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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과 설렁탕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8-09-03 09:05:28
추천수 1
조회수   2,018

제목

응원과 설렁탕

글쓴이

서동화 [가입일자 : ]
내용
몇해전 어떤 취객이 밤에 좁은 골목길에 쓰러져 있다가 지나가는 차에 치어 죽은 일이 있었다. 방범카메라도 목격자도 없어 해결하기가 몹시 어려운데도 현장에서 발견된 사고차량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부스러기를 단서로 이미 깨끗이 수리를 해버린 가해차를 찾아내었고, 차량의 하체에서 피해자가 입었던 옷에서 뽑힌 몇 가닥의 섬유가락을 근거로 범인이 잡혔다. 범인은 20대의 여성이었고 사고당시 그 차에는 몇명의 친구들이 더 타고 있었다.



사고가 나자 운전자가 친구들에게 물었다고 한다. “내가 사람을 밟고 지나간거야? 그런거야? 아니지? 응? 응?” 친구들이 대답했다고 한다. “아닐거야! 그래! 가버리자!”



어제 내 차바퀴에서 미약한 진동이 있어서 내려서 보니 아무 이상이 없어 다시 가는데 또 소리가 나기에 다시 세우고 자세히 살펴보니 뒷바퀴에 볼트가 박혀 있었다. 보통사람이라면 바퀴에 1cm도 안되는 이물질이 끼어도 알아차리는데 그 아가씨는 20~30cm는 되었을 취객을 치고 지나가면서 차의 하체에 손상이 있었음에도 친구들의 부추김에 힘입어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빨리 조치했으면 살 수 있었던 사람이 과다출혈로 죽었다. 응원은 일종의 부추김이다. 예로부터 소가 호랑이한테 지지만 주인이 곁에서 응원을 하면 이긴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수긍할 수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니까.



올림픽이 끝난 후 인터뷰에서 양궁 감독이 “다 대비했는데 호각을 불 줄은 몰랐다. 그것만은 예상하지 못했다. ” 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나는 그가 바보라고 생각했다. 뙤넘들(그것을 응원이라 생각하고 그런 짓을 한자들에게는 뙤넘도 과분하다)의 뙤짓이 그날 갑자기 있었던 돌발상황이더라도 감독은 선수들을 소환하고 시합을 중지시키며 강력하게 항의했어야 한다. 이미 여러날 전 예선부터 뙤넘의 소동이었으므로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는데도 그는 끝내 그것을 방치하는 우를 저질렀다. 본부에 공식항의하고 국내외 언론의 힘을 빌어 형편없는 뙤관중들의 수준을 강하게 비판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여 자체적으로 재발을 방지하도록 했어야 한다. 그런데 바보감독의 변은 “여러 가지를 충분히 대비하여 런던에서는 어떤 방해를 하더라도...” 한 대쥐어 박고 싶었다. 뙤넘들은 숫자의 힘을 빌어 목적을 위해서는 응원이라는 구실을 붙여 어떤 짓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무지막지한 족속이라는 것을 만방에 알렸고, 우리는 그저 끌려 다니며 “처분내리시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 뿐인 사람들이라는 것도 널리 과시했다.



이곳의 어떤 회원이 구속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를 알지도 못하고 만난일도 없으나 그가 몹시 안됐으며 그도 지금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치적 타협으로 곧 풀려나더라도 그는 다시 그런 행동을 않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인신이 구금되면 그 자신이 가장 힘들지만 그 주변의 가족이나 친지 동료들도 낭패이긴 마찬가지다. 충분히 예상되는 결과였음에도 그 행동을 지속한 그가 판단을 잘못한 것이고 그를 부추겨 선을 넘어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응원한 주변사람들도 이차적인 책임이 있다.



나는 조선일보나 한겨레를 설렁탕과 곰탕이라고 본다. 솔직히 나는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명확히 정의내리지 못한다. 그 맛의 차이가 내 인생에서 조금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식당 주인들은 맛의 차이가 뚜렷한 별개의 음식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맛이 그맛이다. 오히려 공짜 자전거 주기는 한겨레가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조선이 따라하니까 맹비난을 했다. 그것은 언론도 곰탕도 아니고 웃기는 짬뽕이다. 미식가이거나 현명한 식당 손님이라면 한군데를 정해서 일방적으로 다니지 말고 몇 군데를 옮겨 다니며 그들이 개성과 맛과 청결과 가격을 경쟁하여 더 좋은 음식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식당으로 만들어 나가도록 유도하는 게 좋다.



