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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비정규직 기사외(통째로 퍼옴)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8-09-04 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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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948

제목

현대 비정규직 기사외(통째로 퍼옴)

글쓴이

이호 [가입일자 : 2001-11-04]
내용
최근에 조중동문에 현대자동차과 현대중공업을 비교하는 기사가 자주 나온다. 특히 14년 연속 무쟁의 타결을 통해 현대중공업이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고 대서특필한다. 현대중공업노조는 상급단체에 조합비를 내지 않으면서 정규직 노조원들을 위해서만 조합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적립금이 150억원 넘게 쌓여있고, 여러가지 혜택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는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다.



오히려 조중동문과 경제신문들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비정규직 및 산별노조 등에 대한 단체협약을 제시한 것에 대해 비판하면서 산별노조 자체가 구태의연하다고 비난한다. 한쪽으로는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개별 사업장을 넘어선 요구를 하게 되면 그에 대해서도 비난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산별노조를 폐기하고, 노조를 없애야 할까.



아래 경향신문 기사는 베스트 클릭 기사로 올라와 있어서 그러한지 의외로 많은 댓글이 달려있는데, 그 중에는 현대중공업 사측이나 노조에서 의도적으로 올린 듯한 것도 있다. 아마도 평소에는 보지 않았을 경향신문 홈페이지까지 와서 의견을 조작하는 댓글을 다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쓰럽다.



이와 관련하여 예전에 네이버블로그에 썼던 글도 함께 담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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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노사 ‘그들만의 돈잔치’…회사격려금 정규직 850만원, 비정규직 0원 (경향, 정제혁기자, 2008년 07월 26일 02:34:51)

14년연속 무쟁의 타결 뒤엔 비정규직 눈물



현대중공업 의장부문에서 일하는 ㄱ씨(31)는 배 내부에 파이프 라인을 설치하는 비정규직 용접공이다. 아침 7시30분에 출근해 저녁 6시까지 하루종일 큰 파이프 2~3개, 작은 파이프 14~15개쯤을 설치한다. 잔업을 포함해 월 300시간 넘게 일하고 받는 돈은 150만원. 휴가를 가면 그 기간만큼 임금에서 제외된다. 일당을 받는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휴가는 ‘무급휴직’이나 다름없다.



같은 작업장 바로 옆에서 일하는 직영 노동자(현대중공업이 직접 채용한 직원)는 휴가를 앞두고 회사로부터 근 1000만원에 가까운 축하금과 격려금을 받는다.



배의 외장을 만드는 건조부에서 일하는 ㄴ씨(30)는 휴가를 갈지 못갈지 알지 못한다. 소속 하청회사의 휴가 일정이 여태 나오지 않아서다. 현대중공업 직영 노동자들은 8월 2~13일 12일간 여름휴가를 떠나지만 이 기간에도 공장은 가동된다. 회사는 직영 노동자들로부터 특근 신청을 받아 생산계획을 잡고 하청회사의 휴가 일정은 거기에 맞춰 결정된다. 그는 지난해 휴가비조로 30만원을 받았다.



정규직은 다르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지난 23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을 마무리지었다. 14년 연속 무쟁의 타결 기록이다. 정규직 노동자 2만5000여명은 임금이 9만8800원 인상됐다. 상여금은 700%, 연말엔 성과금 387%를 받는다.



올 여름엔 영업이익 2조원 돌파 축하금(통상금의 100%), 군산조선소 기공 축하금(100%), 노사공동선언 지속 실천 격려금(100%), 생산성 향상 격려금 100만원, 무쟁의 타결 축하금 50만원, 무재해 2배수 달성을 위한 격려금 50만원이 지급된다. 이에 따라 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는 29일 평균 850만원의 격려금을 받게 됐다. 사측은 “종업원들이 더욱 신바람나게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안은 160여개 업체 소속 1만8000여명에 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직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는 하루종일 똑같은 곳에서, 똑같은 일을 한다. 신분만 다를 뿐이다. 신분에 따른 처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850만원 대 0원이다.



하청 노동자들에게 사측과의 단체협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측은 “직접 채용한 직원들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교섭을 요구하면 폐업을 하거나 주동자를 해고하는 경우도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2004년 이후 매년 단체협약서에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직영노조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있으나마나다. 올해 단체협상 과정에서 노조는 사내하청의 처우 개선과 관련한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다. 현중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지만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며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올해는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노조 사내하청지회 측에선 말을 아꼈다. 이승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사무국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룰 것처럼 포스터를 붙이고 선전하기에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는데…할 말이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같은 공장에서 함께 일해 성과를 낸 것인데 하청 노동자는 빼고 정규직만 돈잔치를 한 데 대해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less..



