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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100인 인터뷰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8-06-12 13:41:51
추천수 2
조회수   1,047

제목

시사IN 100인 인터뷰

글쓴이

이명재 [가입일자 : 2002-07-08]
내용
최병권(15·수원 원천중 3학년)

“요즘 여학생만 집회에 나오고 남학생은 왜 안 나오느냐고 한다. 물론 남자애들이 철이 좀 늦게 들긴 하지만 그래도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 단지 집회 현장에 늦게 나온 것뿐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많이 이야기해준다.”



박상범(61·무직)

“9일째 계속 집회에 나오고 있다. 국가권력에 대해 한이 많아서다. 친한 형제에게 사기 피해를 당했는데 검찰에서 시효가 지났다며 사건을 받아주지 않았다. 정부에 청원도 여러 차례 했지만 모두 헛일이었다. 검찰에게 당하고, 정부로부터 무시당하고 내 분노를 풀 곳이 이곳밖에 없다.”



서슬기(19·서울디자인고등학교 3학년)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4년이지만 이명박 대통령 정권 아래서 사는 것은 5년이다. 공부하는 것보다 집회에 참가하는 게 더 중요하다. 촛불집회에 가겠다고 하니 담임선생님은 ‘집회에 나가는 것도, 퇴학도 말릴 수 없으니 조심하라’며 걱정하셨다.”



이성배(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영화인이 스크린쿼터 문제에 대해서는 떠들다가 지금의 쇠고기 재협상 같은 다른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방관하는 것에 실망했다. ‘예비 영화인’으로서 쇠고기 수입 문제에 반대 목소리를 함께하기 위해 나왔다.”



정세영(24·대학생) 김유리(27·프리랜서)

“팻말에 ‘배후 세력 아닙니다. 배운 세력입니다’라고 써왔다.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알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실의 중요성을 배운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배운 세력’이다.”



이춘섭(49·부안종합사회복지관장)

“서울 병원에 입원한 아내의 병문안 가는 길에 집회에 참석했다. 지금 부안에서도 매일 30여 명씩 모여 집회를 한다. 서울의 촛불집회 광경을 보니 4년 전 부안사태 때 생각이 난다. 그때 부안 사람들의 민의가 모아지던 모습과 지금 서울의 풍경이 무척 닮았다.”



허율행(42·도서관 사서) 외 가족 2명

“초등학교 4학년 딸, 아내와 함께 나왔다. 이 분장은 우리 가족이 온몸으로 초가 되자는 뜻이다. 분장을 만들기 위해 여러 날 고생했다. 집안에 팔순 부모가 계셔서 몰래 만드느라 고생이 많았다. 이제 더 이상 해결책은 없다. 이 대통령이 자기가 졌음을 인정하는 길밖에 없다.”



함승철(24·대학생) 최지은(21·대학생)

“연인 사이다. 처음에는 쇠고기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위에 참석한 사람이 맞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났다. 맞을 이유가 없지 않나. 원래부터 공기업 민영화 등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해오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을 지지한다.”



김형수(시인·문학 평론가)

“촛불집회는 ‘정치’가 아닌 ‘문화’로 봐야 한다. 지금은 문화 자체가 목적인 지점이다. 한·일 월드컵에서 그 모습이 가장 두드러지게 보였다면, 요즈음 촛불집회는 그 지점의 완결판이 된 것 같다. 촛불집회에 와서 전율했다. 보통 문화의 최고 형태를 민요라고 보는데 지금의 촛불집회를 보며 ‘이것이 민요다’라고 생각했다.”



차정현(26·예비군)

“경찰의 강제 진압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시민을 보호하고자 이렇게 나왔다. 주로 사회 약자인 여성을 호위한다. 저들(전경)과 같은 군복을 입었지만 우리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진정한 군인이다.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전경들이 안쓰럽다.”



정하윤(31·중식당 요리사)

“미국산 쇠고기 들어오면 아마 우리 사장님은 그거 쓸 거예요. 전 손님들 행복하게 해주려고 요리하는 건데요, 살인 방조를 하고 싶진 않아요.”



윤용대(33·세무사)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세무사다. 세무사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이해할 거라고 절대로 단정하지 마라. 내가 집회에 나간다고 하니 우리 사무실 대표세무사가 굶지 말고 열심히 ‘데모’하라며 돈도 줬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보기에도 이상한 사람이다.”



◯◯◯(조선일보 기자)

“촛불집회 현장에서 외롭다. 취재를 나오면 몇 시간 동안 한마디도 못할 때가 많다. 조선일보에 대한 집회 참가자들의 감정을 알고 있기에 말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김근태(전 보건복지부 장관)

“촛불집회에 나온 것은 오늘(6월6일 오후 5시)이 처음이다. 현장에 와보니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실망이 얼마나 큰지 알겠다. 청와대에서도 직접 집회 현장에 와서 국민 정서를 느껴보기를 바란다.”



