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오디오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용산과 세운상가를 다녔습니다. 샤프인가 소니인가의 큼지막한 붐박스를 머리맡에 두시고 스테레오사운드니 오디오생활이니 하는 잡지만으로 10년을 버티시더니 아버지께서는 90년대 초반에 드디어 JBL의 S5500에 카운터포인트의 SA-5000과 NPS-400, 그리고 와디아 16을 들이셨습니다. 더구나 트랜스페런트 선재는 전기줄에 도시락통 같은거 붙은게 왜그리 비쌌는지 이해를 못했지요. 그리고는 거의 15년째 선재하나 바꾸지 않으시고 쭈욱 오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버지의 명령대로 1년을 함께 살고(^^), 분가를 했지요. 어릴적부터 주말이면 아버지와 오디오 가게를 돌아다니며 JBL 4344나 매킨토시의 MC500 같은 것을 꿈처럼 구경하고 다녔기 때문에, 저도 작은 시스템이 있었으면 싶었습니다. 그래서 중고 데논 CX3 시리즈와 캐나다 Reference 3A Dulcet으로 와싸다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근 15년 가량을 바꿈질 없이 음악에만 심취하셨지만, 철없는 아들은 형편에 무리되는 [아주 조금더 좋은 기기]로 하염없이'위'만 바라보며 한 1년 반을 보낸듯 싶습니다.
스피커는 레퍼런스 3A에서 B&W의 805s로, 그리고 다시 CM1에서 하베스 슈퍼HL5로 왔고, 인티는 데논 CX3에서 럭스만 550AII를 거쳐, 꿈에그리던 아큐페이즈의 입문기, E-213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소스기기가 뭐 중요한가 싶었고, 스피커와 앰프에 무리하게 질러대다 보니, 집에서 서브로 거의 쓰지 않던 7CD 체인저를 업어왔다가, 데논 CX3의 SACDP, 에소테릭 DV-60, 다시 데논 DCD-2000ae를 거쳐 야마하의 CD-S2000을 듣고 있습니다. 케이블도 막선에서 뮤S1을 쓰면서, 아 이렇게 소리가 달라지는구나 깜짝놀랐고, 오디오아날리제 오발, 마사이, 킴버4TC 등을 거쳐서 최근에 오야이데의 OR-800으로 안착했습니다.
OR-800을 마지막으로,'니어필드환경에서 이정도면 이제 끝이야'라고 스스로 자뻑하는 소리를 찾은듯 싶었습니다. 이제 한 5년후쯤에 공간 업그레이드를 꿈꾸며, 좋은 음원들을 모아보자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전체를 정리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머리글이 길었지만, 장터에 내놓는 글을 워드에 저장해놓고, 하루에도 열두번 마음이 바뀌는 요즘, 애착 깃든 시스템 사진들을 올려봅니다.
[아큐페이즈 E-213]
사연이 좀 있는 기기입니다. 매물 내놓은 럭스만 550AII가 한 세달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주인을 만나면서, 욕심을 내어 신품을 덜컥 사버린 기기입니다. 아큐페이즈의 녹색 로고불빛이 언젠가부터 로망이 되면서 환율로 정신없는 가격에도 지르게 되었지요. 블라인드 테스트 환경에서의 음질에 대해 말도 많지만, 분명히 음악을 빠져들게 하는 엄청난 뽀대를 지닌 녀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박스개봉한지 보름만에 장터의 E-550을 보고 급매로 내놨다가 어찌어찌한 사연이 있어 다시 거둬드린 녀석이지요. 럭스만 550AII가 다정한 온기가 느껴지는 소리라면, 아큐페이즈는 정갈하면서도 투명한 그대로의 소리를 내주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E-213에 물려보았던 B&W CM1은 너무 단정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베스 슈퍼HL5를 물리면서 이 둘은 이제 떼기 어려운 조합이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하베스 슈퍼 HL5]
출장중에 예약을 하고, 귀국을 하자마자, 아내에게는 오후에 도착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바로 분당으로 달려가 업어왔습니다. 반갑게도 전주인분께서는 아큐페이즈의 c2800 프리에 P7000 파워를 쓰고계셨어요. E-213에 물려야하는 저로서는 이 꿈의 기기에 물려있는 하베스가 너무 두려웠습니다. 집에가면 청음했을때 소리보다 너무 실망이 크지 않을까 싶었지요. 하지만, 그분은 하베스는 E-213 정도면 지금의 분리형 아큐페이즈에 크게 떨어지지 않는 훌륭한 소리를 내줄 것이다 걱정말라고 해주셨지요.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서 하베스를 연결해본 순간, 정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Tori Amos의 라이브반중에서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듣는데, 이 작은 방에서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이렇게 따뜻한 목소리 였구나 싶었습니다. 전주인분과 스피커 포장을 하면서 오른쪽 스피커의 바닥 모서리 한쪽에 작은 흠을 발견하고 서로 깜짝 놀라 당황스러웠지만, 미안하시다며 기름값 넉넉히 주시더군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음악을 좋아하고 이제 하이앤드 오디오의 끝자락 저기 저 언저리에 막 들어온 후배를 아껴주시는 것 처럼 자상하고 세심하게 배려해주시고 설명해주셔서, 참 좋은 사람까지 얻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도 가까이에 있어 한번 찾아뵈야지 하면서도 여의치 못하네요. 투박한 덩치만 아니라면, 하베스는 제 취향에 딱 맞는 멋진 스피커 입니다. 더구나 전주인분께서 SMS 철제스탠드랑 한몸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었는데, 역시나 다른 곳에 올려봤더니 소리가 확 달라지더군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수십평의 거실 공간이 아니라면 묵직한 철제 스탠드는 필수라는 생각입니다.