한나라나 민주당도 또한 곰탕과 설렁탕의 관계다. 그넘이 그넘인데 유독 하나만 좋아라하니까 문제가 생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했다. 한쪽이 독선의 조짐이 보일 때 가차 없이 갈아치워야 현명한 유권자다. 그런 데 어떤 지역은 항상 90% 이상의 몰표지지를 한다. 그러자 다른 한쪽도 70%의 몰표를 주며 서로 비난한다. 그들은 민주발전의 적이다. 누구 말처럼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민주는 유권자가 주인이다. 그런데 노예처럼 평생 졸졸 따라다니면서 왝왝거리는 게 신의이고 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망친다. 정치군인들이야 나라를 말아 먹으러 나온 강도들이지만 그것들을 몰아내고 민주를 하겠다고 나선 넘들까지 줄줄이 좀도둑질을 해대면 분노하고 사정없이 패대기칠 줄 알아야 하는 게 주인의식인데 끝까지 철벽지지를 하며 무작정 응원을 보내니까 그 사이비 민주인사넘이 그 도둑넘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일단의 사람들이 곰탕은 좋은데 설렁탕은 나쁘다며 설렁탕집 문을 닫으라고 아우성을 치며 손님들이 오가는 것을 통제하고 고기와 야채를 정기적으로 대는 상인들의 출입을 막아 장사를 못하게 하려고 나선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만일 설렁탕집 주인이 병들어 죽은 쇠고기를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었다면 다시는 그 집 설렁탕을 먹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한 응징이 된다. 배탈이 났다면 배상을 받으면 된다.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면 증거와 함께 그 사실을 널리 알려 좀더 빨리 문 닫도록 하는 것도 좋다. 그래도 화가 난다면 설렁탕집 거래처들에게 설렁탕집 주인의 비리를 알리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법적 다툼의 소지가 생긴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 설렁탕집과 거래하지 말 것을 강요하거나, 가게 문 앞에 쓰레기를 쌓거나, 거래하면 보복을 하겠다고 협박하거나, 떼지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공익적 취지를 벗어나서 부당하고 엄연한 위법행동이다.



나는 쇠고기파동이 조선동아중앙 불매운동으로 흐른 경위를 안팎으로 소상히 알지는 못한다. 늙고 병든 소가 마구 들어오도록 허용한 협정은 몹시 잘못된 것이었다. 연이어 방송에서 경쟁적으로 위험을 알리는 특집물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면 의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침묵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내용이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편향적으로 편집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게 밝혀졌다면 촛불을 끄고 다시 냉정하게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옳았다. 보기에 따라 이참에 “도움이 안되는 비우호적인” 설렁탕쪽 언론을 내치려고 하는 시도의 발로였다면 그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다. 세상에는 설렁탕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보다는 곰탕집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견제장치로도 설렁탕집은 필요하다. 역사는 항상 새로이 득세한 곰탕집이 다시 부패하는 것으로 끝을 본다.



이곳에서 아직도 불행한 경우를 당한 그 회원의 행동을 두둔하며 응원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심히 우려가 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운전자가 “내가 잘못한거야? 그런거야? 아니지? 응? 응?” 할 때 동승자들은 객관적인 사실을 말해주었어야 한다. 나는 구속된 회원이 아무리 자신의 취지를 공익적 차원에서 설명해보아야 범법사실을 인정하는 일 밖에 되지 않으리라 판단한다. 아마도 깊이 반성하고 차후 절대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재판부에 보내는 것이 일의 원만한 해결을 위한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그나마 상대가 묵인하거니 수긍을 할 때나 유효할 것이다.



얼마를 보내면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화를 부르는 위험요소를 이미 지니고 있는 무책임한 발상이다. 같이 들어가서 짐을 나누어지거나 적어도 며칠씩 대신 구금을 당해줄 각오가 아니라면 섣부른 응원으로 남을 곤경에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출세를 위해 제 발로 찾아다니며 별 달던 희한한 시대도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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