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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84학번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간은 수업을 거의 안했죠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8-05-20 14: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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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068

제목

저는 84학번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간은 수업을 거의 안했죠

글쓴이

오세영 [가입일자 : ]
내용
학교 신문에 84년도 평균 2.4일에 한 번의 시위가 있었다는 기사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요즘의 평화로운 시각으로 보면 신기하게 생각할 가슴 아픈 추억들이 많았죠.



- 첫 등교에 복적된 선배들의 시위와 연행을 지켜봤습니다. 이 때만 해도 '빨갱이 자식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 구내 매점에서 병 음료가 사라지고 그 비싼 알루미늄 캔 음료만 판매하더군요

- 학교 내 모든 보도블럭이 구청의 지원으로 아스팔트로 전부 교체되고, 학교 내 동산 조경공사가 시작되어 모든 돌들이 사라졌습니다

- 건물 내 모든 소화전(호스)이 비워집니다. 학생들이 꺼내서 최루탄을 꺼버렸기 때문입니다

- 김 영삼선생과 김 대중 선생이 해금되었다는 소식이 강의실에 속보로 전달되고 우리는 모두 만세를 불렀습니다. 학교 내에 설치되었던 안기부 분소도 철수한다고 하더군요. 교내에 안기부가 있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 학교 담을 서너 번 무너뜨린 다음에는 해머로 쳐도 안 부숴지는 초완벽 내진설계가 된 학교 담이 세워졌습니다. 제가 정말로 해머로 쳐봤습니다^^;

- 드디어 꽃병(화염병)이 등장하고 최루탄에 발목이 부러지는 동료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강의실까지 전경이 달려들어 연행해갔습니다.

- 학도 호국단 축제 때에 연예인 동원했다가 화염병들이 무대로 날아가더군요. 그 이후 축제는 대동제라는 이름으로 (제 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미있고 신나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 대통령 선거 때문에 시험을 거부하겠다고 대표로 교수님에게 말했다가 성적이 B가 나왔습니다. 절대로 실력이 아닙니다^^;



- 중간 중간 너무 많아서 훌쩍 건너 뛰어서



- 교수님들이 양심선언하며 학생들을 선도해주셨고,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인 학생들을 카톨릭 신자들이 먹이며 보살폈었습니다. 학살하던 전 두환도 명동성당만은 못 건들이더군요

- 6월 항쟁에서 할아버지들의 엄호를 처음으로 받아 봤습니다. 음료수를 냉장고에서 꺼내주시는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샐러리맨 선배(넥타이 부대라고 했죠)들의 격려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전경들을 구석에 몰아 넣고 시위를 구경시켰습니다.

- 이 한열이 혼수상태가 된 후에 동료들끼리 처음으로 사람을 다치게 만들겠다고 군복입고 나섰습니다(저는 삽이었고, 곡갱이를 든 사람까지...). 복학생들의 살기 띤 모습에 전경들이 교문을 봉쇄하지 못했습니다.

- 노 태우의 항복 선언을 받아 냈고, 백 기완선생의 유세를 쫓아 다녔습니다.



저는 절대로 이념투사도 아니었고 그냥 약간 더 적극적인 대학생이었을 뿐인데도 이 정도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 대학생이라고 하면 "주사파의 사주를 받아", "적군파식으로"라는 말도 안 되는 비난은 받았어도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한다는 일종의 용기는 있었죠.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대학생에게 "너도 이번 주말에는 청계천 나가보지?"라고 말했다가 "동방신기 팬클럽 여자애들이 소고기 수입 막아줘요"라는 대답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나서 헛소리 좀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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