[야마하 CD-S2000]
에소테릭 DV-60에 럭스만 550AII를 조합하고 나니, 스피커는 도저히 엄두가 않났습니다. 그래서 805S가 사라진 허전한 자리에 CM1을 들였었지요. 작은 방에서는 저음의 양감을 빼놓고는 제 막귀에 805S와 크게 다르지 않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고 참 기특한 스피커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격비로 보면 스피커:앰프:CDP가 1:3:5인 상류에서 하류로 갈수록 가격이 팍팍 떨어지는 조합이 되었었지요. 이게 다 오디오 디자인 보다가 생긴 일이었습니다. 에소테릭을 시작으로 판갈이를 하면서 CDP는 데논의 2000AE를 샀습니다. 과연 인기제품답게 100만원 미만에서는 여러모로 다른 대안이 없다 싶은 좋은 기기였지만, 왠지 실버색상이 아큐페이즈와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실물로 한번 보고 꼭 들이고 싶었던 야마하의 S2000을 들였습니다. S2000이 출시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나중에 또 바꿈질을 하면 잘 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실물로 봤을때의 첫인상이 너무 강하여 꼭 갖고 싶었습니다. 검정색상이어서 어떨까 싶었지만, 일단 아큐페이즈 E-213의 판넬색상과 잘 어우러지면서 보기 좋았고, 듬직한 알루미늄 트레이에 풀밸런스 전송까지, DCD-2000AE보다는 한 수 위라고 생각했지요. 아큐만 아니라면 같이 발매된 인티앰프랑 조합을 해보고 싶은 멋진 기기입니다.
[아큐페이즈 옵션 보드 DAC-20]
E-213 신품구매한지 보름만에 장터 출현한 E-550 때문에 씁쓸한 일을 격으면서, E-213에 애착을 가져볼라고 옵션보드까지 구매를 하였습니다. 뭔 사운드카드같은 것이 6만엔에 신품가 100만원에 육박하는가 싶으면서도, 거의 반가격이면 중고가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장터에 출현한 DAC-20을 또 덜컥 사고 말았죠. 모든 기기들이 제가 말한 가격에 최소 5배 이상 주고 산 것이라는 것을 알면 와이프가 정말 저 미워할것 같아요. 이것 역시 대수롭지 않게 10만원 주고 산거라 했는데, 그런게 뭐 10만원 씩이나 하냐고 돈 많이 쓴다고 아주 혼났었습니다. 저로서는 DAC는 처음이라 과연 1-2백짜리 CDP에 내장된 DAC보다 얼마나 좋은 걸까 반신반의 하면서 연결을 해보았습니다. 막선에서 뮤S1으로 업글했을때의 충격이 느겨졌습니다. 야마하의 CD-S2000이 나름 훌륭한 DAC를 사용했다고 자랑하는데도 불구하고, 소리의 풍윤함이 달랐습니다. 싸~하고 촉촉하게 했다가 투명하고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더군요. 광출력이 되지 않는 SACD도 이제는 아예 레이어체인지하고 레드북 CD 모드로 하여 DAC를 통해 듣습니다. SACD 모으느라 월급날마다 3-5장씩은 꼭 질러줬는데 말이죠... 아큐페이즈를 앰프만 쓰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시도해보시라고 추천드립니다. 어지간한 선재 업글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OR-800]
오야이데의 OR-800은 꼭한번 써보고 싶은 그런 장비중에 하나였어요. 지난해에는 장터에 나올때마다 번번히 놓쳐왔었는데, 이제는 환율때문에 신품이 거의 90만원 가까이 되어버린, 제 예산과는 이제 너무 동떨어진 녀석이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가격인상전에 구입하셨다가 한달 쓰고 내놓으신 분이 계셨고, 마침 연말정산이 입급된 날이어서, 이런 계시를 저버리는 것은 죄라는 생각이 들어 송금드리고, 다음날 받았습니다. 소리가 아닌 뽀대와 디자인에 눈이 먼 제 일천한 오디오 취향을 아주 제대로 충족시켜주는 만듦새였습니다. 바이와이어링을 해보려고 리버맨 마사이를 들인지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곧바로 비교를 해보았습니다. 저도 모르는 제 취향이 이거 였구나 싶은 소리를 내주어서, 부족한 돈을 매꾸기 위해 얼른 마사이와 4TC를 장터에 내놓았습니다.
40대에는 가로세로 10미터쯤에 천정고 3미터 가량 되는 방에서 가구는 스트레스리스 리클라이너 딱 하나 두고 이정도의 시스템을 다시 들어보기를 꿈꿉니다. 즐거운 오디오 생활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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