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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과학과 괴담 / 이범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8-06-11 16: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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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753

제목

[야!한국사회] 과학과 괴담 / 이범

글쓴이

구현회 [가입일자 : 2013-04-27]
내용



학부에서 생물학을, 대학원에서 과학사·과학철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황우석 사건에 이어 또다시 생물학을 소재로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관한 국민적 체험실습(?)이 생중계되는 상황이 너무나 신기하다. 며칠 전에는 전여옥 의원이 칼 세이건을 인용하며 ‘악령’ 운운하길래 예전에 과학과 비과학 사이의 ‘구획’(demarcation)이라는 주제에 골몰하며 정리했던 자료를 다시 들여다봤다. 말하자면 ‘과학’과 ‘괴담’을 구분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의 엠엠(MM)형 유전자는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명제는 과학인가, 괴담인가? 한마디로 ‘대략 난감’이다. 정부 쪽 주장과는 반대로 엠엠형이 취약하다는 견해가 상당히 우세하기는 하지만, 단정할 수준인지는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과학자들이 더 많이 지지하는 가설이 자연과 더 합치한다고 잠정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 마치 새가 더 많이 앉은 숲에 더 많은 열매가 열렸다고 추정하는 것처럼. 과학자들은 나름의 판단에 따라 숲의 여기저기 앉아 지저귀고 있을 뿐이다. 어떤 과학자가 청와대 입맛에 딱 맞는 자리에 앉아 있었고, 조·중·동에 대서특필이 되었다고 해서 그가 곡학아세한다고 의심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문제삼아야 할 것은 과학자 개개인의 양심이나 분별력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견해 분포도’가 시민들에게 정확히 전달되느냐는 것이다.

전 의원은 ‘엄청나게 낮은 확률’이라는 과학적 진리(?)가 부정당하는 게 못마땅한 모양이다. 하지만 신뢰성 있는 확률 계산이 가능하기나 할까? 소와 사람에서의 발병률, 감염조건, 잠복기, 위험부위 범위 등에 대해 과학계가 가진 결론은 상당히 모호하고 잠정적이다. 정상 프리온 단백질의 평소 기능이 뭔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확률을 계산한들 그 타당성을 두고 과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할 리 만무하다. 이 엄청난 첨단과학 시대에 괴담(?)이 진정되지 않는 것은 광우병이 바로 이 ‘첨단’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선 모든 것이 악령이고, 칼 세이건의 푸닥거리도 소용이 없다.

장차 광우병 연구가 진전되어 상당히 정확히 확률이 계산된다면? 그렇다 해도 국민들이 쇠고기를 먹게 하려면 최소한 두 고개를 넘어야 한다. 첫번째는 확률에 동반되는 착시현상. 예컨대 1년 동안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때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1천만분의 1이라면 엄청나게 낮은 것 같지만, 우리나라 인구를 고려하면 10년에 50명 가까이 광우병으로 죽는다는 셈이 나온다.(편의상 잠복기가 없고 전국민이 먹는다고 가정) ‘연간 사망률 1천만분의 1’과 ‘10년간 국민 중 50명이 죽는다’는 동전의 양면이지만 어감은 크게 다르다.

두번째는 흄과 러셀이 지적한 것처럼 ‘사실명제로부터 당위명제를 논리적으로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 10년 동안 50명이 죽을 확률이 과학적 진리라고 치자. 이를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보아 수입을 허용해야 하는가, 지나치게 높은 위험으로 봐서 불허해야 하는가? 가치관에 따라 상반된 결론이 내려질 터인데, 특히 국가의 책무에 관한 견해차로 말미암아 이것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다.

시민들은 이미 과학자들의 의견합치 수준이 정부와 조·중·동의 선전에 비해 현저히 낮음을 확인했다. 과학적 지식이 확실한 경우에도 위험을 수용할지 여부는 온전히 시민적 합의의 몫인데, 하물며 과학적 지식이 불확실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것을 악령도, 반(反)과학도 아닌 ‘상식’이라고 부른다.


이범 곰TV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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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참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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