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바다 셀프타이틀 앨범 리뷰
발매년도: 1989년
제조사: 성음
제작 & 프로듀서: 김홍탁 (전 He6의 기타리스트)
편곡: 김효국 (앨범내의 모든 건반 악기 담당, 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하늘바다: 장재환(기타) & 김영태(베이스), 배수연(드럼, 최고의 세션)
그룹 ‘11월’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다. 90년대 초 공인된 연주력과 미디어 친화적인 곡들로 나름 인기를 끌었던 밴드다. ‘11월’은 ‘하늘바다’의 두 멤버, 앨범 편곡과 건반에 참여했던 리더 김효국 그리고 전인권과 함께 음악 생활을 했던 조준형(기타), 박기형(드럼) 등이 모여 결성된 5인조 밴드였다. 그룹명이 11월인 이유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가 11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하늘바다’의 후신이 ‘11월’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들에 대한 평가 중에서 단연 괄목할 부분은 ‘프로그레시브’ 록이라는 표현이다. 글쎄 과연? 메탈도 장사가 안 되는 나라에서 프로그레시브를? 게다가 또 그걸 어떻게 한다는 건지? 음반을 플레이어에 걸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어느 요일, 맑음’의 후반부는 잠시 동안이지만 확실히 전형적인 프로그레시브 사운드가 나온다. 하몬드 오르간이 휘젓는 동시에 호응하는 악기들의 마주침은 흡사 70년대 초 유러피언 프로그레시브 냄새가 강하게 귀를 자극한다.
그렇지만 11월은 가장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보사노바 재즈풍의 ‘머물고 싶은 순간’, 흡사 들국화를 듣는 듯한 느낌의 소프트 록 ‘착각’, 블루스 ‘독백’ 등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포진해있다. 이는 구성원 각자가 곡을 생산하고 그 곡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란다. 가령 조준형이 비틀즈 풍의 노래를 만들어서 본인이 노래를 부르면 당연히 비틀즈와 흡사한 연주가 될 것이고, 김영태가 핑크 플로이드에 영향 받은 곡을 만들어 연주하면 핑크 플로이드와 비슷해지는 이치일 것이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구성원들 각자가 최고의 세션맨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선지 음반을 들어보면 딱히 흠잡을 곳은 없다. 오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어떠한 우연이나 즉흥적 요소도 개입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함을 향해 필연적으로 나아가는 그런 느낌. (물론 완벽할 순 없다. 인간에게 완벽은 허용되지 않은 영역이니까)
필자는 이런 연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 취향이다. 리 릿나워, 래리 칼튼 스타일의 연주는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토토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조악하더라도 날것의, 원초적인, 이성보다는 즉자적 감정에 호소하는 연주를 좋아한다. 실재와 마주대할 때 낯선 기이함을 주는 그런 연주. 마찬가지 이유에서 프로그레시브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킹 크림슨과 핑크 플로이드는 예외긴 하지만.
‘11월’의 음악을 먼저 소개한 이유는 하늘바다의 음악을 11월을 통해 먼저 알게 되었고, 뒤 늦게 하늘바다의 음반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레어 아이템이 되어버린 음반이다. 유튜브에도 하늘바다의 음원은 업로드되어 있지 않다.
하늘바다의 라인업은 11월과 비교해 볼 때 드러머가 배수연 선생이고, 기타가 장재환 혼자라는 점만 빼고 나머지는 같다. 배수연은 세션 연주를 도맡아 해 온 드럼의 장인이다. 한국의 사이먼 필립스라고 보면 될 것이다.
‘하늘바다’는 한국의 핑크 플로이드를 꿈꾸며 만들었다고 하는데, ‘11월’에 비해 보다 예술지향적인 앨범인 것은 맞다. A면 수록곡들을 묶어서 표현하면 조금 그렇다. 나쁜 건 아니지만. 대체 어디서 핑크 플로이드를 느껴야 하는 거지? 연주나 곡의 완성도 면에서 보자면 나쁘지 않지만 보컬의 음정이 다소 불안정한데, 이게 장점일 수도 있지만 이들의 경우는 아니다. 음정을 떠나서 전반적으로 연주력과 보컬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느낌이 든다.
내가 이들의 음반을 한동안 듣지 않고 처박아 둔 이유도 A면만 듣고 섣불리 판단했기 때문이다. B면으로 넘기면 내가 이 앨범에서 제일 좋아하는 ‘오늘은 아마 꽃이 필거야’가 나온다. 희한하게도 이 곡에선 별로 보컬이 문제될 게 없다. 아마도 장재환과 김영태가 각자 곡을 따로 부르는 것 같다. 어여쁜 동요 ‘어떡하나’, 대미를 장식하는 ‘꿈속에서’. 이 곡이야 말로 본인들이 하고자 하는 음악이 아니었을까? 이 곡을 제대로 들어보니 보컬이 각자인 게 분명한 듯 보인다. 여기서도 보컬의 음정이 살짝 떨리면서 불안정한데, 그럼에도 그것을 상쇄할 만큼 곡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 본 앨범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곡이다.
본 앨범을 리뷰하려고 며칠 들어본 결론은 이렇다. 전체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연주력을 갖춘 밴드다. 당연하지 않은가. 배수연과 김효국만 보더라도 짬이 얼만데. 따라서 이 점에 포커스를 두는 평자라면 당연히 좋은 평가가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핑크 플로이드 운운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하몬드 오르간이 가끔 그런 분위기를 내줄 순 있겠지만 프로그레시브는 단순히 악기나 연주와 관련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앨범을 관통하는 일관성, 컨셉트가 있어야 하든가, 아니면 시대를 앞서가는, 통념을 벗어날 만큼의 획기적인 악기의 구성이라든가, 아니면 카오스모스 곧 부조화의 조화를 보여주던가 해야 하는데, 이들에게선 그런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냄새는 풍겼지만 정작 음식은 맛보지 못한 느낌이랄까.
어스레기 평자들에 의해 부풀려진 프로그레시브 논의만 빼놓고 들으면 나쁘지 않은 앨범이다. 그러나 나의 음악적 감수성은 세션맨들의 집단을 좋아하지 않으니 평점이 후할 순 없다. 간혹 거슬리는 보컬의 어설픔도 평가에 한 몫 했다.
그래서 내 점수는요? 85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