<절망의 공장>, 이 영화를 결국 보지 못했다. 나중에라도 볼 기회가 있을까.

2004/11/20 13:05

이 영화를 몰랐는데, 아래의 레이버투데이에 올라온 이문영 기자의 글을 보고, 토요일 일정을 바꾸어서, 그리고 일요일에도 다른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이를 보기로 했습니다.



이걸 왜 몰랐는지... 이문영기자의 글은 이 영화가 나온 배경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8회 서울 국제노동영화제의 작품소개에는 이렇게 나와 있네요.



<절망의 공장 - 현대중공업 그리고 비정규직> (2004, 한국, 40분, 울산노동미디어센터)



Factory of Despair - Hyundai Heavy Industries and Nonregular Workers (2004, Korea, 40 min, Ulsan Labor Media Center)

故 박일수 열사의 장례식이 전국 노동자장으로 치러지면서 55일간의 열사투쟁은 일단락 되었다.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 그토록 절박한 유언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한국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물론 열사의 시신이 뼛가루가 되어 땅에 묻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그 전선이 어떻게 돌파되느냐에 열사투쟁,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만이 아니라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걸려있는 것이다. 울산노동미디어센터가 제작한 이 열사투쟁 속보는 2월 14일 분신소식이 알려진 당일부터 시작해 55일간을 관통하며 진행된 투쟁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긴박한 정세 속에 만들어진 속보 속에는, 하청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 현대중공업 자본의 악랄한 탄압, 어용세력들의 난동 등이 꼼꼼하게 담겨져 있으며, 치열하지 못했던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과 새롭게 자라나는 희망도 들어있다.



배문석 Moonsuk Bae

- 울산노동미디어센터 소속

- 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문화미디어국장

- 현대중공업 노동자영상패 ‘창’ 회원

- 99년 전진하는 노동자 (노동영화제 현장영상패)

00년 쓰러진 골리앗 그러나 (노동영화제 현장영상패)

01년 새로운 선택

02년 다시 싸움을 - 울산총력투쟁보고서

"카메라는 나의 무기이다. 다른 동지들과 달리 카메라를 들고 싸운다. 이것은 앞으로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재주 없는 사람이 영상을 한다고 주변에서는 '예술'이니 ‘감독’이니 농을 걸어도 내가 가진 무기로 노동운동 속, 하나의 점이 되고 선이 되고 싶다."



오늘 국제노동영화제에 갔다 왔는데, '절망의 공장'은 어제 상영작이었다. 내가 오늘 상영작으로 착각한 것이다. ㅡ.ㅡ;; 그래서 대신 다른 영화를 봤는데, 나름대로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나중에 언제라도 이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2004/11/2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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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공장, 울산 현대중공업

박일수 열사 투쟁기록 영화로…한때 ‘동지’였던 탁학수-박일수의 엇갈린 운명 (이문영 기자, 2004-11-19 오후 3:47:33 입력 ⓒ매일노동뉴스)

두 사람이 있었다. 같은 기업, 같은 작업장에서 일했다. 투쟁의 자리마다 함께 했다. 함께 어깨 걸었고, 함께 소리 질렀다. 함께 눈을 맞았고, 함께 주먹을 뻗었다. 한 사람은 정규직, 다른 한 사람은 비정규직. 같은 노동자면서도 다른 노동자. 그래도 그들은 ‘동지’란 이름으로 함께 싸웠다.



시간이 흘렀다. ‘정규직 그’는 원청노조 위원장이 됐고, ‘비정규직 그’는 변함없이 하청노동자였다. ‘정규직 그’가 이끄는 노조를 현장에선 ‘어용’이라 불렀고, ‘비정규직 그’가 소속된 노조는 회사가 인정하지 않았다. 둘 사이엔 어느덧 깊은 강이 흘렀다.



‘정규직 그’가 잘 나가던 어느 날, ‘비정규직 그’는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한 마디 말만 남겼다. 새까맣게 탄 ‘비정규직 그’를 두고 ‘정규직 그’가 말했다. “분신했다고 다 열사가 되는가?” 순간 ‘정규직 그’는 두 가지 이름을 버렸다. ‘민주노조’란 이름과, ‘동지’란 이름. 수많은 목숨이 피 흘리며 지켜 온 이름, 그 먹먹한 이름을.









