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몇 몇 (아니면 예상외로 많은 분 들) 분들만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오디오쟁이들이 열악한 아파트 환경과
공공의 적(?)인 마누하님들의 숱한 태클과 방해공작에 고생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약간의 비굴과
가끔씩의 꽃 한 다발 그리고 오로지 마누하님의 취향에만 맞는 CD구입하기 등을 주기적으로
반복하여 어려운 오디오 생활을 연명 하시는 것도 사실일 듯 합니다. 저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넉넉치 못한 예산으로 오디오 한다고 애쓰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또한 오디오 리스닝 룸 환경의 중요성이야 생각하면 할수록 한숨만 나오는, 아주 열악한 거실에서 AV를
병행하며 울며 겨자먹기 식의 오디오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림 1 참조, 참 정신없죠? 어지럽고)
그렇다고 방 하나 내달라 하면 앰프 하나 달랑 들고 눈오는 거리에 서있을 내모습이 생각나 감히
그런말은 꺼내지도 못하죠. ^^
그런 와중에도 아쉬운대로 눈도장을 찍어논 자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저 자리입니다.(그림 2 참조 )
한가로이 햇볓을 쬐고 있는 화분(놈)들이 있는 자리입니다. 문제는 그자리는 우리 박여사에게도 엄청
중요한 자리라는게 문제입니다. 지금 사진에서는 화분들이 베란다로 나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식물의
수가 많아 보이지 않지만 음악듣기 좋은 계절인 겨울엔 화분들이 대거 저 자리로 이동해 온다는 거죠.
그래서 저 자리는 당연히 저 풀(?)들의 자리라고 우리집 박여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한치의 의심도 없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감히 내가 저 풀들의 자리를 넘보리라는 건 박여사 인생의 각본에는 없는거죠.
자리 뺏기 1단계
하루 날 잡아서 거실에 있는 오디오 장을 바라보며 땅이 꺼지게 긴 한숨을 쉬며 슬쩍 한마디 내뱉습니다.
" 정말 못 봐주겠네...저거 다 팔아야 겠어...휴우~~~너무 어지러워...이거원 정신이 없어서...휴우~~~~"
(우리 박여사는 제가 매일 빡세게 밤새며 일하는 것을 많이 안쓰러워합니다. 저는 3d 직종중의 하나인
광고를 하고 있거든요. 그러면서 음악 듣는 취미라도 있는 걸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죠. ^^)
박여사 내심 조금 놀라며,
" 아니 왜 팔어?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지? "
나
"나니까 저렇게 해놓고 오디오 하지.... 다른 사람들은 폼나는 오디오에 폼나는 방에 기가 막힌 의자에...
에이 말을 말아야지...팔아...팔아버려..."
박여사
" 왜 나는 보기만 좋은데....오디오도 폼나는 방이 필요해?" (아싸! 걸렸어)
나
" 그럼 기기 백날 좋아봐야 뭐해...룸이 꽝이면 소리도 꽝이야...쩝...에휴~~"
(여기서 한숨을 기가 막히게 뱉어줍니다)
박여사
"아니 우리집에 그럴만한 방이 어딨어"
나
" 내 말이......휴우~~~"
여기서 대충 대화를 마무리 하고 2~3일을 하루에 한번 씩 아무 말없이 거실의 오디오 장을 씁쓸히
쳐다보는 모습을 슬쩍 슬쩍 보여줍니다. 물론 음악은 틀지도 않습니다.
자리뺏기 2단계
2~3일 후 박여사
" 꼭 음악을 방에서 들어야 해? "
나
" 당연하지 " (아주 힘주어 말해야 됨)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오디오룸이 있는 건 아니니까 편법을 쓰긴 하는데......"
박여사 (조금 솔깃하며)
"뭔데"
나 (이때 좋아서 웃으면 안됩니다.)
" 우리집은 그나마 해당사항이 없어...쩝...에휴~~~"
(턱 끝으로 풀(놈)들을 힘없이 가리키며)
"화분님들이 계신 자리라...에휴~~~"
박여사 얼굴에 갑자기 찬바람 쌩 돌며
"안돼! 꿈도 꾸지마"
다시 2~3일 동안 앞선 2~3일 동안의 행동을 하며 가끔 애처로운 눈 빛으로 풀들을 쳐다보기도 합니다.
