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 라이프펜 / 2008-7-8)
어제 퍽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떴습니다. 봉하마을로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기밀 원본을 가지고 갔다는 청와대의 주장인데요. 무척 흥미롭습니다. 아주 흥미로워요. 중앙일보가 크게 보도한 내용으로 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거의 국가 하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해커 수준의 악당인 모양입니다. ^^
자- 여기서 드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어째서 지금 이 엄한 시국에 이명박의 청와대는 자꾸만 이 문제를 거론하며 삽질할까요? 정답은 아무도 모르지만, 차근차근 유추해보고 상상할 즐거움은 누려보고 싶군요.
상상 1. 이명박의 의도 - 희생양 만들기와 보수층 결집으로 정국을 돌파한다?
이런 삽질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 번째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이명박이 노 전 대통령을 촛불 정국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보고자 하다는 것입니다. 즉 "노무현은 국가기밀을 빼내간 나쁜 놈이고, 나는 노무현이 인수인계 제대로 안 해줘서 일을 하고 싶어도 못했다. 내가 일을 못한 게 아니라, 못하게 방해한 거다. 그러니까 노무현은 국가의 적이다. 그리고 지금의 위기도 사실상 노무현이 조정(?) 한 것이다. 배후는 노무현이다!"
이런 황당한 논리가 먹힐까? 의문이 가시겠지만 이런 3류 스토리에 감명받는 계층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하루종일 특정 신문과 특정 채널의 뉴스만 보는 특정 연령층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70년대식 시나리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공감할까요? 더구나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 방향으로 가는 시위대를 돌리라는 조언(?)을 한 이후로 촛불시위대로부터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 노 전 대통령과 촛불시위를 연관시킨다는 것은,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면 주가가 3000 간다는 소리만큼이나 황당무계한 어거지입니다.
이 가설은 다분히 의심은 가지만, 청와대 컴맹설만큼이나 국가 전체가 쪽팔리므로 일단 잠정 폐기 ^^
상상 2. 이명박의 의도 - 봉하대(?)에 있는 자료가 누출되면 국가 안보가 위태로울까 걱정이 되어서 그렇다?
이런 의도를 암시하는 목적의 보도들은 이미 이 논쟁 초기에 나왔습니다. 민주주의 2.0과 e-지원을 한데 묶어서 국가기밀이 마구 웹으로 흘러나가는 것처럼 보도한 것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저 똑똑한 북괴의 해커들이 봉하마을을 노릴지 모릅니다! ^^ 하지만, 조금만 웹서비스에 상식이 있는 분이라면 아주 간단한 보안조치로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바로 <모뎀 전화선>과 <랜카드>를 아예 뽑아 버리면 됩니다.^^
그럼 북괴의 해커가 휴전선을 넘어서 KTX를 타고 봉하마을 서버를 직접 현피하지 않는 한 웹적인 수단을 통해 정보가 노출될 가능성은 O 입니다. 아 혹시 초능력을 쓸지도… ^^ 사실 웹 보안에 국한되어 말하자면. 봉하마을에 네트워킹이 완전히 차단된 DB 전용 PC가 한 대 있는 것이 노 전 대통령에게 국가 기록원으로 접속할 수 있는 로그인 아이디나 패스워드 등의 편의(법에 보장되어 있는)를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3개월 전 부터 봉하대가 계속 주장하는 것이 노 전 대통령에게 국가기록에 대한 열람권을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노 전 대통령에게 국가 기록원에 접근할 수단을 제공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자료들이 원본이든 사본이든 제출하라고 하면, 노 전 대통령이 거부할 명분이 없습니다.
이래도 노 전 대통령이 거부한다면, 그가 나쁜 사람인 것이지요.
자 그러니 이 가설도 폐기 ^^
상상 3. 이명박의 목적 - 진실을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이 두려우니까.
이제 해답을 유추할 수 있는 마지막 상상입니다. 촛불 정국의 와중에 이런 보도가 난 적이 있습니다.
