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이동관 <동아일보> 기자와 2008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어떻게 변했을까?
일본이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명기를 강행, 이명박 대통령의 대일 '실용외교'가 위기를 맞은 가운데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동아일보> 기자 시절 작성한 칼럼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05년 2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을 제정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한 달 뒤인 3월 21일 당시 이동관 <동아일보> 정치부장은 '한일관계 유비무환'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일본측이 '오판'하게 만드는 빌미를 현 정부가 제공?"
이동관 부장은 칼럼에서 "이처럼 상대의 선의에 뒤통수를 치는 식의 행태로 대응하는 일본에 대해 온 국민이 분하고 괘씸한 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다만 문제는 일본측이 '오판'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빌미를 현 정부 들어 제공한 측면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특히 "근본적으로 일본 쪽의 태도에는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표변해 '배상책임'까지 들고 나서는 한국 측의 일관성없는 자세에 대한 불신감이 깔려있다"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오락가락' 대일외교 정책을 매섭게 비판했다.
문제는 이 부장이 노 대통령의 대일외교 정책을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일본의 언론 보도를 인용했다는 것. 이 부장은 "일본 언론들이 최근 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독도-과거사 문제에 대한 강경 대응을 '국내정치용'으로 폄훼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썼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동아일보> 정치부장에서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한 그는 일본 언론의 이중적 태도를 비판하며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로부터 일본의 독도 영유권 명기 사실을 통보받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고 말했다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 보도 때문이다. 이 대변인은 15일 브리핑에서 "(그런) 워딩은 있지도 않은 사실무근"이라며 "뭘 기다려 달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 대변인은 특히 "결론적으로 한국 내부를 분열시키고 독도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일본측 언론플레이의 결과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16일에는 <요미우리 신문>에 항의문까지 보냈고,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변인은 또 <요미우리 신문>을 인용해 보도한 국내 언론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그 시각 초지일관 유지했으면 국민 지지 받았을 터인데"
이동관 대변인의 기자시절 칼럼은 중앙일보 편집기자인 노태운씨의 블로그를 통해 알려졌다.
노태운 기자는 블로그에서 "2005년 일본의 독도 도발에 대해 이동관 부장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일본 언론의 보도를 인용했다"며 "그 때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믿을만했던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노씨는 또 "2005년과 2008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태도는 변한 게 없다"며 "언론인과 대변인, 이를 보면 사람의 시각은 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음 블로거뉴스) 상위에 랭크된 노태운 기자의 블로그에는 수백 건의 댓글이 붙는 등 누리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ID '이동관'은 "그 당시 일본의 (이중적) 외교행동과 우리의 대응자세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대변인)의 의견이 현재 2008년 현 정부에서 왜 드러나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댓글을 달았다.
ID '초지일관하지'는 "(이 대변인이) 그 때의 그 시각을 초지일관 유지하여 이번 일본의 독도 침탈 행위도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게 빌미를 준 탓'이라고 하면,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터인데"라며 안타까워했다.
ID '창피란 걸 알까'는 "저 사람은 창피하단 말이 언제 쓰이는 건지 알까? 그게 지금이다"며 "많이 창피해 하고 부끄러워 하고 반성하길..."이라고 꼬집었다.
다음은 2005년 당시 이동관 <동아일보> 정치부장이 쓴 칼럼 전문이다.
[광화문에서] 한일관계 '유비무환'
지난해 7월 제주도 한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앞으로 과거사 문제를 공식 제기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을 때 양국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대체로 고개를 갸웃했다. 우선은 과거사 문제가 일본에 대한 현실적 지렛대의 하나라는 점 때문이었다. 여기에다 해마다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나는 다년초 식물처럼 과거사 문제가 뿌리 깊고 복잡한 사안이라는 점 때문에 일본 쪽에서조차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왔던 게 사실이다.
외교행태만 해도 일본은 '상대가 한 걸음 물러서면 오히려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 전형적 특성이다. 단적으로 양국간 최대 현안의 하나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한국 측이 공산품을 90% 이상 개방(관세품목 기준)하겠다는 과감한 제안을 내놓자 일본 측은 자국 내 '사정'을 앞세워 농산품 50% 개방을 치고 나왔고, 현재 협상은 제자리걸음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상대의 선의에 뒤통수를 치는 식의 행태로 대응하는 일본에 대해 온 국민이 분하고 괘씸한 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문제는 일본 측이 '오판'하고 '불신'하게 만드는 빌미를 현 정부 들어 제공한 측면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선자 시절 노 대통령 측은 "미국과는 독자적 입장에서 차별화를 시도하겠지만 일본과는 잘 지내고 싶다"는 메시지를 일본에 전달한 일이 있다. 지난해 가을 열린 한 한일 지식인 모임에서는 정부 쪽 외교안보라인의 고위 인사가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한미동맹이 약화되면 한국이 중국과 협력하는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 일본 전문가는 "이런 일들이 '동맹'보다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듯한 정부의 태도와 겹쳐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한국이 이탈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일본 측에 안겨 주었고 최근 '한국 이지메'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근본적으로 일본 쪽의 태도에는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표변해 '배상책임'까지 들고 나서는 한국 측의 일관성 없는 자세에 대한 불신감이 깔려 있다. 일본 언론들이 최근 노 대통령과 한국정부의 독도-과거사 문제에 대한 강경 대응을 '국내정치용'으로 폄훼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처음 1년간 '불안한 이미지'에서 '생각보다 괜찮은 인물'을 거쳐 이제 '믿기 어려운 인물'로 변하고 있다고 한 일본 정계 소식통은 귀띔했다.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한국 쪽의 준비 부족도 일본 측의 불신감을 사는 치명적 요인이다. 한 전직 외교관은 "각종 한일협상이 이어질 때마다 한국정부 대표는 간단한 자료만 들고 들어가 주장을 펴다가 자료를 산더미같이 준비해 와 일일이 논박하는 일본 쪽에 밀리는 것이 일상적 풍경"이라고 말했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은 '길을 빌려 달라'는 일본군의 요구에 '전사이가도난(戰死易假道難·싸워 죽는 것 은 쉬운 일이지만 길을 빌려 줄 수는 없다)'이라고 답한 뒤 장렬하게 전사했다. 하지만 이제 이 표현은 고쳐져야 할 듯하다.
'싸워 죽는 일은 쉬운 일이다. 오히려 미리 헤아려 대비하는 일이 더욱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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