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 처가집에 갔습니다. 가족 모임을 준비 하던 중 잠시 소란이 있었습니다. 그 소란 속에서 어쩌면 촛불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 하나를 보았습니다.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입니다.
장인 어른께서는 군 출신이십니다. 처가댁에 가면 동기모임 비슷한 이름의 모임에서 보낸 문건(?)들을 볼 수 있습니다. DJ의 따님 이야기부터 은닉한 재산에 대해 무지막지하게 해부한 내용들이 적혀 있습니다. 예전에는 386을 지휘하는 총 대장이 이해찬 총리라는 내용이 적힌 글을 보고 웃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저와 집사람은 인사동의 술집에서 만난 사이입니다. 옆 테이블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연신 웃음을 터트리던 아가씨와 어찌어찌 해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상호간에 공유할 수 있는 인생의 배경이 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즘 단단하게 공유하고 있는 한 가지(아이와 그외 가족들을 제외하고..^^)가 생겼습니다. 촛불집회가 그것입니다. 처음 보도가 나오면서부터 지금까지 줄곳 저보다 더 극성입니다.
이제 지난 일요일 이야기입니다.
집사람과 장인어른 사이에 작은 말다툼이 있었습니다. 촛불집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FTA나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서라도 그만두어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시고, 집사람은 자동차를 팔기 위해서 위험한 먹거리를 받아들인다는것이 말이 안된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분위기가 좀 서먹해지면서 모두들 그만 그쳤으면 하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장모님께서 집사람에게 그만하라고 하시고, 장인어른께 한마디 하셨습니다. 그 한마디에 상황이 정리되었습니다.
'요즘 애들은 다이어트 하는 애들인데, 우리 식으로 애들의 생각을 이해하려 하면 안되죠..' 이것이 장모님께서 조용히 하신 말씀입니다.
어른들의 세대에는 자동차를 파는 것이,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확율도 낮다고 하는 그 쇠고기 좀 수입해주고 자동차를 파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참가자들, 아니 국민의 다수가 자동차 좀 못 팔더라도 먹거리의 안전함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라는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이런 배경의 차이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가져왔다는 것이지요.
1) 집사람에 대하여
그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집사람이 분노하기 시작한 계기가 '학교나 군대의 급식'이야기 였습니다. 더구나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종류의 조미료나 인스턴트 식품 등에 우리가 모르게 안전하지 않을 수 있는 먹거리가 들어갈 것이라는 점에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원산지 표시제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분노했습니다. 그것이 미국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 선물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에 또한 분노했습니다.
2) 장인어른에 대하여
장인어른에게 생각이 돌아갔습니다. 광우병 발병의 확률을 생각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이런 것들을 이루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오랜만에 집권한 우파정권의 안녕을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나라를 위해 옳은 선택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장인어른에 대해서 저 또한 '다이어트' 세대인 저 또한 저의 잣대로만 해석하고 비판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3) 저와 집사람과 장인어른의 완전하지 못한 만남
지금은 집사람에게 촛불의 의미가 단지 먹거리 하나의 의미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바라보는 정권의 한계, 터무니 없을 정도로 엉뚱한 짓만 거듭하는 경찰이라는 조직의 존재의 의미, 그리고 이를 넘어 촛불을 바라보는 한국사회 우파의 사상적 빈곤함.. 이런 것들이 더욱 중요한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번 촛불집회 이전까지 한번도 '집회'라는 곳에 나가본 적이 없는 집사람에게 이번 촛불집회의 의미는 이렇게 매우 지대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집사람도 인정하듯 촛불은 최소한 저희 집에서만큼은 완전히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장인어른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리고 아마 이번 촛불집회가 '진보진영'에 대한 장인어른의 마음을 더욱 돌아서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와 집사람은 만났지만 아직 장인어른과는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4) 완전한 만남을 위하여
저희 가족을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급격한 변화속에 살고 있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서로 다른 배경과 그 차이에서 기인하는 의식과 사상의 차이에 대해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저와 장인어른이 만나고 집사람과 장인어른이 만나기 위해서는 장인어른 세대의 관점을 저와 집사람이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저와 집사람이 집안의 가장이 되고 집안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당연히 인정받고 있지만 실권이나 실무에 관한 것들은 모두 저희에게 일임하고 계십니다. 집안일을 풀 때도 아버님의 정서와 조카들의 정서까지 배려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입니다.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70%가 넘는 국민들 대부분이 저와 같은 입장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촛불집회의 반대집회에 참석하는 어르신들의 정서를 우리가 배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의구현사제단의 참가에 열광했습니다. 청와대를 버리고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일 뿐이라는 이야기에 공감을 느꼈고, 남대문 방향으로 철저한 평화집회를 이야기하며 행진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릴뻔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은 우리의 정서에 기반한 우리의 집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답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제기 자체가 우문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촛불집회를 통해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갖고 있지만 정서가 다른 윗세대 어른들에게 우리의 정서가 다가갈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으면 합니다.
추신..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일단 장인어른과 메일로 조심스럽게 대화를 시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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