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들 꼬드겨 앵벌이 시켜서 제법 돈 좀 굴리는 연예 기획사 사장님. 이수만.
그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문화 권력이 되었다. 나는 그의 사업가로서의 행보에 대해서는 별로 하고 싶은 얘기가 없다.
그렇지만 그도 한때는 전도유망한 rocker였고, 나름대로 나에게 점수를 딴 시절도 있었다. 그는 전통의 서울 농대 그룹사운드 샌드 페블스의 2기 보컬로 음악 경력을 쌓는다. (산울림의 김창완과 김창훈도 샌드 페블스 출신이다.) 그러나 이수만은 우선 포크 싱어로 가요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 재미교포 출신(교포인지 유학파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의 기타리스트 노준명과 의기투합하여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락 사운드 음반을 한 장 발매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건 하나의 사건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지금 소개하는 이수만과 365일(밴드 명이면서 셀프타이틀 데뷔앨범 되겠다)의 음반은 보다시피 썩 좋지 않은 컨디션임에도 애타게 찾던 음반이어서 앞뒤 재지 않고 구입한 음반이다. 조금 더 기다렸으면 더 좋은 상태의 음반을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운 좋게 구할 수 있다면 대략 4만원에 거래가 된다.
본 앨범에서 이수만은 모든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였다.
라인업은 보컬 이수만, 리드 기타 노준명, 리듬 기타 김세원, 베이스 황두진, 드럼 김호식 5인조 구성이다.
1980년 그 암울한 시기. 대중음악계는 오히려 활로를 찾았는데, 대마초 파동으로 장기간 칩거하던 음악인들이 해금조치로 대거 풀려났다. 조용필이 ‘창밖의 여자’로 돌아왔고, 신중현과 뮤직파워가 엄청난 쪽수로 무대를 장악하던 이 시기에 국산 하드록 밴드들도 조용히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데, 이수만과 365일, 무당 그리고 마그마, 작은 거인 등이 그들이다. 개인적으로 순위를 매기면 마그마, 이수만과 365일 = 작은 거인, 무당의 순이다. 그렇지만 밴드의 기타리스트만으로 순위를 매기면, 마그마의 김광현 = 이수만과 365일의 노준명을 최고로 꼽는다. 김수철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는 테드 뉴전트나 빌리 스콰이어 스타일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역동적이지만 섬세함이 다소 부족한 느낌이랄까.
김광현과 노준명. 나는 아직 이 둘을 능가하는 기타리스트를 국내에선 보지 못했다. 굳이 견준다면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정도가 될테지만 약관의 나이에 보여준 김광현과 노준명의 기타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늘색 꿈으로 유명한 로커스트(사철 메뚜기)와 연의 라이너스의 데뷔 음반에서도 김광현의 기타 세션을 들을 수 있는데, 한마디로 발군이다. (현재 김광현은 대구 모 대학의 불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각설하고, 노준명이라는 기타리스트에 대해서 내가 아는 바는 버클리 음대 출신이라는 것뿐이다. 본 앨범 이후 그의 행보는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20대 후반에 불과한 이수만이 노준명 군이라고 앨범 라이너에 소개한 것을 보면 당시 스무살 남짓 정도가 아니었을까 여겨진다. 그의 연주는 소위 미국 물 좀 먹었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한상원은 그의 연주를 살벌하다고까지 표현했다.
터질 듯 강렬한 연주로 시작하는 ‘난 알고 있었지’는 밴드의 정체성이 하드록임을 분명히 해둔다. 이수만의 여윈 보컬이 나름대로 호소력을 갖는 ‘기다리는 마음’은 한국식 락 발라드의 전형인데,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의 배치가 균형 잡힌 수작이다. guitar oriented rock의 진수를 보여주는 ‘쳐다보는 그 눈길에’ 역시 이수만의 언밸런스한 보컬이 다소 거슬리지만 나무랄 데 없는 명연이다. 앨범을 뒤집으면 간과할 수 없는 연주곡 ‘물결’이 글자그대로 청자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같은 해에 발매된 동서남북보다 양질의 프로그레시브 연주를 들려준다. 약간의 과장을 실어 표현하면 핑크 플로이드를 연상케 한다.
최근 아날로그 붐에 힘입어 음반 재발매 작업이 한창인데, 마스터 테이프가 있다면 본 음반을 재발매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애착이 많이 가는 음반이다. 키노의 정성일식으로 말하면 이 앨범이야말로 저주 받은 걸작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