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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투석전에 참여한 이야기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8-08-18 23:19:58
추천수 2
조회수   824

제목

펌) 투석전에 참여한 이야기

글쓴이

김기영 [가입일자 : 2004-07-20]
내용
Related Link: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









금일 새벽 명동성당 앞에서 본격적으로 투석전을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경찰이 도발에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다시 예전과 같은 정체된 시위대가 될까봐 해결책으로 즉석에서 가투팀을 꾸렸다. 하지만 시민들의 비협조로 가투팀에 불과 10명만이 모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투를 의도함으로써 시위대를 빼간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명동성당 사수냐 가투냐 하는 의견대립은 사실 필요없다.

명동성당 앞 총 500명 시위대 중 100명만 가투를 떠나도 어느정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가투의 목적은 편히 앉아 쉬고 있는 경찰을 깨우고 움직이게 할 셈이었다.

그 방법은 가투하는 척 하면서 경찰이 진압을 준비하면 신속히 귀환하자는 것이었다.

가투와 사수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쓸 수 있었는데 이 점에서 크게 아쉽다.







돌 던지는 것은 괜찮은데 보도블럭까지 깬것은 좀 아니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 분들은 현장에서 어린 소녀들이 작고 흰 맨손으로 보도블럭을 깰 때 옆에 지나가며 '국가재산 훼손말라'던 반촛불 아저씨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어찌하여 그토록 판단이 불분명한지 모르겠다.

폐쇄된 공간인 명동성당 안에 들어와서 대체 어떤 시위를 하길 기대했는가. 명동성당이 시위에는 적절치 못한 장소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시간대비 효율적인 시위를 하고자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썼다. 단 한명도 연행되지 않으면서 경찰들을 최대한 피곤하게 했고 결국 게릴라는 대성공이었다.







'도덕적 우위'가 가장 큰 문제라고 한다.

조중동이 악랄한 기사를 쓰는것도 두렵고 그나마 남아있던 촛불도 떠나갈까 두렵다. 항상 우리는 과격불법시위대로 낙인 찍혀왔다.

투석전을 펼친 곳은 새벽시간 명동성당 앞길이었고 행인도 거의 없었다.

도움의 손길도 보는 눈도 적었기 때문에 제한된 인원으로 참으로 처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년의 만취한 뚱보는 밤새 시위대를 괴롭혔는데 돌을 잡은 이들은 그분도 시민이라고 절대 돌에 맞지 않게끔 조심하자고 다짐했다.

경찰이 무조건 미워서 스트레스 풀고자 돌을 던진게 아니란 말이다. 모두 머리는 차가웠고 가슴은 뜨거웠다. 스스로 준비된 열사가 되길 자처한 셈이다.







왜 이들이 욕을 먹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투석전 때문에 우리 촛불이 치명상을 입게 되는지 '내기'라도 해보고 싶다.

도덕적 우위? 애시당초 경찰과 조중동에 의해서 폭도로 몰렸는데 그토록 고귀한 도덕성 끝까지 잘 지켜보기 바란다.

님들은 참으로 고귀해서 경찰들도 연행 안하겠다.

또 누군가는 '대중'을 가지지 못했던 한총련 연대사태를 걸고 넘어지겠지. 태클 걸고 싶으면 댓글 길게 달아달라. 오류나서 썼던 글 다시 쓰는 중이라 무지 화가 난 상태인데 오늘 날 정하고 토론 한 번 해보자.







투석전에 임했던 이들은 대부분 젊은층이었다.

카톨릭회관 주차장 건물벽 위 투석 인원도 분전했으나 경찰이 깊숙히 들어오지 못한 관계로 기대이상의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우리가 무조건 도발한 것도 아니다.

경찰이 우리를 향해 조명등을 쏘고, 곁에서 조중동기자가 숨어서 촬영하는 자체가 우리 시위대를 도발하는 것이다.

