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만난사람] “부동산 거품 붕괴, 이제 시간문제일 뿐”
‘경제 위기’ 경고하는 김광수 경제연구소장
IMF이후 늘어난 가계부채 ‘시한폭탄’
친재벌 정책으로 기술벤처 설 곳 잃어
노동자 임금수준 올라가는 게 ‘성장’
“사회 구성원들이 잘먹고 잘살게 하는 게 경제 운용의 기본목표인데, 우리나라에선 중산층이 계속 붕괴하고 있습니다. 잘먹고 잘사는 것은 노동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니까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일자리는 없고, 미래마저 불확실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부동산과 주식 투기판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건전성이 사라지고 도박경제, 사기경제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김광수경제연구소 김광수 소장((49·[사진])은 우리 경제가 ‘위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의 진단은 ‘저성장’이나 ‘고물가’ 같은 경제지표를 들이대는 이들과 뿌리부터 달랐다. 그가 강조하는 위기는 세상을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경세제민’과 정반대로 가는 한국경제의 흐름이다. 그는 우리 경제를 재벌에 짓눌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불임경제, 생산보다 투기에 열을 올리는 투기경제, 사람을 값싼 생산도구로만 보는 머슴경제라고 지적했다. 발상의 대전환이 없이는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21세기 들어 크게 달라진 세계 경제환경 변화에 맞춰 우리 경제가 대응할 기반을 닦아야 할 시기에 정부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것을 그는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노무현 정부는 5년 동안 위기를 조금씩 키워 왔고, 새 정부는 한단계 더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기술벤처들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갑니다. 일본에도 중견 중소규모의 기술벤처 기업층이 매우 두터워 대기업과의 유기적 공생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그게 없습니다. 외환위기 때 20~60위권의 중간 재벌기업들이 거의 사라졌는데, 이 또한 기술벤처적 뿌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역동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해 나갈 벤처기업, 중간 허리를 맡을 기업이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로 그가 ‘산업의 최정점에 있는 재벌기업들의 잘못된 지배구조’를 지목하는 것은 의외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대기업이 잘돼야 나라 경제가 잘된다’고 믿는 시대 아니던가?
“한국의 재벌들은 일제 시대에 약탈적 상업자본 형태로 출발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시절에는 정·경·관 유착에 기대 성장해 왔지요. 90년대 들어 정부의 관심이 기술개발에 쏠렸지만, 국책사업 지원의 대부분이 상위 재벌그룹에 집중됐습니다. 기술벤처 기반을 구축하고 이로부터 글로벌 기업이 나올 수 있는 산업구조를 형성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상위 재벌이 기술개발을 독점하다시피 한 겁니다. 설령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술벤처 기업들이 나와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술을 독점하려는 재벌들의 방해를 넘지 못하고 잡아먹힙니다.”
그는 우리나라엔 “기술벤처 기업이 재벌 하청기업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 독자적으로 존립하기 어렵고, 그래서 역동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핵심 문제는 눈감아 버리고, 감세와 규제완화로 성장 동력을 확충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을 그는 “소수 대기업을 위한 엉터리 정책”이라고 잘라말했다. 처음부터 대놓고 재벌에 몰아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금산분리 경제원칙을 무시하고 금융산업까지도 다 재벌에게 주자고 하지 않습니까?”
정부가 이른바 ‘친기업’(비즈니스 프렌들리)을 주창하는 데 대해서도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제든 기업이든, 성장의 목표는 국민이 다같이 잘먹고 잘살자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 수준이 올라가는 게 발전입니다. 사람을 머슴으로만 아는 경제는 일시적인 성장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절대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없습니다. 경제관료들은, 제조업은 중국에 밀려 더는 안 되니 서비스업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는데, 서비스업 경쟁력을 강화하여 일자리를 만들려면 서비스업의 임금이 올라가야 합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에서 이발비가 괜히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싼 게 아니죠. 서비스업을 육성하려면 서비스업의 임금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정책부터 개발해야 합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국제유가 급등은 최근 우리 경제가 지고 있는 큰 짐이다. 하지만 그는 고유가를 내세워 경제가 어려운 핑곗거리를 찾기에 앞서 세계경제의 커다란 변화를 먼저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금리와 유동성 과잉 탓에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커진 것과, 브릭스 국가들이 새로운 세계경제의 성장축으로 떠오른 점을 주목해야 할 외부 환경으로 그는 꼽았다. 그런 상황에서, 외환위기 이후 폭증한 가계부채 문제가 우리 안의 시한폭탄이라고 그는 말했다.