박건주(17·아나키스트) 외 3명

“펑크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이다. 학교 안 다니고 식당에서 서빙해서 돈 벌며 자유롭게 산다. 경찰에게 시민이 맞는 모습 보고 열받아서 나왔다. 민주주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이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아 ‘집시법 반대’ 팻말을 들고 나왔다.”



최민(30·민주노동당 충남지역 총무국장)

“2시간 동안 기자만 10명 가까이 만났다. 내가 입고 있는 ‘젖소 잠옷’ 덕분인 것 같다. 오늘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1만6000원을 주고 사 입었다. 아주 편하고 따뜻하다. 천안에서 왔다. 천안에 비해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는 서울의 집회 분위기가 신난다.”



유태희(60·효자동 주민)

“집이 청와대 근처다. 경찰의 물대포 공격이 있던 지난 6월1일 새벽. 도저히 혼자만 집에 갈 수 없었다. 물에 젖어 추위에 떠는 시위대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날은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주소지가 확인된 사람만 전경들이 막고 있는 골목을 지날 수 있었다. 여중생 4명을 집으로 데려가 그들이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나무 장작과 담요를 들려 보냈다. 물을 뿌린 경찰은 ‘아주 나쁜 놈들’이다.”



셰히드 마흐무드(39·파키스탄인·연구원)

“단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잠시 한국에 들른 연구원이다. 시청광장 근처 레지던스에서 묵고 있어서 매일 저녁 시청 앞으로 산책을 나온다. 촛불집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다. 신문에서 봐서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자세히 알고 있다. 한국인이 자기 견해를 표현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나도 시위대를 지지한다.”



양성모(29·KBS 기자)

“취재하다가 방패에 손등을 맞았다. 전경들이 방패로 땅을 두들기면 기자인 나도 겁이 난다. 그런 상황에서 스크럼 짜고 버티는 시민을 보면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것 같다.”



김은배(70·사진작가)

“5월24일 덕수궁에 사진 찍으러 나왔다가 전경들이 방패 찍는 것 보고 놀라서 매일 나온다. 칠십 평생 이런 일이 없었는데, 요새는 잠이 안 온다. 전경들도 버스에서 김밥 먹고 고생하는 거 보면 불쌍하다. 그래도 시민이 도망가면 그냥 둬야지, 왜 끝까지 쫓아가서 때리고 그러는지….”



김세훈(15·중3)

“내가 대통령이면 쇠고기 한강에 팍 던져버려요. 배후? 배후는 어청수 아니에요? 아들이 군대도 안 갔다면서요? 우이씨, 나도 병역비리 해야지.”



유경렬(44) 외 가족

“마음먹고 초등학교 2, 3학년생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 이명박은 국민 건강을 담보로 도대체 무얼 얻으려는 건가. 제발 우리 가족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달라.”(아들 유재호군:“나 고기 좋아하는데, 큰일이에요. 이명박 아저씨, 국민 말 좀 들어주세요”)



강홍신(35) 외 가족

“밤마다 인터넷 방송으로 촛불시위를 보며 피가 끓었다. 강경 진압하던 날 새벽에는 화가 치밀어 올라 종로경찰서에 전화해 항의하고, 동네 파출소까지 찾아가 따졌다. 하도 답답해서 식구를 데리고 직접 촛불집회에 나왔다. 광우병 때문에 촛불집회가 시작됐지만 이 정국을 해결하는 길은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조동진(58·곡물가게 운영)

“8일째 가게 문 닫고 나왔다. 밤새 들고 있어야 하니, 손 데지 않고 촛불이 꺼지지 않게 아예 큰 초를 2000원 주고 샀다. 사실 나 이명박 찍은 사람이다. 전재산 헌납한다는 등 각오가 있어 보였는데 완전히 실망했다. 쇠고기 협상이나 내각 구성 모두 마음에 안 든다. 다시 이명박을 지지할 일은 없다.”



송양환(26·MBC 기자)

“스무 번 가까이 거리시위 취재를 나왔다. 몸은 힘들지만 시위 문화의 양상이 바뀐 걸 지켜보고 전하는 일이 보람차다. 시민이 MBC를 환영할 때마다 기쁘지만 그만큼 더 공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스럽기도 하다.”



김태남(66·택시 기사)

“한국인이 곱창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쇠고기 협상은 너무 잘못했다. 성난 황소에 받혀 한나라당이 재·보선에 참패한 것이다. 촛불시위 때문에 도로가 막혀 불편하지만 이 정국에서 시민이 촛불집회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채인권(18·고2)

“요새 이 나라는 사회주의 독재국가 같아요. 헌법 제1조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혼자 다 결정하고 진행하잖아요. 10대가 어리다고 자꾸 뭐라 하는데, 우리도 법 지키고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에요. 10대가 희망이라면서요? 그러면 0교시니, 학교 자율화니 뭐니 하며 10대 기 좀 죽이지 마세요.”