희망 없이 버텨야만 하는 곳, ‘절망의 공장’

‘정규직 그' 탁학수, ‘비정규직 그' 박일수. 두 사람이 조우했다 멀어져 간 곳은 ‘절망의 공장' 울산 현대중공업이다. 올해로 8회째인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이들의 엇갈린 운명을 엿볼 수 있다.



영화제에선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며 지난 2월 14일 분신, 생명을 끊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 사건 투쟁이 상영 중이다. ‘절망의 공장-현대중공업 그리고 비정규직’이란 제목을 달았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으로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한껏 고양시킨 박일수 열사 사건의 영화제 상영은 시기적으로도 의미심장하다.



‘절망의 공장’은 박일수 열사 분신 후 장례식을 마치기까지 54일간의 기록이다. 9월 15일 민주노총 금속연맹의 현대중공업노조 제명이란 충격적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영화는 생생하게 보여 준다.



현재 민주노총 울산본부 미디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감독 배문석씨는 박일수 열사 분신 직후부터 사건 수습 전 과정을 카메라로 담아 성격이 각기 다른 몇 개의 편집본을 별도로 만들었다. 각종 인권·노동 관련 영화제 출품만 이번이 네 번째로, 상영 목적에 맞는 그림을 따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번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상영 중인 편집본은 원래 금속연맹이 현중노조 제명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에 들어가기 직전, 대의원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영상이다. 자연히 편집의 초점은 사건 수습 과정에서 현중 직영노조가 하청노조에 보인 부적절한 행태에 맞춰져 있다. 배문석 감독의 말이다.



“제명표결 직전에 상영한 영상이 대의원들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독려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현중노조를 제명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박일수 열사의 죽음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겐 원죄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제명 결정 후엔 현중노조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이 영상이 제명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촬영 당시에는 현중노조로부터 협박도 많이 받았다. ‘찍지 말라’는 말 외에도, ‘죽여 버리겠다’는 말도 들었다. 멱살을 잡히는가 하면, 술취한 현중 경비들이 카메라를 탈취하려고 해서 경찰이 출동했던 적도 있다.”



영화는 박일수 열사 분신 직후부터 투쟁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좇아간다. 카메라는 고통스런 장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숏과 숏, 신과 신,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에서 앵글이 멋을 부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 '절망의 공장'을 연출한 배문석 민주노총 울산본부 미디어국장.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3명의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현중경비들에 의해 바지와 신발이 벗겨지고, 손이 뒤로 묶이고, 청 테이프로 입이 봉해진 채 끌려 내려오는 장면, 현중 정문 안으로 투쟁대오가 처음 진입한 날 경비들이 살수차로 쏘아대는 물과 뭉텅이로 뿌려대는 최루가루를 뒤집어쓰고 추위 속에서 노동자들이 얼어 가는 장면, 오토바이 헬멧 쓴 경비가 항의하는 노동자의 얼굴에 소화기를 들이대고 뿜어대는 장면, “아기가 있어요”란 비명에도 아랑곳 않고 농성천막을 뭉개 버리는 장면, 경찰이 수수방관하며 교통정리나 하고 있는 장면….



여기에, 탈진해 가는 하청노동자들이 “현중자본 박살내자”란 구호를 쥐어짜듯 끌어올릴 때, ‘회사사수대'로 동원돼 이를 지켜보던 정규직들이 여기저기서 웃음을 흘리고, 그 중 한 명이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좆까”를 외치는 장면에까지 이르면, 가슴 속에서 우뚝우뚝 솟는 그 무엇과, 눈가에서 슬금슬금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그 무엇 때문에, 관객은 뻣뻣해지는 뒷목을 쓸어대며 떨어지는 시선을 주체하지 못한다.



