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밤
-최승호-
창호지로 엷은 꽃향기 스며들고
그리움의 푸른 늑대가 산봉우리를 넘어간다.
늘 보던 그 달이 지겨운데
오늘은 동산에 분홍색 달이 떴으면
바다두루미가 달을 물고 날아 왔으면
할 일 없는 봄밤에
마음은 멀리멀리 천리 밖 허공을 날고
의지할 데가 없어 다시 마을을 기웃거린다.
어느 집 핼쓱한 병자가
육신이 나른한 꽃향기에 취해
아픔도 없이 조용히 죽어가나 보다.
아름다운 용모의
귀신들이 우두커니 꽃나무 그늘에 서서
저승에도 못가는 찬 기운의 한숨을 쉬고
인간 축에도 못끼는 서러운 낯짝으로
누가 좀 따뜻이 나를 대해 줬으면
하고 은근히 기다리는 봄밤
때에 젖은 묵은 솜뭉치처럼
짓눌린 魂들을 구겨 담은 채
저승 열차는 내 두개골 속을 지나간다.
*문틈으로 베란다에 놓아둔 난초꽃향기가 스며드는군요.
문득 전에 읽은 이시가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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