조용관(37·코스콤 비정규지부 노동자)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 260일 넘게 동료들과 함께 노숙 투쟁을 하고 있다. 동료들과 더불어 촛불집회에 자주 참석하는 편인데, ‘비폭력·무저항’이라는 집회 문화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명박 정권이 국민을 무시하고 무조건 밀어붙여 전국민의 반발을 산 것 같다. 쇠고기 수입 반대뿐 아니라 민영화 반대 투쟁이나 우리가 하고 있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도 시민과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보과 형사)

“일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섞여 있지만 집회의 배후는 없다. 이번 사태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완전히 진 게임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자꾸 다른 소리를 해서 국민이 점점 더 모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막아내야 한다. 이런 우리도 답답하다.”



손성은(23) 김현주(29) 주수진(29)

“경찰의 강경 진압 장면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쌍팔년도도 아니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후진국인가 싶었다. 머릿수라도 채워보자는 심정에서 동료들과 같이 나왔다. 어린 학생도 나서는데 우리도 힘을 보태야 하지 않겠는가.”



김광범(30·미국 직장인)

“뉴욕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잠시 귀국한 상태다. 쇠고기 협상에서는 한국 정부가 미국에 완벽하게 졌다. 한·미 FTA 세부 사항을 놓고 미국이 시비를 걸어오니까, 떡고물이 떨어질 줄 알고 지레 쇠고기를 내준 것 같다. 이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협상 결과를 되돌리거나 수정을 요구하면 국제 망신이다. 그보다는 한·미 FTA를 통해 미국에서 무엇을 빼앗아 올 것인지 연구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손님 대접 잘하는 한국식 서비스라면 미국 서비스 시장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장한(25·홍익대 생활자치도서관 회원)

“중·고생보다 대학생이 시위에 덜 참여한다며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무조건 대학생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대학생은 스스로 자신을 ‘취업준비생’이라 생각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크다. 또 주변에서 보면, 요새 언론에서 시위대와 전경 충돌만 너무 쟁점화해서 나올 만한 사람들도 무서워서 안 나오는 것 같다.”



권혜진(광우병대책회의 회원)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가두시위만 되면 마이크를 잡았더니, 대책회의에서는 ‘밤의 상황실장’이라 불린다. 72시간 연속 집회를 끝까지 함께하고도 6월10일 꼭 다시 오겠다는 시민이 많아 힘이 난다. 시민이 무섭기까지 하다. 대책회의는 대통령과는 달리 시민을 무서워할 줄 아는 자세를 잃지 않을 거다.”



신규빈(25·대학생)

“6mm 카메라 들고 시위 현장을 찍는다. 전경이 사람 때리다가도 카메라 보면 물러난다. 원래 나는 우리나라 싫어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만세’를 불렀다.”



이수연(32·주부)

“미국에서 4년6개월 동안 살았던 인연으로 ‘미주 한인주부 모임’에서 활동한다. 쇠고기 협상에 반대하는 미주 한인 주부 모임에서는 촛불집회를 도울 방법을 찾다 리본달기를 제안했다. 수만명에 이르는 미국 내 우리 회원은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리본을 자동차에 달고 다닌다. 그 리본과 스티커를 한국 거주자에게도 나눠주기 위해 나왔다.”





한상국(초등학교 5학년)

“엄마랑 동생(한상철·8세)이랑 같이 나왔다. 내가 가자고 했다. 동생은 무섭다고 했지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데 집에만 있기 창피했다. 재밌기도 하고 다리도 아프고, 하지만 많이 느꼈다. 이명박이 독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나와서 무찔러야 한다.(독재가 뭔지 아나?) 시민들이 다 반대하는데 권력을 갖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아닌가.”



신순분(58·주부)

“처음에는 딸(교사) 말리려고 나왔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경찰 진압을 피해 골목을 막 뛰는데 무릎 관절이 욱신거렸다. 순간 생각했다. 조·중·동과 돈에 대해 비판의식이 없는 기성세대가 이명박을 찍는 바람에 내 아들딸이 그 짐을 지는구나. 알고 보니 울산에 사는 아들, 며느리도 집회에 왔는데 내가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은 같이 나왔다.”



이현우(46·희곡작가)

“오늘로 스물일곱 번 촛불집회에 나왔다. 하루 3시간씩 잤다. 저 전경차를 넘어서기 위한 비폭력의 방법을 고민 중이다. 여러 사람과 함께 10kg짜리 모래주머니 2000개를 준비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이 담긴 모래주머니를 딛고 올라가보려 한다. 작전명은 ‘우공이산’이다.”



구기섭·방미영(34·부부)

“처음 나왔다. 집회에 나오기 위해 황금연휴(현충일)를 기다렸다. 자격증 공부 때문에 못 나왔는데 시험 보고 오는 길이다. 국민의 의견 개진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걸 보면서 참을 수 없었다. 경찰이 물대포 진압을 하던 날 밤새 인터넷 생중계를 지켜봤다. 내 아이(23개월)가 고기를 좋아해 더 걱정이다.”