자리뺏기 3단계
주말을 틈타 약간은 비장한 표정으로 슬픈 엘피 한장을 골라 턴테이블에 무슨 의식을 진행하 듯 올려 놓습니다.
박여사
"웬일로 오늘은 음악을 틀어?"
나
"그냥~ 휴우~~~~" (슬쩍 풀을 한번 쳐다봅니다...표시 안나게)
박여사 (조금은 혼란해 하며)
" 왜 그러는데? "
나
"아냐~~휴~~마지막으로 한번 잘 들어볼려구"
박여사 (아주 얄밉다는 듯, 하지만 단호하게 의의로 명쾌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 좋아 저자리로 옮기는 건 좋은데 화분도 못 치워! 그러니까 알아서 해, 나도 그이상은 양보 못해"
당근 예상했던 결론이죠 ^^
그리고 화분은 디퓨저로서의 역할을 아쉬운 대로 해줄테니 나쁠 건 없다고 아주 전 부터 생각했던 것이고요.
(아직까진 절대로 좋아하면 안됩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이니까요)
나 (자못 진지한척...너무 아쉽다는 듯)
" 아니 그렇게 생각해 주는 건 고마운데...그렇다고 화분하고 오디오가 동침을 하는 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여사
"싫으면 말고"
나(움찔!!!!)
"알았어 그럼 뭐 아쉬운 데로 해보지 뭐....여보 고마워...음 헛 헛"
이래서 적(화분)과의 동침은 시작되었고 (그림 3 참조) 나름 대칭형의 룸을 갖게 된거죠.
그리고 거실유리창 자리엔 방음판이 들어가면 딱이겠지만 햇빛문제로 우드블라인드로 협상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리고 3일후 청소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박여사의 강력한 태클이 있어
눈물을 머금고 바닥에 깔려있던 기기들을 2단으로 다시 디스플레이 하면서 본격적인 적과의 동침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림 4 참조)
적과의 동침중인 제 시스템을 잠시 소개하자면...
여지껏 제게 가장 큰 만족을 주었던 아큐페이즈제품들로 대부분이 이루어져있습니다.
프리는 아큐DC-330이라는 디지털앰프입니다. 디지털이라는 선입견이 있기 쉬운데 잘익은
복숭아 깨물때 흐르는 과즙맛의 소리를 내어주는 프리앰프입니다. 파워는 동사의 P-5000입니다.
아주 넉넉하지만 무식하게 힘자랑 하지 않는 순둥이 같은 파워앰프입니다.
그리고 cdp밑에 있는 놈이 우리집의 구조를 나보다 더 잘알고 대역 발란스를 거의 완벽하게
통제해 주는 DG-38입니다. 그나마 자리를 옮겼더니 예전처럼 하는 일이 확 띄어 보이지는 않지만
리스닝룸의 불안함에서 나를 안심케 해주는 아주아주 기특한 놈입니다. 그래도 사람이 간사한지라
어느정도 청취환경이 개선되다 보니 이놈을 내보낼까 하며 목하 고민중입니다.
다음으로 cdp입니다. 조금 의아하게 데논 DCD-2000AE입니다. cdp는 지금 sacdp냐
sacd 트랜스포트냐 아니면 cdp냐 cd트랜스포트냐 등의 많은 고민속에서 핀치히터로 잠시 활약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턴은 VPI사의 스카우트마스터입니다. 제기준으로 나름 설득력있는 소리를
내어주는 기기입니다. 카트리지는 데논 103R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스피커 입니다. 아우룸칸투스의 최상위 북셀프라고 하는
VOLLA입니다. 이해가 잘 안되시죠? 우리나라에 볼라유저는 몇 안되는 것 같습니다. 1번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놈이 B&W 805s와 한동안 실력을 겨루다가 805s를 떠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물론 아큐와의 상성도 좋은 것 같고요. (아주 주관적인 판단이기 때문에 805s유저분들께선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 아우룸 최고의 리본트윗에서 뿜는 고역은 아주 일품이며 저역은 웬만한
톨보이를 울고가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way에 대한 호기심이 뻗쳐 역할이 조금 미미해진
DG-38을 어찌어찌해서 ATC를 들여볼까 고민중에 있습니다.
이상으로 AV갤러리에 올리는 제 첫글을 마칠까 합니다.
**** 재미를 얻어보고자 약간 과장을 하였지만 선뜻 자리를 내어준 우리 박여사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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