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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조, '햄버거' 이후를 말하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지금까지 오는 과정에서 뉴라이트가 보여준 활약은 도드라진다.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열렸던 6월10일, 뉴라이트는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미국산 내장 소시지를 구워먹었다. 이들이 외쳤던 구호는 ‘불법 촛불집회 반대’와 ‘한미동맹 강화’였다. 뉴라이트는 5월23일에도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열었다.
KBS 등 방송에 대한 정권의 압력을 가장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는 세력도 뉴라이트다. 뉴라이트는 촛불집회의 ‘배후’로 KBS와 MBC을 지목하고 앞장서서 방송을 비판하고 있다.
6월5일 MBC <100분 토론>에 참석한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은 최근 촛불정국에 대한 뉴라이트의 시각을 보여줬다. ‘배후론’과 ‘친북좌파’, ‘편파보도’라는 표현도 그대로 등장했다. 물론 임 사무처장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결정적 계기는 이른바 ‘맥도날드 햄버거’ 발언이었다. 당시 방송에서 그는 “미국에서도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와 내장이 소비되고 있으며, 대부분 맥도날드 등 햄버거에 사용된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국제적 파문으로 발전했다.
<100분 토론> 방송 일주일이 지난 6월12일, 임 사무처장은 맥도날드 사태에 대한 입장을 묻자 손사래를 쳤다. 그가 말한 ‘배후론’, 그리고 뉴라이트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도 물었다.
-맥도날드 햄버거에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가 쓰인다는 발언의 근거는 어떤 것이었나.
“맥도날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 반미세력이 가장 상징적으로 활용하는 게 코카콜라와 맥도날드인데, 더 언급하면…. 대신 그 이야기를 좀 해달라. 한국 맥도날드는 호주산과 뉴질랜드산을 쓰는 것이 분명하고, 내 이야기로 한국 맥도날드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각에서 ‘임헌조 열사’라고 부르는 사실을 알고 있나.
“자고 일어났더니 열사가 돼버렸다. 이런 공격은 처음 받아봤는데, 당혹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좀더 신중하게 발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 (6월5일) MBC <100분 토론>에 나간 이튿날, 초등학교 5학년인 딸 아이 블로그에 만 명 정도가 몰려와서 ‘네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 ‘너는 고아가 될 것이다’ 등의 협박성 게시물을 올렸다. 내가 <100분 토론>에서 촛불집회의 폭력성을 지적하니까 반대하는 쪽에서 조직적으로 들어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맥도날드 파동이 벌어진 것은 그 직후였는데, 저쪽에서 그걸 우스꽝스럽게 활용하는 과정에서 내가 열사가 됐고 덕분에 나에 대한 공격도 한풀 꺾였다. 이것도 하늘의 도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당시 토론에서 촛불집회의 배후론을 제기했는데 아직도 배후가 있다고 생각하나.
“배후라기보다 조직적 개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우선 정부의 국정운영 미숙을 꼽을 수 있지만 공영방송이 진실을 보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근거없는 이야기로 국민 불안을 가중시킨 측면이 있다. 지금도 국민은 KBS나 MBC를 보며 미국에서는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를 먹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여기에 친북좌파 단체가 개입해서 분위기가 더욱 폭력적, 정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상이 지금의 촛불 정국을 만든 핵심이라고 보나.
“그렇다. 반미 정서가 높은 남미도 월령에 상관없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만 그것이 반미투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미국인이 먹는 쇠고기와 똑같은 것을 먹고 있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 폭력 행위가 빚어졌지만 극히 일부의 일이다. 임 사무처장은 그 일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촛불집회 전체를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항의전화도 받지만 격려전화도 많이 받고 있다. 한국에서 집회가 폭력시위 형태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분과 미국산 쇠고기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미국 뉴욕과 LA 교포들도 격려전화를 많이 주고 있다.”