한정숙(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마치 프랑스 68혁명을 보는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꽉 막히고 소통하려 하지 않는 정부, 그를 조롱하는 시민의 수평 연대가 무척 인상적이다.”



오연호(44·오마이뉴스 대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에너지를 집단으로 충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개인 인생이든, 한 나라든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 필요한데 10대가 스타트를 끊었다. 5, 6월 촛불항쟁은 역사와 새로운 세대의 합작품이다. 과거 민주화 세대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그들의 방전된 에너지를 전혀 예상치 못한 10대가 등장해 충전해주고 있다. 이 촛불 세대의 에너지가 20~ 30년 한국 사회를 먹여 살릴 것이다.”



한상희(49·건국대 법대 교수)

“쇠고기 협상은 검역 주권뿐 아니라 입법 주권까지 포기한 것이다. 쇠고기 고시 내용을 보면 쇠고기의 개념을 미국 농무부에서 정한 것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입법권과 주권을 위임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명박 정부는 이념이나 철학도 없이 시장이라는 이름 아래 필요한 대로 움직이는 정부가 아닌가 싶다. 결국 그런 정부 아래서 고통받는 것은 국민이기 때문에 그 점이 안타까워 나왔다.”



유미(30·병원 근무)

“쇠고기 때문에 촛불집회에 나온 것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국민을 위한 것이 하나도 없다. 대운하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민영화 문제도 심각하다. 광우병 걸리면 MRI를 찍어야 하는데, 지금도 MRI 값은 너무 비싸다. 이대로 가다가는 광우병 걸려도 MRI 한번 못 찍고 죽을 것 같다. 그래서 동료와 함께 피켓을 만들어 나왔다.”



◯◯◯(경찰 고위 간부)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불필요한 조처였다.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 사항이 있으면 처리하는 것이 경찰의 일이다. 청와대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고 국민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경찰청장이 이 일을 해결할 수도 없지 않은가?”



정광현(블로거 기자 ‘한글로’)

“나는 독자의 조회 수로 먹고사는 블로거 기자다. 요즘은 오기 싫어도 여기(집회장) 와야 한다. 촛불집회 관련이 아닌 기사는 포털도 누리꾼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반면 촛불집회 기사를 쓰면 ‘빗맞아도 3만명’이다. 평소에는 낮 시간에 사람이 몰렸는데, 요즘은 촛불집회 때문에 새벽에 올린 기사가 조회 수가 더 나오는 기현상도 일어난다.”



이용한(41·시인)

“국민이 원하는 건 간단하다. 재협상하라는 거다. 대통령도 단순히 생각하면 해법이 쉽다. 뭘 이리저리 재고, 따지는가. 대통령이 아직까지 사태 파악을 못한 것 같아 답답하다.”



권일(55·부동산 컨설팅)

“여대생이 군홧발에 짓밟히는 동영상을 보다가 흥분해서 나왔다. 화가 가라앉지 않아 하룻밤 노숙까지 했다. 다치는 사람 없이 하루빨리 촛불 정국이 끝났으면 한다.”



강의석(대광고 학생 시절 종교자율화 1인 시위자·대학생)

“나는 대통령이 무조건 국민의 뜻에 따라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리더라면 다수의 뜻과 다른 확신이 있을 때는 국민을 설득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국민이 항의하니까 설익은 수습책을 두서없이 내놓더라. 그걸 보고는 아니구나 했다. 애초에 확신도, 설득할 자신도 없었다는 얘기 아닌가.”



박준우(35·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 기획팀장)

“시민단체가 이번 시위를 기획했다면 이렇게 많은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예전에는 시민단체가 앞서서 이슈를 주도하는 면이 있었는데, 지금 시민단체는 대중의 향방을 지켜보고 따라갈 뿐이다. 이 운동을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종결할지 알 수 없고 예측할 수도 없다.”



박경난(44·대학강사) 진건용(16·중3)

“83학번인데, 시위 한번 안 하고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주거학 전공자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리더가 바뀌면 정책이 바뀐다는 걸 실감하면서 시민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번 촛불문화제에는 아들이 먼저 참가했다. 나는 학부모로서 허락서를 써주다가 드디어 아들과 함께 나왔다.”



임근수(이벤트업 종사자)

“나는 이명박을 찍었다. 당장 내일 대선을 한다면 다시 이명박을 찍을 생각이다. 대통령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폭력 진압 장면을 보니 눈이 뒤집히더라. 이벤트업계에서 일하는데, 대책회의의 ‘이벤트 기획’은 국민의 분노한 마음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노인근(60·동대문 풍물시장 상인)

“이명박이 서울시장 할 때 청계천 상인에게 동대문 운동장으로 옮기면 세계적인 풍물시장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다 거짓말이었다. 우유 배달, 신문 배달하며 힘들게 살았다고 해서 우리 같은 서민 사정도 잘 알 줄 알았다. 우린 72시간이 지나도 텐트 안 걷을 거다.”



