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 특집 정도로 해야겠네요 ^^;;
갈 잎이 포근한 바람결에 넘실거리고, 냇물은 물결 따라 굽이 치며 흘러내렸다.
은빛 비늘처럼 번쩍거리던 논도 저녁놀에 잠겨, 일을 끝낸 농부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는 한가로운 저녁이었다.
나지막한 동산 아래 자리한 마을, 관초리에는 벌써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황혼에 잠긴 저녁에 덩치 큰 젊은이가 어깨에 활과 화살 통을 메고 먼 길을
걸어온 듯 지친 걸음으로 어슬렁어슬렁 마을 쪽으로 걸어왔다.
“휴우우......”
길가 수양버들 나무 밑에 털썩 주저앉은 젊은이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고개를
푹 숙인 근는 무엇인지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논과 밭에서 일을 마친 농부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젊은이가 앉아 쉬고 있는
수양버들 나무 앞을 지나갔다. 그중 한 노인이 말을 건냈다.
“젊은 양반! 어디가 아픈 모양인데, 우리 집에 가서 쉬었다 가지?”
젊은이는 노인의 친절하고 고마운 말에 감격했는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영감님 고맙습니다. 저는 무산에서 조금 떨어진 산골에 사는 사람입니다.
저는 사냥을 해 먹고사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노루인 줄 알고 활을 쏘아 맞히고 가보았는데, 두 번을 놀랐습니다.
한 번은 제가 쏘아 맞힌게 노루가 아닌 약초를 캐러 온 사람이라서 놀랐고, 또
한 번은 그 사람이 바로 제 친구여서 놀랐답니다. 그래서 죽은 친구를 업고 그의
부모님께 가서 사실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친은 원래 훌륭한 분이라 뜻밖
에도 저에게 한마디 나무람 없이 도리어 ‘사람 명이란 본래 하늘이 정해주시는
게다‘
’그러니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게 아니겠느냐. 네가 내 아들을 죽
였지만, 그것은 네가 죽인 게 아니라, 내 아들이 죽을 때가 되어 죽은 거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다. 네가 알고 일부러 죽인 게 아닌데, 내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이왕에 저지를 일이니 조금이라도 딴 생각하지 말고 부디 좋은 일을 하거라.
그게 하늘에게 죄 사함을 받는 오직 한 가지 길이니라. 부디 명심하거라‘
하고 친절하게 말씀해주셔서 두말 못하고 길을 떠나 지금껏 다니다가 여기까지
온 겁니다. “오늘이 바로 만 삼 년째 되는 첫날입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좋은
일을 해보지 못했으니, 무슨 낯으로 하늘을 우러러보고 다닌단 말입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젊은이는 자기의 잘못을 뉘우쳤다.
이 마을 뒷산에는 작은 절이 있다. 그런데 이 절에서는 무슨 까닭인지 절 안으
로 사람이 들어가기만 하면 죽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까닭을 알아보려고 절
안으로 들어갔던 사람까지도 죽고 말았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벌써 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사람의 발길이 끊긴 이 절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게다가 마을
사람마저도 이 절 근처에 가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노인은 이 같은 사정을 젊은이에게 이야기했다.
젊은이는 원래 무예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말이 끝나자 젊은이는 활을
어루만지며 절 있는 곳으로 올라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런 낌새를 알아차린 노인이
만류했다.
“젊은 양반, 내가 보기에 자네는 장골일세, 하지만 벌써 자네 못지않은 사람
여럿이 절에 갔으나 돌아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네. 그러니 자네, 그 절에
갈 생각은 아예 말게. “
그러나 젊은이는 노인을 말을 듣지 않고 폐사로 갔다.
젊은이가 절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좌우를 둘러보니 뜰에는 잡풀만이 무성하고
마루와 방 안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다. 새와 짐승의 발자국만 어지럽게 나
있을 뿐, 사람의 자취는 보이지 않았다. 젊은이는 마루에 올라, 방 안에 들어섰다,
순간 싸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날이 어두워지는군. 잠자리를 찾아야겠는데......”
젊은이는 중얼거리면서 잠자리를 찾았으나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벽장을
발견하고 얼른 그리로 올라가서 큰 몽둥이를 들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만약을
대비해서 활과 화살을 얼른 잡기 쉽도록 앞에 놓고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정신
을 놓지는 않았다.
밤이 깊어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 그러자 긴장이 조금 풀린듯
한 생각이 들어 젊은이는 정신을 다시 가다듬었다.
바로 그때였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면서 무언가가 쿵 하고 벽장문 앞에 서는 것을 느꼈다.
젊은이는 재빨리 활에 화살을 먹여 겨누고 있다가,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번개
같은 솜씨로 냅다 쏘았다.
“찍!”
날카로운 소리가 밤의 적막을 깨뜨렸다.
젊은이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러나 다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너무 조용했다
그는 갑자기 용기가 치솟아 벽장 밖으로 뛰어 내려가 화살에 맞은 게 무엇인지 알아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멈칫하고 생각했다.
