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씨어터 입문 3년만에 대대적인 업글을 단행했습니다. 웬만하면 마루를 넓게 쓰려고 북쉘프로 만족하려 했지만 자꾸자꾸 귀가 트이는 걸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국 프론트는 야마하 북쉘프 610에서 B&W 톨보이 803S로, 앰프는 야마하 540에서 소니 TA-DA 9000ES로 갈아탔습니다.
이제 만 하루 지났습니다만, "야하, 이런 세계가!" 하면서 감탄에 또 감탄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A/V에 입문할 때 '나중에 기회가 되면 B&W 한 번 들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몇 년만에 품에 안고 보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이 넘은 먼저 디자인이 너무 맘에 듭니다. 유선형 몸통은 물론이거나와 꼭대기의 트위터 좀 보세요. 이뻐 죽겠습니다. 식구들도 모두 맘에 들어합니다.
이 넘의 진짜 매력은 역시 소리겠지요. 제대로 에이징이 되려면 한 3개월은 지나야겠지만, 일단 처음부터 맘에 쏙 듭니다. 북쉘프 때 듣던 소리는 다소 인공(?) 냄새가 났는데 B&W는 그야말로 가감없는 음색에다 너무도 맑고 투명해서 들을 때마다 미칠 지경입니다. 한마디로 이름값 합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제 귀엔 안성마춤입니다.
소니 9000ES는 참 사연이 많습니다. '총알이 모이면 사야지'하고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막상 사려고 보니 물건이 없는 겁니다. 인터넷샵, 용산 전자랜드, 지방샵까지 발로 전화로 뒤졌는데 얼마 전부터 자취를 감추었답니다. 아마 와싸다 공구가 거의 마지막 물량이었을 겁니다. 할 수 없이 중고를 알아봤고, 몇몇 유저분들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게 운명일까요? 전국에 딱 하나 남은 전시품을 발견한 겁니다. 한 2년 매장 구석에 묵묵히 먼지 쓰고 있던 '거진 신품'을 찾았지요. 매장 직원과 책임자를 줄기차게 설득해서 정말 아주 싸게 손에 넣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분들께 감사드려요. 아무튼 박스무게가 33kg나 되는 이 넘을 들고 오는데도 어찌나 신이 나던지요.
자, 비록 만 하루지만 사용소감을 말씀드릴게요. 설레는 맘으로 <글래디에이터> 게르마니아 전투 씬을 틀었습니다. 북쉘프로 들을 때는 "화살이 엄청 날아온다" 정도였는데, 이젠 "화살이 쏟아진다"는 느낌이 팍 들었습니다. 그냥 쏟아지는게 아니라 "여기저기 쉭쉭 쉐익..." 화살 하나하나마다의 속도감이랄까, '날아오는 순서와 갯수'까지 셀 수 있을 것 같은 섬세함이 소름끼치도록 느껴졌습니다. 또 전에는 이 장면에서'역시 효과음 하나는 잘 만든 영화야" 했는데 이젠 "와우 정말 섬뜩하다" 할 정도로 사실감이 온 몸에 와닿으며 듣는 이를 압도합니다.
이런 느낌은 클래식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에는 들리지 않던 여러 소리가 분리되어 들리는 겁니다. 각 음역대마다 명쾌한 해석이 내려지면서도 전체적으로 조화가 훌륭합니다. 또 희한한 건, 전에는 영화를 볼 때나 음악을 들을 때 내가 서너평 마루에 있었다면, 이젠 무지 넓은 곳에서 막힘 없고 거침없는 소리를 직접 듣는 것 같습니다. 탁구장에 있다가 농구장(또는 축구장)에 간 느낌 종류의....
업글 전에 분리형 소리를 아주 잠깐 들어보긴 했습니다만, 현 시스템으로 2채널을 들어도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제 귀가 고급 분리형 시스템까지는 요구하지 않아 정말정말 다행입니다.
소리의 깊이, 넓이가 달라지니 감동도 달라집니다. 장사익의 '찔레꽃'을 걸었습니다. 아하! 곡 마지막 부분의 절절한 절규가 제 앞에서 피어오릅니다.
하나 신경이 쓰이는 건, 영화 볼 때 '저음'입니다. b&w가 그렇고, 소니도 음색이 맑고 섬세한 대신 좀 가늘다는 유저들 이야기가 있었지요. 사실 총알 부족으로 우퍼는 안샀습니다. 아주 낭중에 살려구요. 하지만 현재로 만족합니다. 북쉘프 쓸 때도 아랫집 전화 올까봐 밤에는 우퍼를 거의 사용 안했거든요. 우퍼가 없음에도 기분이 좋은 건 b&w의 해석력 때문입니다. 전에는 저음이 '우웅' '두궁' 하긴 했어도 소리가 뭉쳐 쳐 들렸는데, 이젠 프론트만으로도 탄탄한 소리가 나니 말입니다. 전에는 저음과 중음 고음을 모두 합쳐 미니 핸드북 정도의 어휘력이었다면, 이젠 웬만한 중형 사전 정도의 영어사전을 보는 것처럼 소리의 광범위함에 빠지게 됩니다.
두 녀석을 들이던 날 설치 기사님이 "한 3개월 들어보세요. 매일매일 느낄 정도로 달라집니다" 했습니다. 에이징에 한 3개월 걸린다는 뜻이겠지요? 지금도 좋은데 소리의 자리가 잡히면 얼마나 더 좋을까 무척 기대가 됩니다. 연애할 때도 한 3개월이면 상대방에 대한 파악이 끝나잖아요. ^^;
녀석들과 함께 할 앞으로의 나날들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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