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페이지로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즐겨찾기추가
로그인 회원가입 | 아이디찾기 | 비밀번호찾기 | 장바구니 모바일모드
홈으로 와싸다닷컴 AV갤러리 상세보기

트위터로 보내기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남향의 마음
AV갤러리 > 상세보기 | 2007-12-26 15:27:21
추천수 4
조회수   3,489

제목

남향의 마음

글쓴이

현재덕 [가입일자 : ]
내용


이사온 새 집은 남향인데도 햇볕이 드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22층 아파트 중 3층이라 앞과 옆 동에 해가 가려서다. 겨울이라 낮게 뜨는 해가 더욱 많이 가려지는 탓도 있다. 이사가 프리젠테이션 준비 기간과 겹친 바람에 지난 한 달여 동안 새 집과 친해질 틈이 없었는데 PT가 끝나고 조금 느긋하게 집에 있는 시간이 생기자 몇 시부터 몇 시쯤까지 볕이 드는지, 방의 어디부터 어디까지 그 기분좋은 온기가 전해지는지 대강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 며칠은 겨울햇살에 중독된 고양이처럼 그 온기를 따라다니며 스륵스륵 뒹굴고 있다. 3층이지만 남향이어서 다행이야 라고 오물오물 중얼거리며.



몇 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늘 거실을 차지해 왔던 오디오 기기들을 이번엔 안방에 들여놓았다. 길고 긴 이유와 설명이 책 반 권쯤의 분량으로 따라붙을 결정이지만, 아주 짧고 거칠게 요약하자면 '더 더 나를 위해 살고 싶어서'다. 이렇게 말하면 바로 비난받을 것을 안다. 지금까지보다 얼마나 더 자신을 위해 살려고? 라고. 아아, 따지지 말아 주시라. 나라는 사람 충분히 이기적이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인 것 잘 알지만 이건 그 얘기가 아니니까.



보통, 사람들은 왜 거실에 오디오기기를 놓을까? 모두 모여 한자리에서 보는 TV야 거실에 놓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음악은, 한자리에 모여 같은 곡을 동시에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연주회나 감상회가 아닌 다음에야 취향도 다르고 감상의 호흡도 다른 복수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사이좋게 음악을 듣는 상황이라는 건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여럿이 함께가 아니라면, 좋다, 혼자 거실을 차지하고 앉아 한시간쯤 교향곡 4악장을 다 듣는 사람을 상상해보자, 가족들 사이에서 두려운 가장으로 군림하는 완고한 가부장제의 화신이나, 다들 벌벌 떨며 대접하는 손 귀한 집안의 3대독자, 혹은 공주병 걸린 무남독녀쯤이 떠오른다. 요는, 의외로 거실이란 음악을 듣기에 적당한 공간이 아니라는 거다. 물론 기기의 설치나 음향 조건 등에서야 거실이 유리한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거실에 오디오기기를 놓는 건 아마 이런 몇가지 이유에서일 거다. 일단, 가장 넓다. 내밀한 공간으로 여겨지는 안방과 달리 거실은 다분히 공용의 공간이다. 중요한 기기인 오디오는 공용의 공간에 놓는 게 맞다. 그리고 거실 중앙에 놓아야 소중한 기기가 잘 보인다. 잘 드러난다- 정도.



그런데 이미 말한 것처럼 '공용'이란 실은 음악감상의 본질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니 남는 건 '넓이'와 '보임'인데, 그 '넓이'와 '보임'이야 말로 실은 '더 나를 위하는' 것과 반대의 지향을 상징하는 것이다. '넓은 공간'이나 '넓게 자리를 차지하는 배치'는 이미 복수의 사람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보임'이라고 할 때 그 보임의 대상은 기기의 주인인 '나'가 아니라 다른 사람, 대개는 손님이거나 구경온 다른 오디오파일이거나 기껏해야 별로 나의 음악적 기호에 큰 관심이 없을 가족일 것이다. 즉, 거실의 오디오는 내가 음악을 듣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기 보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나누어지고, 부러움이나 우쭐거림 그 둘 중 한쪽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게 아닐까- 라고 나는 갑자기 의심하게 되었다. 이번 이사를 앞두고, 혹은 그 얼마쯤 전부터.



추측이 맞고 틀리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정말로 내가 좀 더 나를 위해 살게 되었구나 하고 실감한다는 거다. 잠이 덜 깬 아침에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마지막 악장 금관의 으르렁거리는 포효가 끝날 때까지 다 듣느라 회사에 두시간이나 지각을 하기도 했고, 메인 앰프가 펄펄 끓거나 말거나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브룩크너를 틀어놓고 자기도 했고, 더 더 침대시트가 따뜻한 쪽으로 원을 그리며 누운 방향을 바꾸면서 쳇 베이커의 라이브를 2CD 연속 클리어 하기도 했으니.