“당시는 정몽준 의원이 걸린 총선이라는 특수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중자본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올인했던 시기였고, 민주노조 진영에서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한판 대결의 장을 펼쳤던 때였다. 현중 쪽에서는 선거 때마다 암약했던 사조직들까지 다 노출시킬 정도였다. 이 조직들이 자신들의 명의로 플래카드를 만들고 유인물도 뿌리면서 ‘박일수는 정신병자다’ ‘술 취해서 죽은 사람을 열사라니 웃긴다’ 등 온갖 악선전을 해댔다. 현중은 2만 명 정도 되는 전 사원들을 회사사수대회 같은 걸로 소집해서 과장급들을 사수대로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하청노동자들의 가장 큰 설움은 같은 ‘노동자’란 이름 아래, 같은 현장에서 일해 온 동료 정규직 노동자들의 태도였다. 박일수 열사 분신대책위의 활동을 “선거에서 정몽준 의원에 위해를 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며 현중노조 조합원이 의구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 노조 대의원들은 대책위 농성장으로 대거 몰려와 천막을 부수고, 플래카드를 뜯고,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글귀가 쓰인 만장을 압수한다. 그리고 각목. 이들 중 한 명이 손에 각목을 들고 이리저리 휘저을 땐, 하청노동자들이 느꼈을 암담함이 스크린을 뚫고 객석까지 전달된다.



분노보단 절망이란 말이 정확하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탄압하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절망이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현중은 그래서 ‘절망의 공장’이다.



“현중에 ‘절망의 공장’이란 이름이 붙은 지 오래됐다. 98년도 이후부터 현장 활동가들은 자기의 공장을 ‘절망’이라 불렀다. 이는 95년 이후부터 회사가 집요하게 현장을 깨오는 과정에서 연유한다. 회사는 대의원 포섭뿐 아니라, 대의원선거 자체에도 철저히 개입했다. 활동가에 대한 폭행도 예사였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노조는 조합원들의 불만을 고자질하는 회사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했다. 조합원들이 희망을 꿈꾸기보다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치지 않고 버티는 ‘절망의 공장’이 되고 만 것이다.”



하여, 카메라는 곳곳에서 운다. 가족들과 같이 울고, 해금가락과 같이 운다. 시신을 빈소로 옮기는 장면에서 울고, 관이 화장터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상복 입은 노동자들도 울고, 뼛가루를 땅에 묻는 장면에선 노래가사도 운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감독은 대책위에도 메스를 들이댄다. 대책위 위원장 직무대행(장인권 민주노총 울산본부 수석부위원장)이 “민주노총 총연맹 멱살이라도 잡고,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끝까지 관철시키겠다. 분명히 약속한다”며 거듭 다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와 전격합의, 합의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에, 하청노동자들이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도 빼지 않고 고스란히 담았다. 촬영 당시 ‘제3자’였던 감독이 이후 대책위의 주축인 민주노총 울산본부로 자리를 옮겨 ‘당사자’가 됐지만, 이 민감한 장면을 굳이 넣은 것은 정규직 지도부로 구성된 대책위의 한계를 숨겨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울산본부에서 일하지 않을 당시에 찍고, 울산본부 간부가 된 후 편집을 했지만,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가질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합의를 이끈 후 하청노동자들의 반발을 샀던 본부 수석부위원장도 편집본을 보고 별로 개의치 않았다. 우리 운동의 감출 수 없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울분을 토했던 하청노조 동지의 분노 역시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일 수 있다. 양측 사이의 더 심한 갈등도 있었지만, 투쟁동력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포함시키지 않은 부분도 많다.”



박일수-탁학수의 엇갈린 운명



▲ 작년 2월 배달호 열사 관련 투쟁현장에서 앞뒤로 앉아 있는 탁학수 현중노조 위원장(오른쪽 아래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두 번째)과 박일수 열사(세 번째).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엔딩 부분에 나오는 한 컷의 사진이다. 유독 눈길을 끄는 사진 속 두 사람의 얼굴 때문이다. 작년 초 사망한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와 관련한 투쟁현장에서 열사의 영정을 든 노동자 뒤로 탁학수 현중노조 위원장과 박일수 열사가 앉아 있다. 영화는 먼저 클로즈업시킨 탁학수 위원장 얼굴 위로, 탁 위원장이 박일수 열사 사망 직후 열린 대책위에서 한 말을 오버랩시킨다.



“개인적이고 조직적 역할이 없던 사람(박일수 열사)이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열사가 되나?”



조성웅 하청노조위원장이 “박일수가 노조활동을 조직적으로 못했다고 해서 열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잘못”이라고 했지만, “분신이 곧 열사인정은 아니”란 취지의 뜻을 굽히지 않던 탁 위원장은 다음날 대책위에서 현중노조의 이름을 뺐다.



그렇다면 탁학수-박일수 두 사람이 배달호 열사 투쟁현장에서 앞뒤로 나란히 앉은 건 우연이었을까? 우연이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증언하는 배문석 감독의 말은 충격적이다.