100일 넘는 기간동안 무수히 많은 시민들을 방패로 찍고 연행했다.

긴 시간동안 경찰은 숱하게 우리를 도발해왔다.

우리는 분노가 치미는데 경찰이 응수를 안하니 동지들을 위한 복수심에라도 짱돌로 도발을 강행한 것이다.







'전경과 백골단 부상자 10명 이상' 이런 기사 나면 크게 한번 웃어 줘야겠다.

돌을 어찌 그리 잘 막고 잘 피하던지 투석전을 해도 경찰이 시시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막판에 백골단 한 놈은 본대 앞 5M를 혼자 앞서나와 시위대에 포위될 뻔 했는데, 최후의 보루 명동성당앞에서 그짓꺼리하면 이젠 반누드사진 찍힐 각오하고 덤볐으면 한다.

그래도 오늘 대치한 경찰들 수고 많았다.

너네도 일종의 피해자다. 대책위도 생활형촛불로 전환하고 8.15집회도 진압을 잘해서 시위는 거의 끝이라고 상부에서 판단했을텐데 하필 어제 너희가 토요일 명동성당앞 진압부대로 선정이 됐느냔 말이다.

'조용한 시위대'를 예상하고 각 부대마다 큰 휴식을 취하고, 명동성당앞 살수차 마저도 복귀했던데 이거 큰 실수 한거다.

뿐만 아니라 칼라티비도 조기퇴근했고 각 현장생중계팀들도 경찰들과 같은 생각으로 출근할 생각도 안했을 것이다.



'누리꾼TV'라는 생중계팀만이 유일하게 시위대를 지켰다.







경찰에게 던진 돌이 도로 날라오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겠다.

설마 그런 각오도 안하고 던졌겠는가.

아니 도리어 경찰이 던지는 돌에 맞으면 행동느린 바보가 됐겠지...... 예상외로 투석의 저항이 거세지자 언제부턴가 경찰은 오르막길 입구에서 조금도 올라올 수 없었다.

골목마다 차량과 바리게이트로 전경 진입로를 차단했다.

어떤곳은 쓰레기봉투로 장애물을 설치했다고 무슨 소용있냐고 묻는데 이것은 시위대의 절박함과 처절함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더 크다.







앞으로 명동성당 앞 농성은 이런식으로 진행될 것이라 짐작한다.

8,90년대와 같이 명동성당 신부들이 시위대를 반대하여 이마저도 진압당한다면 새벽시위는 줄어드는 대신 대낮 도심지 게릴라 시위가 활성화 될 것이다.

파이가 나오기 전에 짱돌이 먼저 나오는게 순서다.

우린 너무 과격하게 시기를 앞서 나간것이 아니다.

차례차례 단계를 밞아가는 중이다.

대학생들을 기대하며 일부 대학에서 운동권 총학생회장이 선출될 내년3월까지 기다릴 생각하면 숨이 꽉 막혀온다.







경험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무릇 운동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다. 8.15집회 당시 흑사단 50명 중 30명이 연행된 후, 남은 흑사단 20명은 '함께 연행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며 한참동안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런 얘기 들으면 아직도 남의 일처럼 들리는지? 아직도 영화 속 한 장면 같은지? 우리 모두 영화 속 주인공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

동지애'......참으로 그리울 것이다. 마틴 니뮐러가 쓴 <전쟁책임 고백서>중 한 구절을 읽으면서 가슴 속 깊이 느껴봤으면 한다.







"나찌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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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후배들아



이렇게 너희들 세대까지 고민하게 해서

울때는 같은 문제로 고민은 했지만 그런 결론까지 시간이 별로 안 걸렸단다



아니 고민이 오히려 사치였지



앞으로 보자구나



이제 앞에서 나서지 못하는 기성세대로 부끄럽고 비겁하지만



너희들이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전술적으로 좀 문제가 있지만



너의 정열에 흠이 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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