선안나(46·동화작가)

“물대포에 화가 나서 종로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경무계장이 받더라. 내가 국민을 어떻게 보기에 공격하느냐고 했더니 ‘하늘로 모시고 있다’고 했다. 내 귀에는 그 말이 느물느물하게 들렸다. 촛불 정국 해법은 딱 한 가지다. 바로 대통령의 하야 결단이다.”



정경섭(38·진보신당 마포당원)

“2년 전부터 채식을 한다. 조류독감 사건 때 동물을 살처분하는 동영상을 보고 나서부터다. 인간이 다른 생명을 너무 경시한다고 느꼈다. 이번 촛불시위를 계기로, 생명을 상품화하는 대량사육 시스템, 그 속에서 받는 동물의 고통에 대해 성찰해보았으면 좋겠다.”



이상관(광화문 네거리 편의점 매니저)

“6월1일에는 편의점 문을 잠시 잠근 적도 있다. 시위대의 진압을 피한 시민이 편의점으로 도망쳐 오니까, 일단 시민이 연행되는 건 막자는 생각에서였다. 더 돕고는 싶은데 우리도 종업원 처지라….”



정병민(사비를 털어 집회장에 빵과 커피 제공)

“더 준비하고 싶었는데 빵공장이 500개밖에 준비가 안 된다더라. 나도 중소기업 하는 사람인데, 이명박 정부 때문에 죽을 맛이다. 차라리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먹고살 텐데, 기업하기 좋은 나라니 뭐니 하면서 중소기업 다 죽이려 든다.”



박◯◯·홍◯◯(집회 커플)

“6월1일 새벽에 같이 물대포를 흠뻑 뒤집어쓰고, 언 몸 녹이려 순대국에 소주 한잔 하다가 마음이 통했다. 대통령이 맺어준 인연이긴 한데, 그 자리에서 내려오면 그때 두 배로 고맙다고 해야지.”



이경주(21·수험생)

“촛불시위대의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찍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엄연히 3권이 분립된 나라다. 시위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해서는 안 된다. 촛불시위 배후 세력도 조종을 멈추어야 한다.”



‘범이’(아고라 누리꾼)

“오늘은 아고라가 대학생들과 행동 통일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내가 연락책을 맡았다. 시위대 선두에 서보니, 대열 속에 있을 때와 달리 초조하고 책임감도 느껴진다. 아고라는 따로 조직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누리꾼의 모임이다. 가다가 다리 아프면 그냥 빠져버리는 사람도 많다.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런 게 아고라다.”



김선재(카이스트 기계공학과 05학번)

“이명박 때문에 내 사생활이 없어졌다. 뉴스 검색하랴, 학내 커뮤니티와 블로그에 글 쓰랴, 주말에는 집회 참석하러 서울 올라오랴, 밤마다 생중계 보랴 잠을 못 잔다.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는데 작업 걸 시간이 없다. 대통령님, 제 연애 사업 책임지세요.”



김다솜(금산 간디자유학교)

“지금 대학탐방 기간이라 서울에 왔는데, 그거보다는 민주주의 탐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여기 왔다. 선생님이 뭐라 안 그러냐고? 우리 선생님도 아마 여기 와 있을 텐데.”



노회찬(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

“집회는 사회의 긴장을 반영한다. 그러기에 얼마든지 양상이 변할 수 있다. 지금은 평화시위로 보이지만 물대포를 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언제까지 축제식으로 갈 것이라고 보장할 수 없다. 과거에는 결단을 내린 지휘부가 주도했다면, 지금은 일반 시민 전체가 지도부 구실을 한다. 시민이 물렁하긴 하지만 질기기는 훨씬 질길 것이다.”



양인창(36·LG전자 연구원)

“열 살, 일곱 살 난 두 딸과 같이 나왔다. 역사적인 현장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의외로 애들이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더라. 그런데 딸이 ‘이명박은 우리의 적이야’라고 말하는데 너무 심한 말을 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문제 말고도 너무 정직하지 못한 것 같다. 솔직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않으며 구차하게 감추려는 꼼수를 쓰는 것 같아 부끄럽고 안타깝다.”



사토 다이스케(일본 교도통신 기자)

“새벽 3시까지 집회 현장을 지켜보곤 한다. 한국 시민이 정치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걸 보고 놀랐다. 요즘 일본에서는 정치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처음 시위를 시작한 고등학생들이 과거 386세대의 아들·딸이라는 말을 들었다. 일본도 1960~1970년대 정치운동을 열심히 했던 ‘전공투 세대’가 있었는데, 왜 그들은 다음 세대에 정치의식을 전달하지 못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김◯◯(40대 초반·관광안내소 근무)

“외국 관광객과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시위,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그리고 대통령 이름 뒤에 ‘놈’이나 ‘새끼’를 쉽게 붙이는데,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욕은 자제했으면 한다. 듣기 거북하다. 개인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와도 별 문제 없다고 본다.”