“마지막 장면의 사진은 투쟁이 끝난 후 입수한 것이다. 작년 초 배달호 열사 투쟁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은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박일수 열사가 정규직 노동자 중에 가장 친했던 사람이 탁학수였다. 현중에서 같은 작업분과에서 일했다. 두 사람은 많은 것들을 같이 이야기하고 고민했던 사이였다. 심지어 분신을 마음 먹었을 때 탁학수한테 가서 ‘내가 죽어야겠다, 죽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맘을 털어놨을 정도였다.”



박일수 열사를 열사로 인정할 수 없다던 탁 위원장이 박일수 열사의 친구였다는 배 감독의 말은 당혹스럽다. 배 감독의 이어지는 말은 한 때 동지였던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한 순간에 극명히 엇갈리는지 보여 준다.



“그랬던 두 사람이었는데, 1년 뒤 한 사람은 활동가에서 어용노조 위원장으로 돌아섰고, 한 사람은 분신자살했다. 당시 현장활동가 신분으로 배달호 열사 투쟁에 같이 참석했던 탁학수는 작년 말 선거를 앞두고 현장활동을 다 끊고 회사쪽으로 돌아섰다. 이 순간부터 탁학수는 비정규노조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았고, 표현도 늘 ‘하도급노조’란 말을 썼다. 현중과는 상관없는, 현중이 책임지지 않는 노조라는 뜻이다. 아주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탁학수 위원장은 박일수 열사에 대해 “친했다기보다 좀 잘 안다”는 표현을 썼다.



탁학수 위원장과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 박일수 열사와 절친했던 사이라고 들었다. 사실인가?

“그런 걸 나한테 확인할 필요가 있나. 친했다기보다 좀 잘 안다.”



- 박일수 열사는 한 때 위원장님을 많이 신뢰했다고 들었다.

“작년 6, 7월경에 헤어졌다. 같이 일을 해 오다가 그 즈음에 헤어졌다.”



- 헤어졌다는 말은 운동의 길을 달리했다는 뜻인가?

“그런 뜻이다. 한 조직에서 같이 활동했을 때 잘 알았다는 것이고, 작년 6월쯤 해서 박일수씨가 조직을 떠나면서부터 서로 외면하고 지냈다.”



- 박일수 열사가 분신 전에 위원장님을 찾아가서 “죽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의 사이였다고 하던데.

“그런 일이 있었다. 직전이라기보다도, 떠났을 당시도 그런 이야기가 가끔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되고, 살아서 해야 한다’고 말을 해 줬다. 그때도 (박일수씨의 말도) 운동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뭔가 사건이 있어야 한다’라는 차원이었지, ‘자기가 해야겠다’라는 건 꼭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는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하는 이야기 아닌가.”



- 박일수 열사를 “열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했는데, 그 의견은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그런 질문에도 답해야 하나.”



- 답변을 부탁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박일수와 친한 것과는 별도로, 일반적으로 열사라고 규정하는 대목에서 과연 분신했다는 이유, 유서 하나 남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열사로 규정해야 하는 건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 한 때 절친했던 사이고, 고민도 나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길을 달리하면서 아주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박일수씨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박일수가 분신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경로가 안 있었겠나. 우리 현대중공업도 협력업체와 관련해서 비정규노동조합도 있고, (그건) 박일수가 같이 합류해서 만들려고 했던 노동조합이다. 회사와 협력업체와 관계 문제가 있다고 할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게(분신했다는 게) 쉽게 이해되겠나. 우리가 활동 속에서 분신이나 타살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열사로 볼 수 있는 건데, 그런 점에서 박일수씨는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누가 뒤에서 지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는 운동적 관점에서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분신했다고 다 열사라고 인정할 것 같으면, 이 땅에 열사 아닌 사람은 누가 있나. 예를 들어 노숙자가 열차에 치어 죽으면 열사가 되나. (박일수가 열사면) 그 사람도 열사지. 안 그런가. 산업현장에서 쫓겨나서, 명퇴 당해 가지고 오죽 했으면 열차에 치어죽겠는가. 그런 사람은 유서 안 썼다는 이유만으로 열사 안 되고, 유서 쓰고 불살랐다고 유서를 인정해서 열사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안 맞다는 거다. 친한 거하고는 다른 거지.“



- “나의 운동적 관점 아니다”라 했는데, 그렇다면 대책위 투쟁과정에서 직영노조가 하청노조 운동 거점을 부수기도 했는데, 이른 불미스런 일은 운동의 관점에 맞나.

