때마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나까지 아주 외웠어 외웠어"라고 불평하는 음반이다^^ 올려놓은 곡은 4번의 3악장이다.
당신은 불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잠깐만이라도 내 생각, 내 마음, 내가 보는 아름다움을 같이 보아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겐 그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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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의 새 오디오 풍경 / Rossini / 현을 위한 소나타 4번 3악장 / Ensemble Explor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