스테파노 발렌티노(유로리포터 기자·이탈리아인)

“유럽 사람도 시위를 많이 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며칠 동안 한자리에 수만명이 모이는 것은 처음 본다. 영국에서 처음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이탈리아 내에서도 영국 소 수입 문제가 불거졌다. 이탈리아는 EU 회원국이라 독자적으로 수입 금지를 할 수 없었다. 이에 이탈리아 시민이 일어나 EU를 향해 자국의 검역주권을 지켜달라는 시위를 했다. 결국 이탈리아 정부는 EU 결정이 나오기 전에 독자적으로 영국 소 수입을 중단했다.”



최열(환경재단 대표)

“대통령이 국민의 목소리는 듣지 못하고, 한쪽 사람들로부터 한쪽 귀로만 편청한다. 정부는 기업이 할 수 없는 것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각 총사퇴만이 이명박 정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다.”



이승은(서울대 미대 4학년)

“기말고사 기간인데 어제 밤새고 나왔다. 총학생회 차원은 아니고 가까운 친구끼리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봤다. 깃발 빼앗긴 사람들에게는 깃발을 그려주고 또 ‘2MB’에게는 뇌가 없으면 그려드리려고 한다.”



진중권(진보신당 홍보대사)

“시민이 이 축제의 배후다. 시민이 지도하고, 주도하고 있다. 우리는 조용히 시민의 지도에 맡겨야 한다. 우리는 깃발 들고 조용히 구석에 앉아 쪼그리고 있다 돌아와야 한다. 촛불집회에서 대중은 옳다는 점을 배웠다.”



문광석(44·갤러리 매니저)

“독립문 근처 아파트에 산다. 시민이 청와대로 몰려가고 경찰이 물대포를 쏘던 날, 밤새 집 밖이 시끄러웠다. 새벽에 여름옷을 한 움큼 가지고 나가서 젖은 이들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촛불을 들었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은 애써 감추고, 촛불집회의 배후 운운하는 보수 언론의 보도 태도를 참기 어려웠다.”



문용식(49·‘아프리카’ 생중계 서비스 제공하는 나우콤 대표)

“4·19 이후 중·고등학생이 거리에 나오기는 처음인 것 같다. ‘다음 아고라’ 같은 토론방이나 ‘아프리카’ 같은 동영상 중계 사이트 등 뉴미디어가 120% 활용된 시위였다.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읽고 이를 통해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젊은 세대의 힘에 탄복하게 된다.”



이명선(31·전 ‘헤딩라인뉴스’ 앵커)

“소심한 시민으로 후미에서 촛불을 들다가 뭔가 마음이 울컥했다. 진보신당 당원은 아닌데, 진보신당 칼라TV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리포터도 하고, 가끔 조명도 든다(웃음). 1인 미디어가 기존 거대 언론보다 큰일을 하는 것을 거리에서 느낀다.”



◯◯◯(국정원 요원)

“시민혁명이다. 이토록 자발적인 시민의 참여는 없었다. 1987년에도 이토록 다양한 시민의 참여는 아니었다고 본다. 국민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는데 정부는 10년 전 시스템만 추억하고 있다.”



김다휘(10·초등학교 3학년)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네 살) 서울시청 앞 광장을 찾았는데, 아이가 그때 느낌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광장을 체험해보도록 경기도 죽전에서 여기까지 함께 올라왔다(옆에 있던 엄마의 말).”



심신(가수)

“다들 고생하는데 혼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촛불집회를 하다 사람들이 다쳤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그런데 나와 보니 다들 콘서트처럼 즐거워해서 마음이 놓인다. 국민이 가슴에 맺힌 게 많은 것 같은데 촛불집회를 계기로 풀어졌으면 좋겠다.”



김지훈(44·성균관대 연구교수)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을 못하고 있다. 지금은 설사 대통령이 맞다 해도 국민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 재협상하면 손해난다는 것을 국민이 모르지 않는다. 처음부터 협상이 잘못돼서 그런 것이니, 감수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더 가면 반미로 넘어간다. 대운하·의료보험 민영화 등도 이번에 다 털고 가야 민심을 달랠 수 있다.”



◯◯◯(청와대 행정관·대변인실 근무)

“여러 차례 촛불집회 현장에 가서 지켜보았다. 미니스커트 입고 하이힐 신은 여성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상황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의 생각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러나 재협상을 해서 우리가 원하는 걸 얻으려면 그보다 더 큰 것을 내주어야 한다. 그것이 더 나은 해결책인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손병휘(43·가수)

“시위대의 모습에서 낙관성과 해학을 느꼈다. 그 모습을 보고 며칠 전에 ‘삶에 감사해’라는 헌정곡을 작곡했다. 노래패 우리나라와 함께 그 노래를 녹음하고, 국민대책회의에 보내려 한다. 촛불문화제에 동참하는 사람 누구나 다운받을 수 있도록(그의 홈페이지 www.folkking.com 회원자료실에서도 다운받을 수 있다). 이번 촛불문화제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재영(22·동국대 풍물패 회장)

“단과대 풍물패가 연합해 15명이 같이 나왔다. 행진도 같이 하고 쉬는 기간에 풍물로 흥을 돋운다. 국민 마음을 정부가 알았으면 좋겠다.”