멋대로 지어내자면, 이건 '남향의 마음으로 사는 것' 쯤이 될까. 겨우 앰프와 CD플레이어, 턴테이블과 스피커 한 조를 침대 앞으로 옮겨 놓은 것만으로 이런 멋진 수식이 어울리는 생활이 가능해지는 건, 그만큼 고되고 비루한 우리의 삶을, 그 실재를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이 소박하고 사소한 '남향을 좇는' 의지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근사하고 대견하니.



검정에 가까운 진한 마루를 깔고, 어떤 각도에서는 노랑과 갈대색으로 어떤 각도에서는 올리브그린으로 보이는 가벽을 만들어 그 앞에 스피커를 세우고, 수준기로 세심하게 재어가며 설치한 보드 위에 올려 놓은 AD플레이어의 전원을 켠다. 턴테이블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곧 플래터의 운동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정확한 회전에 이르고, 소리골의 먼지들이 틱-틱- 연속되는 정다운 소음을 낸다. 그리고 첫번째 음표가 바늘의 끝에 닿으면, 아아... 나는 족히 한 뼘은 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삶에 가까워져버리는 거다.





추천스크랩소스보기 목록
이성국 2007-12-26 15:29:48
답글

아담하고 참 좋아 보이는 공간같습니다. 그런데 항상 음악감상하시면서 주무실 것 같습니다..^^;;

jundori100@hanafos.com 2007-12-26 16:40:21
답글

반갑습니다. <br />
현카피님, 여기서 뵙게 되는군요. 저는 보익에서 거의 ROM족이라 모르실겁니다.<br />
린과 마크 그리고 골드문트는 여전히 깔끔히 정돈이 되어있군요. <br />
이곳에서 자주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성택 2007-12-26 18:19:18
답글

실내분위기 참 좋습니다..<br />
글도 잘 쓰시네요...^^ 글 잘쓰는 사람을 제가 부러워해서요..

김대선 2007-12-26 18:23:47
답글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 공감이 되네요.

박문배 2007-12-26 18:28:28
답글

안마기와 침대의 위치가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br />
저도 카펫만 깔지 않았다면 커피향이 풍기는듯한 거실바닥을 깔았었을텐데...<br />
귓볼을 핥아 주는 감미로운 소릿결이 보이는군요 ^-^<br />

이정호 2007-12-26 18:49:22
답글

침대가 흡음제 역할을 제대로 하겠네요. ^^<br />
마지막 문구가 정말 아름답습니다. 항상 즐거운 음악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심진태 2007-12-26 19:38:04
답글

사진과 글 분위기가 썩 잘어울립니다.

홍상현 2007-12-26 22:05:42
답글

방안의 모든게 단정/깔끔합니다. 오너분의 성격과 감각은 굳이 말씀 안하셔도 바로 감지가 되는군요. <br />
오디오도는 둘째치고 에어컨이 아주 탐나는군요. ^^ 침대이불 또한... <br />
거실은 "공용"의 공간이다... 저도 제 방구석에서 혼자 진공관 불지피고 음악의 환각세상으로 빠져 듭니다. <br />
<br />
멋진 사진과 글...추천한방 누르고 갑니다.

이성민 2007-12-26 22:14:35
답글

고급스럽고 디자인측면에서 참 깔끔하네요. 이쁨니다^^<br />
음악을사랑하는맘이 훤히 보이는듯합니다. 밤새 음악틀고 어찌잘까요;;

이승면 2007-12-27 13:05:11
답글

저도 거실에 기천만원짜리 거의 장식용 입니다.<br />
<br />
가족들 때문에 들을수가 없습니다.<br />
<br />
안방의 50만원 짜리 오디오가 사용시간으로 봤을때 95% 입니다.<br />
<br />
도대체 거실의 시스템은 왜있는지 모르겠군요...

cobra12@nate.com 2007-12-27 21:03:19
답글

딴지거는 말은 아닙니다만 풍수학적으로는 저렇게 침실에 기계를 배치를 하면 마치 기계가 그방안의<br />
<br />
주인되는 형상이라서 안좋습니다 가능하면 침실에는 침구외에는 아무것도 놓아주지 않는게 젤 좋습니다

김동규 2007-12-31 10:32:36
답글

너무 멋진 음악감상용 침실이네요. 내년에 이사가면 벤치마킹해야겠습니다. ^^;

  • 광고문의 결제관련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