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농성이었다고 봅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폭력적인 대응으로 얼떨결에 들어간 곳이 명동성당.
여기서 일시적인 집회로 끝날수도 있었든 6월 항쟁은 그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있었구요.
부산에서도 남포동 카톨릭센타에서 농성을 돌입했었죠.
이번 정의구현사제단의 발표와 농성이 단시일내에 어떤 결과를 낳지는 않겠지만 그 의미는 크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때와 차이점은 87년은 주동력이 청년학생이었든 것에 비해, 지금은 거의 찾아 보기가 힘들다는 것.
너거들 왜 그러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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