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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 단상]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뒤에 남은 사람들...
자유게시판 > 상세보기 | 2008-05-14 12:30:46
추천수 0
조회수   833

제목

[화장장 단상]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뒤에 남은 사람들...

글쓴이

이문준 [가입일자 : 2002-08-07]
내용
요즘 날씨, 정말 좋으네요.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눈부시게 무르익은 봄날입니다.

아버지를 모신 엊그제 역시, 화창하기 그지없는 '부처님 오신 날'이었습니다.

비도 피해간다는 4월 초파일에 맞춰 영혼의 안식장소를 찾아가신 아버지는 아마도

스스로 길일을 택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친구녀석이 이끌어준 선도차와 친지들을 태운 운구버스 한 대로 구성된 단출한 장례

행렬은 막힘없이 부산 외곽의 화장장으로 들어섰고, 이윽고 짧은 운구를 거쳐 화장

접수를 마쳤습니다. 유족들은 이제 넓은 대기실로 이동해 각자 번호가 매겨진

모니터 앞에서 고인의 입관을 지켜보는거지요.



이윽고 모니터를 통해 화장로로 입관되는 장면이 나오는 짧은 순간, 그 앞에서

도열해섰던 유족들은 고인이 남긴 삶의 흔적이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을 애통해하는

의례적인 한 바탕 오열로 영원한 이별을 표합니다. 그런 다음에 유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식당으로 가거나 밖으로 나가 따사로운 태양 아래서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스스로 살아있음을 확인합니다.



그것도 심드렁해지고나면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 앉거나 서서 화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새로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수많은 유족들을 지켜보며 영정속에 남은

고인들의 삶과 죽음을 멋대로 그려봅니다. 각자의 번호 앞에 모셔진 영정과

유족들의 표정을 살펴보면서 이제는 가슴속 깊숙히 가라앉고 있는 슬픔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시간이 되는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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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장 대기실의 이런저런 장면들을 훑어보던 제 눈에 가슴 먹먹해지는 한 팀의

유족들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13번 코너 근처에 앉아있던 일단의 유족들 모습이

각별했기 때문입니다. 상주임을 표시하는 두 줄짜리 완장을 찬 것은 고작 열살

정도나 되었을 성 싶은 남자아이였고, 그 뒤에는 그 아이의 누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역시 검정 상복차림을 하고 앉아있었습니다. 한 두 살이나 차이가 날까 싶은

고만고만한 애들 둘은 아무런 근심거리도 없이 곱게 자란듯 말끔하고 이쁜 얼굴들

이었습니다.



저렇게도 이쁜 어린 애들 둘을 졸졸이 남겨두고 어찌 눈이 감겼을까...

치밀어오르는 덧없는 서글픔으로 확인한 13번 코너의 영정 속에는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쓸어넘긴 고운 얼굴을 한 30대 여자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의 그녀는 살아있던 눈부신 어느 한 순간 그대로 영원히

정지된 채로 있었습니다.



그 남자아이는, 역시 검정 상복을 입었지만 아무런 완장도 없이 자리에 앉아 굳은

표정으로 모니터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자신과는 너무도 많이 닮은 서른살

정도의 남자 옆에 꼭 붙어 앉아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그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 과연 자신의 삶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오늘의 이 행사가 앞으로 두고두고 어떤 아픔으로 확대재생될 것인지 아무 것도

모르는듯, 자그마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또래의 여느 아이들처럼 무척이나 장난기도 많을 법 했지만, 무언가 모를

음울하고 경직된 화장장의 분위기에 동조된듯 장난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나름 천수를 다하고 가신 분들보다는 젊은 사람의 죽음은 유족이나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가슴 속에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될 크나큰 슬픔과

상실감을 억누르고 있을 유족들에게 괜한 호기심을 보이는 것이 무슨 큰 죄를 짓는

것 같기도 해 조심스러웠지만, 굳게 입을 닫은 검정뿔테의 아주 잘생긴 젊은이

근처에 앉아 조용히 물어봤습니다.



상복을 갖춰입은 어린아이 두 명을 가리키면서 저렇게 남매 둘을 두고가셨나보죠...

했더니, 그는 그렇다고만 대답하고 다시 굳게 입을 다물더군요.

제가 그 아이들에게 남다른 관심이 쏠린 것은 그 아이들에게서 수십년 전의 제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5학년이라는 그 아이들과 똑같은 나이에

저 역시 어머니를 그렇게 화장장에서 보냈기 때문입니다.

괜시리 마음이 아파져 그 아이들 앞에 놓여진, 엄마 없이 살아가야 할 거친 세월의

파도를 생각하고는 새삼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남자아이의 말에 따르면, 그 남자는 엄마 동생이라더군요. 아빠는 멀찌감치 뒤쪽

구석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더군요. 조심스레 그 아이에게

악수를 청하고 말했습니다.



"상주, 열심히 살아야 해."

"네" 하는 짧은 답변으로 그 아이와의 짧은 인연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그 아이들을 포함한 유족들은 화장이 끝나 유골을 수습하고

떠났습니다. 마음속으로 그 두 어린 유자녀들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이 세상을

헤쳐나가기를 기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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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상주들을 두고간 젊은 고인이 지나간 13번 자리에 새로 선 유족들은 고작

다섯 명도 안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상주임을 표시하는 완장마저

없이 망연한 슬픔에 잠겨 화장로에 관이 들어갈 때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분이

오열끝에 쓰러지기까지 하더군요.

영정에는 환하게 웃는 젊은 아가씨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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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한줌 남은 유골의 모습으로 나왔을 때 더 이상 슬픔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화장가마 속으로 들어가시던 관속 고인의 모습에서 가늠할 수 있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서서 전혀 다른 세계로 가버린, 완전하게 소각된 고작 한줌 재로

변한 모습이 너무 생경해 보였기 때문일까요. 아버지는 이제 살아있는 생물체의

모습을 한 저와는 완벽하게 분류가 달라진 '무기물 잔해'로 화했기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어린아이 둘을 남기고 간 이름모를 고인과, 짧은 삶의 흔적마저

남기지도 않고, 알 수 없는 어떤 기막힌 사연을 남긴 채 훌쩍 가버린 젊은 여자의

마지막 순간을 연이어 목도한 끝이라 감정이 무뎌진 때문일까요...





사는 것과 죽는 것.... 정말로 다른 세계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항시 죽음을 세계를 등에 지고 다니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생각하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별 것 아닌 일이기도 하겠지만, 죽은 사람들을

모시고 난 다음에도 남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울고, 웃으며 살아갑니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그 다음은 없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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