“내가 쏜 화살에 맞았으면 제아무리 장사라도 살아 있을리 만무다. 하지만 맞지
앉았다면 적도 무슨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게 분명해!“
다시 싸움을 걸어오기 전에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무사도의 원칙이다. 그래서 젊은이
는 다시 활에 화살을 먹여 겨누어 들고 바깥 동정을 살피면서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젊은이가 초조하게 기다리는 동안 동이 트고 날이 밝아왔다. 그는 조심스레 벽장에
서 내려와 사방을 살폈다. 벽장 문 앞부터 선명한 핏자국이 방 안을 거쳐 마당 구석
창고 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는 핏자국을 따라 창고로 가서 살폈다. 창고 천장을
쳐다보니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고, 바로 그 아래에 사람만큼이나 큰 쥐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그제야 깜짝 놀랐다.
‘저놈의 쥐가 얼마나 영악한 놈이기에, 이처럼 센 화살을 맞고도 제 집 구멍을
찾아 들어가려고 여기까지 왔을까........‘
옛날 속담에 ‘백 년을 묵으면 쥐도 무술을 한다’는 말도 있는데, 죽어 널브러진 쥐
는 몇 백 년이나 묵었기에 희끄무레한 털이 마치 돗바늘 같을까?‘
다시 놀랄 만큼 거대한 쥐였다. 쥐를 잡은 젊은이는 ‘저놈이 여기 온 사람들을
죽인 바로 그 쥐구나!‘ 하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밤새도록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자, 졸음이 몰려왔다. 젊은이는 다시 벽장으로
들어가 한잠 잘 생각으로 전과 같은 자세를 취했다.
노인에게 젊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관초리 마을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마을 탑거리에 모여들었다.
“그 젊은이가 제아무리 장골이라고 해도 설마 아직 살아 있으려구?”
“송장 하나 또 치를게 된 거지 뭐.”
“그만들 하고, 어서 올라가 치웁시다.”
“더 있다가 한낮에 가서 치워요.”
“왜?”
“왜는 무슨 왜요, 무서워서 그러지요.”
“참, 사람도. 그럼 점심 먹고 올라가도록 합시다.”
한낮인데도 마을 사람들은 손에 손을 잡고 절로 올라갔다. 절 대문 안으로 들어
갔는데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핏자국을 보았다.
“저 피 좀 봐!”
“그렇다면 그 젊은이가 정말 죽은 거네!”
“내 뭐랬어, 쯧쯧쯧.......”
마을 사람들은 자기네 생각이 옳았다면서 젊은이의 시체를 찾았다. 그러나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길 봐요. 피 묻은 발자국이 있어요.”
“이건 사람 발자국인데”
마을 사람들이 마루로 이어진 피 묻은 발자국을 따라갔다가 벽장 앞에서 멈춰섰다
. 노인이 벽장문을 열었다.
“아 아니, 이 사람이! 여기서 죽었군 그래, 쯧쯧....”
“젊은 사람이 참 안됐군!”
벽장 안에서 젊은이는 꼼짝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오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젊은이가 죽었다고 생각
했다. 바로 그때 창고로 갔던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다.
“와, 와서들 이것 좀 봐요. 사람만 한 쥐가 죽어 있어요!”
그 바람에 잠자던 젊은이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아악!”
“으윽”
죽은 줄 알았던 젊은이가 눈을 비비고 일어나자, 벽장 앞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왜들 놀라세요? 어젯밤 한숨도 못 자서, 잠 좀 잔 것뿐인데.......”
젊은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젯밤에 있었던 이야기들 모두 했다. 그러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마을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기뻐했다.
마을 촌장이 나서서 말했다.
“죽은 쥐를 그대로 두면 다른 쥐들이 몰려와 행패를 부릴지 도 몰라, 그러니 이
쥐의 가죽을 벗겨 땅속 깊이 묻자구. "
마을 사람들은 촌장이 시킨 대로 했다. 그리고 그 쥐 가죽은 쥐를 잡은 젊은이를
기념하기 위해 마을에서 가장 잘 보이는 건너편 병풍바위에 걸어두었다.
얼마 후, 쥐 가죽은 북처럼 되어 두드리면 제법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만 나면 쥐들이 다 죽어 넘어졌다. 그래서 그 마을에는
쥐라고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그 바위를 아예 ‘북바위’ 라고
고쳐 불렀다.
어쩌다가 가끔 쥐가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은 얼른 북바위를 두드렸다. 그러면
영락없이 그 쥐는 죽어 넘어졌다.
지금도 북바위를 두드리면 여태껏 북소리가 난다고 한다.
제목은 쥐 잡는 북바위 이구요
김원석님이 쓰신 한 권으로 읽는 힌국의 기담 괴담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이야기 한편 올려 봤습니다.
실제 어느 지역 민간전승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잘 아시는 분께서는 다른 이야기나 설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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