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곳 와싸다에 2004년 2월 5일에 가입하고 4년 9개월여 동안 거의 매일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특히 A/V갤러리에서 여러 회원님들의 오디오시스템 사진을 관심있게 또는 재밌게 구경했고요.
오랜만에 주말을 집에서 보내게 됐습니다. 하루 종일 제 방에서 이것 저것 하다가 새벽 1시가 훨씬 넘었는데 갑자기 제 오디오와 음반 사진을 올리고 싶다는 무지막지한 용기가 생기는군요.^^
지금도 온전하게 버스가 들어오지않는 깡촌에 살았습니다. 도회지로 나가서 학교를 다니는 누나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최신팝송이 녹음된 테잎이 집에 있었습니다. 그중, 마이클잭슨의 '빌리진' 가사를 한글로 받아적느라 플레이, 스탑, 되감기 버튼을 하루 종일 힘겹게 눌러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청주에섣 다니게 됐습니다. 고1때 우연히 친구(지금 저의 가장 가까운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전축'이 아닌 '오디오'란 걸 처음 봤습니다.^^ 이름도 찬란한 롯데매니아.
그 친구가 불을 끄고 LP로 제게 들려줬던 노래가 박학기의 '향기로운 추억' 이었습니다. 고1인데도 그 친구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맥주 2병과 구운 오징어 한 마리를 넣어주셨습니다. 물론 각종 알콜이야 중학교 2학년때 부터 접했던 거라 그닥 새로울 건 없었지만 부모님이 맥주를 갖다주시는데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그래서 마셨죠.^^
'한 줄 젖은 바람은~~~' 정말 '천국' 같았습니다. 불을 끄고 듣는 박학기의 감미로운 목소리, 어린 제게는 진정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때 부터 누나들을 몇 달간 졸랐습니다. 오디오만 사주면 열심히 공부하겠다고요. 당시 120만원을 주고 롯데매니아에서 오디오 시스템을 샀습니다. 그 후론 정말 눈에 불을 키고 공부를 안하고 오디오 턴테이블 위에 달려있던 조그만 불만 켜놓고 주구장창 음악만 들었습니다.
제 나이 36살, 이젠 믿지 않습니다. '~만 사주면 ~를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서 우연히 청주의 오디오가게 앞을 지나다가 몇 개 있지도 않던 오디오 가게라는 곳을 들어가보고 말았습니다. 놀라 자빠졌죠.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때 마란츠 앰프에 보스 스피커에서 나오던 제럴드 졸링의 'Love is in your eyes'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 노래 도입 부분에 나오는 '두두두, 샬랄랄라, 샬랄랄라' 하던 그 소리를요....
군대를 갔다오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신촌 '타워레코드' 재즈코너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그땐 정말 음반사에 취직하는 게 제 꿈이었거든요. 힘들고 돈은 얼마 안줘도 정말 재밌었습니다. 음반사나 음반매장에 직원으로 취직하는 게 생각했던 것만큼 재밌고 흥미로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그때 배웠습니다. 그러다가 황학동 '돌 레코드'를 놀러갔다가 당시 사장님이었던 할머니의 권유로 그쪽에서 두 달가량 일도 했었습니다. 정식으로 직장을 잡는 바람에 거길 그만둬야 했지만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손님(특히 여자손님^^)이 와서 몇 소절 흥얼거리면 그 음반을 찾아주는 게 정말 재밌고 보람 있었습니다.
그때 퇴근하고 그 옆에 있던 '김인규 오디오'라는 곳에 가서 매일 놀다가 집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때 우연찮게 그 사장님이 추천해준 시스템으로 10년 가까이 쓰고 있습니다. 중간에 살짝 바꿈질에 대한 유혹도 느껴봤습니다만 좀 하다가보니 제 능력 밖이라는 생각에 아직까지 그냥 그때의 기기로 듣고 있습니다. 제게 박학기의 '향기로운 추억'을 들려줬던 그 친구가 장가 갈때 250만원을 주고 시스템을 꾸몄는데 아직 길이 안 들어서 그랬던지 제 것보다 소리가 안좋다고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막 피어오르려던 바꿈질 유혹을 버텨냈습니다.^^
Amp: Fisher 250T, Fisher 500TX
Turntable: Dual 601
CDP: Cambridge Audio azur 640C
Speaker: AR 17 (그릴은 길거리 가다가 떡보자기 파는 할머니한테 삼베를 사서 검은 그릴을 떼내고 바꿔봤습니다.)
Laser Disk Player: Philips (고장^^)
음반은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용돈 아껴가며 한 장, 한 장 사다가 대학들어오면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사모으기 시작했습니다. LP나 CD랙을 쳐다보고 있으면 저 음반 중 1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안 트는 음반이 1/3은 더 될텐데라고 생각하다가도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바로바로 꺼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에 위로를 삼고 있습니다.
간혹, 한가지 장르의 음악을 깊게 들어야 한다는 소신 내지는 강박관념을 가진 분도 계신 것 같습니다만 전 제가 듣고 싶은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듣습니다. 가진 음반 중 40%가 재즈, 50%가 팝,락&가요, 그리고 클래식이 10% 정도 됩니다. 근데 해가 갈수록 장르를 떠나 그냥 조용한 음악이 좋네요.
내 오디오 사진을 올릴때는 꼭 근사하게 찍어서 어릴때부터 들어왔던 음악얘기로 멋지게 소개히고 싶었는데 주절주절 쓸데없는 말만 잔뜩 늘어놓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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