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코앞에 둔 주말 저녁입니다.
주제에 장남이랍시고 오래오래 전에 돌아가신 모친의 제사를 모시고 있는 입장이라, 고향으로 내려가는 따위의 일은 일찌감치 접어둔 입장일 뿐더러 집사람이 적당한 예산 규모로 제수 준비를 하는 외에는 아직 명절 분위기는 전혀 와닿지 않는 그런 토요일 오후입니다. 오랜만에 처조카가 놀러와서 나머지 식구들은 다들 거실 소파에 나란히들 앉아 TV 삼매경에 빠져 있고, 저는 그저.. 제 방에서 음악이나 듣고 있습니다.
서재겸 공부방겸(애들이나 저나 공부하는 꼴을 못봤음) 컴퓨터방겸 흡연실, 창고 등 다용도 공간인 이곳에도 역시 한 세트의 서브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거실에 마구 깔아놓은 기기들도 모자라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허드레 기기들중 대충 쓸만한 녀석들로 꿰어맞춘 것들이다보니 글자 그대로 로우 파이(Low-fi) 시스템입니다.
기기들 수준도 그렇긴 하지만 좁은 방에서 듣기는 역시 편안한 재즈가 제격입니다. 가요-팝송, 클래식 등 통상적인 음악 입문과정은 대충 뛰어넘고 조금씩 맛을 알아가는 재즈가 와닿는걸 보면 역시 나이탓을 안할 수가 없네요. 아직 초보수준이다보니 소스도 변변하게 갖추고 있지 못하지만.. 얼마 안되는 음반들중에서 거의 매일 듣다시피 하는 녀석은 입문용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나온 블루 노트 시리즈중 '재즈 보칼' 편입니다. 줄리 런던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에서부터 니나 시몬, 3대 여성 재즈 보칼리스트로 불리는 사라 본, 빌리 홀리데이, 엘라 핏제럴드를 두루 맛보기 할 수 있는 음반입니다. 총 35곡이 들어있는 2CD 앨범입니다만 그중에서도 Kay Starr라는 흑인 여가수가 부르는 'Crazy'는 압권입니다.
Crazy~~, crazy for feeling so lonely, I'm crazy~~, crazy for feeling so blue.. 로 시작되는 흑인 특유의 매끄럽고 풍부한 성량에 약간의 바이브레이션을 섞어 체념한 듯, 질투에 사로잡힌 듯 복잡미묘한 감정을 그대로 전하는 그녀의 노래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으니 재즈 보컬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하나 장만하시면 후회하지 않을겁니다.
** 아직 실력이 없어서 사운드 파일을 첨부하지 못함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평소 꾸준히 CD소스를 사모을 입장이 못되어 틈이 되면 하나 둘씩 사서 듣습니다만 그중에서도 대충 '이거다' 하는 녀석들만 편식을 하는 편이어서 있는둥 마는둥 방치되고 있는 것들이 적지 않아 본전 생각나던 차에 한꺼번에 두루 쟁여놓고 들어보자는 생각에 꼭 들어맞는 CDP를 들였습니다. 6 CD 카트리지가 장착되어 있고, 별도의 1장용 트레이가 구비되어 있는 JVC 모델입니다. 중고가 모델에 비해 소리에 어떤 차이가 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고가 모델을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그 아래에 있는 녀석은 어디서 줏어온 태광 더블 데크입니다.