-쇠고기 문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불만이 그만큼 누적된 결과라는 분석도 많은데,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매우 다른 것 같다.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것은 먹거리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폭동과 봉기도 먹거리 문제 때문에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 이명박 정부야 지금 100일밖에 안 됐고, 촛불집회가 시작된 시점은 지금보다도 한 달 정도 앞선 시점이었다. 고소영, 강부자 내각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출범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한 것도 크게 없다. 만약 공영방송이 제대로 된 내용을 전달했다면 국민들이 이렇게 거리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정국에 대한 임헌조 사무처장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방송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아예 화제를 방송에 대한 뉴라이트의 입장 쪽으로 바꿨다. 뉴라이트는 올초 뉴라이트방송통신정책센터를 설립하며 방송과 통신 정책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KBS에 대한 감사원 감사도 뉴라이트 등의 청구로부터 시작됐다. 일각에서는 뉴라이트가 현 정부의 방송정책 집행 과정에서 전위부대로 나서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보도 과정에서 일부 사실관계에 대한 오보는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을 가지고 ‘방송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가. 방송이 잘못 보도한 것이 뭔가.
“기자나 전문가들도 미국에서는 30개월 이상은 안 먹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내가 <100분 토론>에 출연한 다음날 MBC 9시 뉴스에서 한국 맥도날드가 자신들은 호주산을 쓴다고 표명했다. 그러자 맨 마지막 멘트가 ‘미국인들도 안 먹는 30개월령 이상을 수출해서 한국인들에게 먹게 하려는 미국은 잘못입니다’, 이렇게 말했다. 방송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면 국민들은 미국에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알 수밖에 없지 않나.”
-과학적 근거를 따진다면, 30개월령 이상 된 쇠고기에서 광우병의 원인 물질인 변형 프리온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 30개월령 이상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30개월령 이상을 비싸게 받을 수 있는 정육으로 팔지 않고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은 햄버거 패티용으로 분쇄해서 파는 것 아닌가.
“통계적으로 보면 미국에서 소비되는 쇠고기 가운데 18% 정도가 30개월령 이상이다. 지역마다 틀린데, 서민들이 몰려 사는 지역을 보면 30개월 이상이 50% 이상 소비되는 곳도 있다.”
-값이 싸니까 서민이 먹는 것 아닌가.
“이런 제안을 하고 싶다. 정부가 조사단을 파견했는데 정부 자체가 신뢰를 상실해서 국민들이 믿지 않는다. <한겨레21>을 포함한 언론사 기자, NGO 관계자, 대학생 등으로 구성된 민간조사단을 미국으로 보내서 확인하면 되지 않겠나.”
-방송 이야기를 계속 하는데, 뉴라이트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집행 과정에서 전위부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정부가 KBS를 압박하자 뉴라이트에서는 느닷없이 KBS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다. 지나치게 친정부적인 행보라고 보지 않나.
“현 정부의 국정운영 미숙과 리더십 문제를 신랄히 비판한 적이 있다. 무조건 용비어천가를 부른 적은 없다. 우리는 보수우파의 NGO로서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이나 국정운영 방향이 우리와 맞을 때는 지지하고 동조하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비판하고 그러는 것이다.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한다.”
-뉴라이트는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언론광고를 내서 선관위로부터 고발당한 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는 뉴라이트 인사 수십명이 한나라당 공천 신청을 냈다. 시민사회단체인지 정치단체인지 헷갈린다.
“그것도 오해다. 외국의 경우 시민사회단체가 선거철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한다. 만약 지지 후보가 당선되면 책임감 있게 비판하고 지적하면서 이끌어간다. 선진국 NGO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활동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NGO가 특정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걸로 오해하고 있다.”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총선에서는 그 당에 공천을 신청한 결과가 지금 뉴라이트의 일방적인 정부 편들기 행보를 설명해주는 것 아닌가.
“외국의 경우 NGO에서 능력과 도덕성을 인정받은 사람이 정치권에 진입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권에 대한 혐오감이 있어서 NGO에서 검증받은 사람의 정계 진출 창구가 막혀 있다. 시간이 좀더 지나면 이런 시스템이 정착될 것으로 본다.”
임헌조 사무처장은 1999년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04년 뉴라이트전국연합 활동을 시작하며 이른바 ‘전향’을 완료했다. 그 사이 벤처업과 제조업, 그리고 유통업 등에 손을 대기도 했다.
(위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일부는 <한겨레21> 제715호 지면에 실렸다는 사실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