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매년 일본에는 한 두 번씩 꼭 출장을 다닙니다. 아다시피, 일본은 명실공히 선진국이고, 그 말은,
안정적인 나라 혹은 역으로 변화가 정체된 나라라는 말로도 연결됩니다.
지난 겨울 다녀온 일본출장길에 뭔가가 한 가지 달라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출장 성격상 차량이동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일본의 거의 대다수 고속화도로는 유료도로이고 통행료는 가히 살인적인 수준입니다.
또한, 세계 초고수준의 고령화사회답게 톨게이트 근무자들은 거의 100% 노인입니다.
차가 톨게이트에 들어서면, 단정하게 유니폼을 차려입은 노인네들이 운전자에게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영수증과 잔돈을 건네며 감사하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듯 오래도록 봐왔던
풍경이 지난 해 겨울, 일본을 찾았을 때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전부 무인계산시스템으로
바뀌었더군요. 차량이 톨게이트를 안전속도로 통과하기만 하면 요금이 자동적으로 표시되고 차단봉이
올라갑니다. 이제 더 이상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 근무자들의 모습도, 그들의 씩씩한 인삿말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피부로 느끼는 대표적인 감상이 '한국의, 한국 사람들의 역동성이 놀랍고,
한편으로 부럽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여튼, 저는 최소한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 혹은 다이나미즘'이 구체적으로 뭘 가리키는 것인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말입니다.
'아마도 뭔가 정체된 듯한 선진국 국민으로서 자기네들보다는 뭔가 펄펄 끓는듯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이겠지... 사회 전반이 안정된 기조 속에서 알아서 굴러감으로써 영양가는 풍부하지만,
뭔가 맛이 밋밋한 음식을 먹는듯한 기분 아닐까... 그러던 차에 한국에 와서 화끈한 고추장 맛을
보는 기분이 되니 저런 말을 할거야,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그런 생각은 갈수록 회의가 듭니다. 고추장이 화끈하기는 하지만 매일 고추장만 먹고서는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자극도 어쩌다 한 번 아닌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실상 한국에서 오래
생활하는 일본 사람들, 말은 아끼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 대단히 부정적이지요. 결론적으로 자극이
지나치다는 겁니다. 말을 바꾸자면, 한국 사람들은 지나친 자극에 너무도 둔감해 있다는 것입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바뀐 일본사회의 한 단면을 보고나서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대한민국이 IT강국이니 어쩌니 합니다만, 과연 그런가 하고 말이죠. IT산업 전반의 역량이 어떤지는
모릅니다만, 고작 톨게이트 통행료 수납문제 하나 자동화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정녕 문제가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벌써 그 문제는 오래 전부터 거론이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제 생각에 아마도 그 정도 실력이 없어서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뭔가
제도적인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는 말이겠지요. 그것도 아니라면, 일본과 같은 '전체주의적' 국가와는
달리 너무도 '민주주의적'인 입장에서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해 자동화를
포기했다... 는 것인지 알쏭달쏭합니다.
실력은 있으되, 그 실력을 마음껏 펼칠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혹은 그런 시스템화를 방해하는
무엇인가가 나름 '시스템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지고의 가치'를 주장하며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면..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지요. 나아가 자신의 주장을 과시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세몰이를 하고, 이를
위해 특정한 정보만을 확대-과장-왜곡하고 이성이 아닌 감정에 기대어 사회적 갈등을 부채질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전투적 세력들의 무논리적 선동 앞에 가로막힌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떤 모습일지는 뻔할
뻔자입니다.
P.S. 하다하다 이젠 고작 '라면'에까지 보수와 진보색깔을 뒤집어 씌우는데야 두 손 다 들어야할
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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