“겉으로 볼 때 내가 시켰다고 보는 건데, 내가 시킨 적도 없고, 나간 적도 없다. 다만 지역 대책위 하고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우리 중공업 하고 상황에 맞게끔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느냐는 논의를 하려고 정중하게 우리의 요구를 요구했지 실력행사 했던 것은 한 번도 없다. 문제가 된 건 대의원들이 주도가 돼서 그런 행위들이 몇 번 있었다. 할 때마다 내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하지 말라 한다고 되는 일인가. 노동조합 현실이 그런데.”



탁학수 현중노조 위원장의 얼굴이 다시 작아져 스크린 한쪽으로 되돌아가면, 이번엔 박일수 열사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리고 얼굴은 곧 그가 죽었던 그때처럼 불타오른다.



박일수 열사가 사망으로 촉발된 하청노조 투쟁은 이후 소지공들의 현중사내하청노조 집단 가입을 낳으며 ‘희망’을 기대하게 했지만, 머지 않아 와해됐고, 현중과 대책위간의 합의사항도 거의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들 말처럼 ‘사람 대접’ 받기 위해선 열사를 휘감은 불길이 아직은 꺼질 수 없을 것 같다.



열사가 뜨거울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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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의 그림자는 더이상 없다 2004/09/16 04:06





전노협, <철의 노동자> - 골리앗의 그림자



1. 사랑한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동지들이여

우리들의 결사투쟁은 이다지도 끝이 없구나

사나이 한평생 노동자로 태어나

투쟁과 투쟁으로 살아온 우리 이것이 나의 길 노동자의 길



2. 그대 보았는가 적들을 자본가의 앞잡이를

우린 비록 밀려왔지만 싸움은 시작이란다

사나이 한평생 노동자로 태어나

깨지고 또 깨지고 돌고돌아도 기필코 일어선다 선봉에 선다



아~골리앗이여 서러워 울지말아라

아~골리앗이여 노동자의 깃발이여



나에게 현대중공업노조는 대공장 남성사업장 노동자의 상징이었다. 1987년 7월 노조가 생겨난 이후 대기업노조로는 유례없던 1988년 128일 파업, 1990년 최초의 골리앗 농성, 94년 68일 파업, 95년 양봉수 열사 투쟁, 96년 임단투 투쟁까지 현대중공업 노조는 그야말로 남한 노동자계급 투쟁의 역사 그 자체였고, 지금의 민주노총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역사의 현장에 조돈희, 이갑용, 이영현, 정영빈 등 골리앗의 전사로, 투쟁의 선봉대로 싸워왔던 투사들이 있었다.



그랬던 현대중공업노조가 9월 15일 민주노총에서 제명되었다. 금속산업연맹(위원장 백순환)이 9월 15일 속리산에서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현대중공업 노조 제명이라는 징계 안건을 상정하여, 지난 3월 제명을 결의한 중앙위 결정을 최종확정한 것이다. 대의원 대다수가 제명에 찬성하였다(87.9%). 민주노조의 이름에서 현중노조가 빠지는 것이다.



현중 노조는 이미 박일수 열사가 분신했던 3월부터 연맹비를 8개월째(약 3억2천만원) 납부하지 않고 연맹사업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대의원대회에도 현중노조 대의원들은 참가하지 않았으며 탁학수 위원장만이 참가해 소명 발표를 했지만, ‘유감표명’ 수준에 그쳐 오히려 대의원들의 반발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중노조원들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위해 앞장서 온 현중노조가 노조로서 인정할 수 없는 부당한 내용 때문에 제명당했다고 보고, 울분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당면 시기 노동운동의 핵심의제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단 말인가? 적어도 하청업체 직원이었던 박일수 열사의 분신사건까지 있었으면 그만한 책임감을 느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정규직 노조라면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하려는 최소한의 움직임을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는가? '내 청춘 다바쳐서 목숨걸고 싸운' 결과가 비정규직을 내모는 것인가?



현중노조는 오히려 사측과 가까운 입장을 보였고, 현중 대의원들은 구사대 같은 행태를 연출하면서 박일수 열사가 분신한 그 정신을 훼손하는 태도를 보였다. <골리앗의 그림자>에 나오는 자본가의 앞잡이를 자처한 것이다.