맨 먼저 트레이의 CD를 플레이 하고나면 카트리지의 6개를 차례대로 훑어서 울려주기 때문에 5~6시간은 아무 생각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저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는 최고의 장점입니다만 아직 그렇게까지 음악을 오래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이 소스 기기들을 엮어 울리는 앰프는 구닥다리 피셔 TR 리시버입니다. 푸른색조의 녹턴형 레벨메터 창이 예뻐서 상태가 좋다는 말에 대충 택배로 받고보니 튜닝창 전구가 두 개나 나가있고, 주파수는 왕창 밀려있고, 밸런스도 치우쳐있고..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더군요. 기 백원짜리 조그마한 전구를 구한답시고 세운상가 뒷골목을 뱅뱅거리며 헤매고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동안에는 CDP를 물려주지를 못해서 테입의 벙벙거리는 소리나 전파수신이 그닥 좋지못해서 잡음이 섞인 FM만 듣다보니 이넘의 앰프 성향이 구닥다리 취향이거나 아니면 싸구려 스피커만을 탓했는데 역시 소스의 문제였습니다. 고물 앰프와 싸구려 스피커로도 상당히 만족할만한 소리가 들리니.. 역시 저는 막귀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음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기신호를 음성신호로 변환시켜 최종적으로 청취자의 귀에 전달하는 스피커겠습니다만.. 거실에 모두 5세트의 스피커가 있고, 이 방 어느 한 구석에도 삭아서 너덜거리는 우퍼 엣지를 교환하지 못해 놀고있는 컨트롤 1 세트도 대기중이라 또다시 업그레이드할 형편이 못됩니다. 미니 컴포넌트 출신이 분명한 인켈 스피커 한짝은 LP 랙 위에, 다른 한짝은 책상 위에서 묘한 음장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는 현재 리시버의 문제상 정확한 밸런스를 맞출 수가 없지만 좀 더 뒤로 물러나 앉으면 됩니다.
대략 가운데 있는 의자가 정위치입니다. 거실에 세팅된 기기들이라해도 그다지 제대로 된 시스템도 아닙니다만, 이 정도 사이즈의 방에 이 정도의 기기면 적절한 거라고 대충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퇴물 내지는 문제점들을 하나씩 안고 있는 기기들이 아마도 마지막 주인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봉사하고 있고, 저도 그런 녀석들을 기특하게 보듬으며 음악을 즐기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결론적으로 제가 가진 다른 어떤 기기들보다도 음악듣기가 훨씬 편안하고 좋습니다. 아마도 수년에 걸친 와싸다 중고장터 섭렵과정에서 굳이 권장할만한 것이 아닌 '빈티'가 몸에 밴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대우 로고가 붙은 디지털 피아노 역시 이런 케이스로 입양된 녀석입니다. 이사를 하면서 남 줘버린 고물 업라이트 피아노 대신에 공간적 사정을 맞춘 디지털 피아노를 물색하다가 결국은 업어온 것이 이 '빈티지'한 초기형 디지털 피아노입니다. 애들이 연습이라도 한번 하자면 건반 삐거덕거리는 잡음이 신경 거슬릴 정도입니다만 오히려 이 녀석을 잘 샀구나 만족하고 있습니다. 몇 년동안 열심히 피아노 교습을 받으면서 콩쿨에도 몇 차례나 나갔던 딸들이 이사온 후로 교습을 끊었더니 완전히 피아노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애초 욕심대로 기백만원 짜리 콘솔형 어쿠스틱 피아노를 샀더라면 '그 돈으로 매킨 분리형 세트나 최소한 S3100은 들였을텐데..'하고 땅을 치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방은 창고를 겸하고 있어서 책장 위며, 구석구석에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짱(!)박혀 있습니다. 아는게 병이라고 '조만간 필요할 물건이거니' 하면서 눈에 띄는대로 주섬주섬 사모으는 습관이 들었습니다. 일본 출장길에 잠시 짬을 내어 사온 슈어 바늘은 현재 쓰고 있는 카트리지와는 모델이 완전히 다르고.. 오디오 테크니카 리드선은 교환할 엄두를 못내고 마냥 보관상태로 있을 따름입니다. 꽤 비싸게주고 산건데 말이죠.
방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고물기기들과 따라 애들 방에 셋팅해 주려고 구했던 아남 미니 세트, 이런저런 인터케이블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어느날 한쪽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는 신동품 어드벤트 칼립소 스피커, 구하기 쉽지 않은 녀석이라고 두 세트를 구해서 처박아 놓은 LP 크리닝 키트 등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은 언제 날짜 잡아서 몽땅 정리를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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