지정남(67·전 외신기자협회장)

“아들이 경찰에게 얻어맞고 연행되었다. 21년 전에 내가 6월 항쟁을 취재하다 얻어맞았던 바로 그 자리에서 아들이 다시 맞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그때 고생을 했던 덕분에 조국의 민주화가 앞당겨졌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모든 것이 다시 과거로 되돌려지는 듯하다. 사무실이 코리아나 호텔에 있어 매일 지켜보는데, 결코 물러서지 않으려는 시민의 의지가 확고한 것 같다. 나이 많은 세대가 실수로, 사기꾼에게 속아서 잘못 선택해놓은 삶을 젊은 세대가 다시 제대로 되돌리느라 고생을 하고 있다. 한때 절망하다가 젊은이들을 보니까 다시 희망이 보인다.”



신석호(37·진보신당 이동상황실원)

“변호사도 아닌데, 요즘 ‘신석호 변호사’라 불린다(웃음). 시위 도중 연행이 되면 도움을 요청하라고 휴대전화 번호를 인터넷에 올렸는데, 아고라에 그 글이 퍼져 ‘변호사’라 불리게 되었다. 하루에 수십 통씩 전화를 받는다. 시위 중 연행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진보신당 24시간 상황실로 연락해달라.(02-6004-2000)”



서정민갑(36·대중음악 평론가)

“음악인은 음악으로 촛불문화제에 동참했다. 교보문고 인근에서 ‘두번째달 바드’와 함께 소규모 거리 공연을 했다. 그리고 문화연대와 함께 매일 6시간씩 서울광장 공연을 기획했다. 허클베리핀 등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도 흔쾌히 참여했다. 이게 문화 행동이다. 촛불은 축제다.”



박준호(오마이뉴스 시민기자)

“6월1일 새벽 전경에게 맞고 연행당한 뒤 지금까지도 늑골이 좋지 않다. 경찰에 붙잡혀 대치선 뒤쪽으로 내동댕이쳐졌는데, 그때 기자들이 빠르게 달려와줘서 더 맞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자리에 시민으로 올지 기자의 마음가짐으로 올지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은 기록하기보다는 참여할 때인 것 같다.”



윤덕찬(35·경희국제안보통상법연구센터 책임연구원)

“6월2일 새벽에 전경이 휘두르는 방패에 맞아 코 뼈가 내려앉았다.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왔고, 5일 수술을 받았다. 난 학교 다닐 때 시위한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날 광화문에도 혼자 갔다. 흥분한 시위대를 진정시키고 있었는데, 전경 앞에 서 있었다는 이유로 맞았다. 나를 때린 전경 한 명이 나쁜 게 아니라, 그런 폭력을 행사하도록 방치하고 유도한 간부들이 책임져야 한다.” (윤덕찬씨는 <시사IN> 전문가 필자다. 그는 6월8일 현재 강북삼성병원에 입원 중이다. 당시 현장 사진과 영상이 찍혀 있음에도, 경찰은 윤덕찬씨에게 사과하거나 윤씨와 접촉하지 않고 있다.)



이호성(55·연극배우)

“이명박이 하는 짓을 이제 국민이 다 안다. 우리 국민이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 이 싸움은 장기전이다. 지구전이다. 그들은 우리가 지치기를 바란다. ‘저 냄비들, 저 엽전들’ 하면서 분노가 잦아들기만을 바란다. 지쳐서는 안 된다. 술에 취해서도 안 된다. 맨정신으로 끝까지 버텨야 한다.”



인주완(6)·인주민(5) 형제

“신기해요.” (아빠는 무엇인가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형제는 아빠의 말보다 서울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과 거기서 벌어지는 다양한 퍼포먼스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단군후손(46·학원강사) 권태로운 창(48·학원강사)

“5월22일 둘이 처음 만나 사흘 동안 준비를 해서 ‘다음 아고라’를 통해 모인 사람들과 5월24일 ‘가두시위’를 시작했다. 촛불만 들고 있어서는 답이 안 나온다고 생각했다. 여고생의 바통을 이어받아 우리 같은 386이 새로운 투쟁을 전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두시위’의 지도부는 아니다. 우리는 지도부로 뽑힌 적도, 지도부를 자처한 적도 없다. 그러나 이명박이 말하는 촛불집회의 배후가 있다면, 우리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윤신영(43·CF 감독)

“촛불시위에 여덟 번째 참여했다. 그동안 CF와 뮤직비디오 수백 편을 찍었다. 영상으로 40분짜리 ‘이명박 시리즈’를 만들면 재미있겠다. 그런데 캐스팅이 쉬우려나? 안 되면 미국의 미키마우스 탈을 씌워 촬영해야겠다(웃음). 더도 말고 딱 100일 동안만 상영하고 싶다.”