“부동산 투기를 잡지 못한 것은 참여정부의 최대 실책이죠. 부동산으로 흘러든 그 많은 돈이 생산 쪽으로 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성장 잠재력이 커졌겠습니까? 지금 일자리가 넘쳐서 고민하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
그 때 어떻게 해야 했다는 것인가? 그는 “집이 얼마에 거래되든, 건설업자들이 어떻게 주택을 분양하든 이는 정부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시장가격을 통제하려하지 말고, 국민의 ‘주거권’ 보장을 위해 뭘 해야 하고,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해법이 나온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정부가 법으로 수용 가능한 토지를 이용해서 임대료가 싼 질좋은 공공 임대주택을 대규모로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게 해법입니다. 그러면 시장 임대료가 낮아지고, 집값도 낮아집니다. 주거비용이 낮아지면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우리 경제의 경쟁력도 커집니다. 그런데, 왜 못했겠습니까? 떡고물을 떨쳐 버리지 못한 때문이었겠지요.”
그는 2005년부터 부동산 거품 붕괴 가능성을 경고해 왔다. 그는 “물가가 오르고 금리가 계속 상승하고 있어, 거품의 본격 붕괴는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2001년에서 2003년까지 부동산 붐은 시장금리 급락에 대한 가계의 부적응에 기인한 면이 큽니다. 은행도 소매 대출을 크게 늘렸지요.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재테크 붐도 일었습니다. 이 때의 부동산 투기열은 수도권에 집중됐고, 재건축 아파트, 새도시 등과 겹쳐 있습니다. 하지만 2006~2007년에 일어난 2차 부동산 붐은 수도권에서는 뉴타운과 재개발에 기댄 ‘이명박 거품’이었습니다. 지방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행정중심 복합도시·혁신도시 개발에 뿌리를 둔 거품이 일었습니다. 붐은 이미 끝났지요. 지금은 거래가 급감해 있어요. 거품 붕괴 초기단계에서는 거래가 줄고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 기간이 1년 반에서 2년 가량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폭락하지요.”
적정 집값 수준을 얼마로 보느냐고 물었더니 “전셋값과 집값이 같아야 정상”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전세가격이야말로 실수요와 공급을 반영한 값인데, 그보다 집값이 비싸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집값 하락이 이어지면서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휩싸였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집값의 절반 이하로 돈을 빌려줘서 집값 거품이 터져도 금융시장에 큰 혼란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고 하자, 그가 또 피식 웃는다.
“미국에서도 다를 그렇게들 얘기했습니다. 금융회사들의 자기기만이었지요. 우리 은행들은 지금 예금총액의 130%를 대출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은행은 160%를 빌려주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은행은 대출총액이 예금총액의 90% 가량입니다. 은행들이 양도성예금증서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외화를 단기 차입해 엄청나게 대출을 늘렸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는 말은 자기기만이죠. 위기의식이 없는 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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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것도 공감하지만 특히 '기술벤처 기업이 재벌 하청기업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 독자적으로 존립하기 어렵고, 그래서 역동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가 없는 것' 이말에 적극 공감합니다.
저희 같은 작은 기술회사들은 수억~수십억 사업만 있어도 석사이상 인력을 몇명~십수명씩 고용해서 운영할 수 있지만 대기업은 수백억사업에도 한두명 늘릴까 말까입니다. 대기업-중견기업으로 이어지는 하도-재하도를 받으면 저희 입장에선 사람을 뽑을래야 뽑을 수 없고 수익을 남기려면 가능하면 기능직 일은 또 재하도를 주거나 아니면 고급인력들 달달 볶아서 직접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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