(해롤드경제) 쇠고기 前-現 정부 진실공방
천호선 "李 당선인에 전달"
임태희 "그런 얘기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일본 등 주변국 수준으로 개방하기로 구두합의하고, 이 사실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본지 18일 자 1면 참조>는 보도를 둘러싸고 전. 현 정권 간 진실공방으로 비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당시 노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과의 첫 회동에 배석했던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19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당시 회동에서 노 대통령이 당선인에게 쇠고기 문제는 한·미 FTA의 전제조건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끝까지 쥐고 가는 것이 전략적으로 바람직하며 국민 건강의 관점에서 일본 홍콩 등 다른 국가 관계와 맞게 접근해야 한다는 내용의 조언을 하신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 발언을 헤럴드경제에 처음 전달한 김진표 통합민주당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노 전 대통령 때 쇠고기 문제를 처리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얘기한 데 대해 노 전 대통령이 '한·미 FTA의 미국 의회 비준을 압박하기 위해 쇠고기 협상은 미리 하면 안 되고 미 의회가 비준안을 상정하기 바로 전에 체결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이 내용을 이 대통령에 전달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월 18일 당선인 비서실장 자격으로 노무현·이명박 2차 회동에 배석했던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은 "그날은 (이·취임식을 앞두고) 물러난다고 인사하는 자리였는데 그렇게 중요한 얘기를 그 자리에서 했겠느냐. 전혀 그런 얘기 없었다"며 '쇠고기 협상 내용 전달설'을 부인했다.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기사와 함께 판단하실 수 있도록 제가 알고 있는 "분명한 사실"을 말씀 드립니다.
(1) 국가원수가 다른 국가원수와 대화하는 모든 내용은 기록됩니다.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국정상의 모든 발언은 녹음됩니다. (화장실은 예외라고 칩시다. ^^) 그리고 전화통화도 그렇습니다. 이건 도청이나 감청 따위가 아니라 공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국가원수가 다른 국가원수와 하는 발언은 작은 농담이라도 사실상 공식 외교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농담을 통해서 얼마든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지요.
이걸 기록하지 않아서 나중에 외교적인 오해가 누적되는 것보다 확실한 증거를 서로 남기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죠. 남북정상회담 때도 이런 절차를 거쳤습니다. 특히 통화상의 대화는 원거리 유선상의 문제로 잘못이 발생하기 있기에 양국 모두 통화기록을 남기고 비서진들이 이를 확인해서 공식 녹취록을 만들고 확인받습니다. 국제관례이며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 기사의 내용과 같은 일이 실제로 있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부시 대통령과 쇠고기 개방에 대해 합의한 것이 전화통화로 이루어졌다면, 그 통화 내용은 음성파일로 당연히 남아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기록물은 당연히 대통령 기록물입니다.
(2) 대통령 당선자는 국가원수에 준하는 예우를 받습니다.
만약 대통령 당선자가 청와대를 방문했다면, 그는 국가원수에 합당한 예우를 누릴 의미와 권리가 있습니다. 즉 그의 발언이 국가 공식 기록물로 영구히 보존되는 것입니다.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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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12.28.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 회동 |
참여정부만큼 기록물 관리에 철저했던 정부는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가 열리는 장소 세종실에도 CC-TV를 설치해서 공개회의의 경우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정부종합청사의 차관급들에게 국무회의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었습니다. 기록의 효율성과 국무회의 내용의 실시간 전달을 통한 업무효율 향상 두 가지 목적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이때 노-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발언 내용은 음성파일로 기록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도청이 아니라 여야 간의 정권교체니 흠이 안 잡히기 위해서라도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만약 그런 기록물이 존재한다면, 이것도 역시 대통령 기록물입니다.
(3)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쓰기 위해서 자료 (대통령 기록물)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호… 이제 어떤 그림이 그려지시는지요? 여러분들이 이 지식을 놓고 사태를 생각하신다면- 한가지 퍼뜩 드시는 상상이 있을 겁니다. 네 저도 그 생각이 듭니다.
혹시 정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지 부시 사이에 쇠고기에 대한 구두합의가 있었다면, (그것을 입증할 음성파일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면) 혹시 정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명박 당시 당선자에게 인수인계를 해줬다면, (그것을 입증할 음성파일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있다면)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회고록을 쓴다면…
자 이제 1년, 2년 뒤의 사태는 어떻게 돌아갈까요? ^^ 이것은 <이명박 매국노설>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 아닐까요?
그러니 이명박 씨와 그의 참모들은 정말로 미치도록 궁금하고 알고 싶지 않겠습니까?
정권을 인수하고 나서 보니, 청와대 내의 음성을 포함한 모든 기록이 철저하게 기록되게 있다는 것을 이제야 간파했는데- 정권 인수기에 자신들이 무슨 삽질을 했는지는 전적으로 전직 대통령 기록물로 남았고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노 전 대통령뿐이라는 사실!
그걸 바탕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회고록을 쓸지, 그 회고록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그 회고록이 발간되었을 때 그 내용들을 입증한 확실한 증거를 노 전 대통령이 폭로 아니 공개한다면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그러니 돌려달라고 우겨야죠. 그게 무엇이던 뭔가 가지고만 있다면 돌려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
이 상상이 맞는다면…
아… 정말 무서워요.
역사에 근거를 남기는 행위라는 것…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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