송민영(34·회사원) 이경희(33)

“거의 매일 출근부 찍듯 촛불집회에 나온다. 처음에는 혼자서 왔는데, 이곳이 마치 축제 현장처럼 흥겨워서 여자친구에게 조심스럽게 함께 가자고 권했다. 지금은 함께 촛불을 든 채 뜻깊은 데이트를 즐긴다.”



김의성(44·영화배우·드라마 제작자)

“나를 비롯한 386세대에게 이번 촛불집회는 1987년의 기억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때 우리에게는 시위가 얼마나 잘 조직되었느냐, 어떻게 하나의 목소리를 내느냐, 이런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번 시위는 전혀 조직되지 않고,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힘있게 진행 중이다. 이번 시위는 이명박 정부의 몰염치와 유치함에 대한 ‘세련된 짜증’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평화로운 폭동’이다.”



◯◯◯(<시사IN> 거리편집국을 불쑥 찾은 시민)

“<시사IN> 기자들이 촛불집회장에 거리편집국을 꾸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블로그에 ‘먹을 것 사오지 말라’고 썼더라. 그래서 ‘주먹밥을 싸 가지고’ 왔다.



이기동(54·북파공작원·가명)

“내가 분이 터지는 게 뭐냐면 지금 봐라. 여기 집회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민주화’를 요구한다. 저런 거는 정치하는 사람들끼리의 싸움이다. 우리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느냐? 자기들이 어떤 바탕 위에서 살고 있는데 말이지. 저 사람들이 우리를 알기나 하냐고…. 그러니 쓸 데 없는 짓거리 하지 마라.”



윤휘탁(49·한경대 교양학부 교수)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현장 분위기, 사람들 의견을 직접 듣고 싶어 나왔다. 진보 정권 10년을 거쳐 보수 정권이 들어섰는데, 보수는 보수대로 해야 할 몫이 있다. 정권 초부터 신뢰를 잃어 할 일도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



백창기(50·참역사문화연구회 집행관)

“숭례문 화재 현장에서 100일 기도를 지내고, 그 한이 서린 촛불을 들고 나왔다. 나라에 큰일이 터졌는데 유야무야하려다 병이 깊어졌다. 호랑이는 쥐를 잡지 못하고 독수리는 벌레를 잡지 못한다는데, 여기 와서 보니 고양이 같은 아이들이 쥐를 잡고, 참새만 같던 아줌마들이 벌레를 잡고 있다. 그 뒤에 호랑이와 독수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영민(36·‘다함께’ 회원)

“미국 쇠고기 수입, 전쟁, 민영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단체 회원이다. <맞불>이라는 주간지를 800원에 판다. 평소 시민의 진보 매체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시민 호응이 크다.”



◯◯◯(현역 군인·26)

“쉬는 날이라 집회 현장에 나왔다. 이번이 두 번째다. ‘집회현장 배회 금지’라는 부대 지시가 있어서 다니기가 조심스럽다. 이곳에 나온 사람들이 친미와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에 반대하는지는 의문이지만, 쇠고기 문제를 자기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로 보는 것은 분명하다. 보수 세력이 추진하려는 정책 가운데 문제 되는 것이 쇠고기만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진보 세력의 영향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현주(56·심리상담사)

“뉴스를 볼 때마다 ‘우리 일인데 방관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6월7일 처음 현장을 찾았다. 끌고 오다시피 한 남편(장현호·57)이 나보다 더 오기를 잘했다고 한다. 이 문제는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저절로 해결된다. 부동산으로 쉽게 돈 번 사람이 많아지고 빈부 격차가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도 정부가 서민의 삶과 동떨어진 정책을 내놓으니 청계광장에 이렇게 사람이 몰리는 것이다.”



이종기(35·회사원)

“시위 문화가 정말 달라졌다. 그런데 경찰의 진압 양상은 예전과 똑같다. 지난 10년 동안 탈권위와 자유를 만끽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정부만 모르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이 과거 패러다임이어서 성과를 내기도 어려울뿐더러 한국 사회를 후진시킬까 봐 걱정된다.”



강정숙(전·의경 부모모임 대표)

“우리 아이들이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는 걸 원치 않는다. 나도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전·의경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군인이다.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이 국민의 권리를 막는 것은 아니다.”



김영국(55·의류사업가)

“1980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2년 전 귀국해 강남에서 옷 장사를 하는데,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되어 며칠 전 가게문을 닫았다. 쇠고기 문제는 정부가 미국과 재협상해야 한다. 그것도 30개월 미만이 아니라 일본처럼 20개월 미만으로 해야 한다. 협상이란 양쪽이 조금씩 양보하는 건데 우리가 이미 많은 것을 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요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미국도 한국을 너무 몰아붙이면 좋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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