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스페인 내전 중 프랑코의 대학살을 비난하고 이를 비판하는 연주회를
벌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무기는 첼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음악인 이전에 인간이기때문에 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프랑코측은 그를 잡아 죽이겠다고 공공연히 위협했습니다.
이름이 같은 피카소는 프랑코 정권에 반대했다고 독일의 폭격을 받은 참상을
게르니카라는 대작으로 표현했고,
카잘스는 유럽을 돌면서 히틀러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 정권의 부당성을 역설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쓴 헤밍웨이, 공화파 의용군에 참가한 경험으로 희망을
쓴 앙드레 말로, 조지 오웰의 1984 모두 스페인 내전의 참전경험 또는 그 경험으로
탄생한 예술작품들 입니다.
영국이 프랑코 정권과 우호적 수교를 체결하자 카잘스는 영국을 위해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영국정부가 그를 외교의 복잡미묘함으로 설득하자 그가 그렇게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겁니다.
당신은 정치와 외교를 이야기 하고 있고
나는 원칙을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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