사실 현중노조를 둘러싼 정황은 이미 제명사태를 예고해왔다. 1994년 68일 파업이후 현대중공업 노조는 '무쟁의 10년'을 기록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무기력했고, 노동조합의 투쟁성이나 원칙이 훼손되는 경우도 있었다. 자본의 신경영전략을 현장에 제대로 파고들어갔고, 그 결과 파업을 위한 찬반투표조차 사측의 탄압으로 진행될 수 없는 상황으로 전락하였다. 노조원들은 정규직에 안주하면서 비정규직 및 하청노동자와 선을 그었다. 게다가 탁학수 노조 집행부는 해고자들의 구제를 도모하기는 커녕 현중자본과 함께 해고자들을 청산하는데 주력해왔다. 이를테면 이갑용구청장이 해고자들의 아침선전전에 참여하는 일이 잦아지자 현중노조 대의원들은 정문 앞에 설치된 해고자들의 불법설치물을 치워 달라는 요청을 하고 구청장이 이에 응하지 않자 직무유기로 고발하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청노동자들의,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천막을 정리하라고 요구하며 정규직이 아닌 노동자들과 대립하면서 자랑스럽게 '현중노조가'를 불렀다. 이 노래를 작곡했던 김호철 님은 무슨 생각이 들까? 한때나마 이 노래를 중얼거렸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더이상 현중노조가 영원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도 욕먹지는 않겠지.







현중노조 글, 김호철가락 - 영원하라 현중노조



내 청춘 다 바쳐서 목숨걸고 싸웠다

저들의 식칼테러 온몸으로 맞섰다

미포만 오좌불에 밀어닥친 적들을

함성으로 불꽃으로 끝까지 싸웠다

자 동지들아 앞장서가자 노동해방에 선봉이 되자

칠천만의 해방을 위해 영원하라 현중노조







매년 새해가 되면 현대중공업 노조의 파업투쟁을 배경으로 한, 백무산 님의 '복 많이 쟁취하시라!'라는 시를 항상 여기저기 퍼나르며 결의를 다졌었는데, 앞으로도 이 시를 떳떳하게 옮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시에 나오는 느낌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랬었는데, 지금의 현중노조를 보면서는 아무래도 그 진정성이 우러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복이란 남이 주는 것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 믿지만, 이 시의 주인공들이 다른 이들의 복을 딛고 서서 복 많이 쟁취하라고 하고 싶지 않다.



답답한 하루다. 현중노조여 영원하라고, 골리앗의 전사들이 노동자의 깃발로 우뚝서라고, 새해 복많이 쟁취하라고,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올까?



복 많이 쟁취하시라!

(현중노조는 말고!)

백무산



만여명이 결집한 설 휴무 첫집회

파업지도부 전원은 단상에 올라

조합원들에게 세배를 올린다



휴가에 들기 전에 부서별 토론과

설문지를 토대로

휴가기간 동안 쉼없이

전술 기획과 토론조직 점검에

투여했던 파업지도부



--우리 노동자들은 요행이나 바라고

기회를 잡아 한탕치고

노동자의 피를 빨아 채우는

자본가적인 복을 받으라고

절을 하는 것이 아니다



총대장 이영현은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이 파업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약속과 결의의 새해인사라고.....



대의원들도 부서대열 앞에서

열을 지어 큰절을 올린다

만장의 박수!

동지들 새해 복 많이 쟁취하시라!



이 글에 딸린 댓글들

옹기

가슴뜨겁게 달아오르며 사랑한다 현대중공업을 노래했었는데......

씁쓸하네요.ㅠ.ㅠ



bolshevik

민노총의 현중노조 제명 결정은 백 번 생각해도 잘 했다는 생각밖에는... 아무개집단처럼 과거의 향수나 현재의 권력에 연연하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골리앗에서 무쟁의 노조로 변질된 것처럼, 앞으로는 또 반대방향의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죠. 그 때 다시 부를 수 있을 때까지 골리앗의 그림자는 잠시 묻어두고요.



김생

대학 초년에 주먹을 불끈지며 불렀던 골리앗의 그림자.. 가슴이 아프군



한가해

현장에서 다시 일어설 겁니다. 전 그렇게 믿습니다. 이갑용, 이영현 동지는 없지만, 하청노동자라는 신분으로 노동계급의 깃발을 세울 것입니다.



Posted by 새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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