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라는 기계를 취미로 삼은지 얼마나 되었나 생각해보니
나이에 비하면 의외로 꽤 오래되긴 했군요.
연륜이란 말을 붙여서 표현하자면 마이너스라 해야할테고,
경험도 그만큼 짧습니다.
제 또래의 대부분 분들이 그러하실테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부터 관심을 갖고 만지기 시작해서
중학생 때부터는 만지고 부수고 고치고 만들고 부수는 반복의 시작...
어린 나이에 오디오 책자의 기라성같은 기계들을 보면서 환상을 품었고,
어른이 되면 돈 많이 벌어서 나도 저걸 사겠다고 다짐하곤 했지요.
하지만 '어른'이 된 시점은 생각보단 너무 빨리, 경계도 없이 다가왔고
친구들 자식 보는 나이가 된 지금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CDP와 앰프는 쓰레기장에서 주워와서 말끔히 고치고 닦아서 쓰고 있고,
스피커는 떨이로 매우 저렴하게 가져와서 쓰고 있습니다.
산더미같던 소리에 대한 불만은 고마운 분들의 조언을 얻어서
하나 둘 직접 고치면서 그럭저럭 들을만하게 되었지요.
한창 열정적이던 대학 시절에는 지인을 통해 이것저것 빌려다 들어보기도 하고,
귀동냥도 자주 다니고...
군 전역 후에는 잡지에서 보던 물건들 중 집값이나 차값 정도의 것까지는 무리라도
중고차를 살 생각을 했었기에 그만한 것은 살 여유가 있었기에
구매를 적극 검토하며 또 다시 대학 시절의 것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학창시절부터 품어왔던, 소중히 여기던 환상이
하나 둘, 열여덟 스물씩 깨져가는 기분을 느껴야 했습니다.
왜 그걸 몰랐을까?
그리고, 답답하더군요. 뭔지, 왠지 모를 압박감과 억압된 기분...
왜 뭔가 말하려다가도 끝내는 포기하게 될까?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지?
분명 기계 때문은 아녔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름의 결론을 얻고는
음악 듣는 취미는 그야말로 '개인적인',
그리고 그저 편안히 즐기는 취미로 고이 접어두기로 했습니다.
오디오 기기에 대해서는, 이젠 환상이건 뭐건 그런 것 없이
꽤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름 너무나도 좋아해서 푹 빠져들었었기에 1년 정도의 시간은 걸렸지만
그 시간이 흐른 뒤엔 그냥 생활소품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결국, 그간 빠져지내던 저의 이 취미에 대해선 이런 말을 남길 수 있게 됐네요.
"Hasta la vista, metal."
어떤 물건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음악 듣는데에 쓰는 이 물건도 이 영역 안에서는
본래의 목적과 꽤 다르게 쓰이기도 하는 것 같은데
제가 받아들이기엔 그 영향력은 너무 버겁고 거북하네요.
두번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못할 것 같고, 그러지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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