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AC/DC, 데프레퍼드의 3집 앨범 방화광을 리뷰한다.
80년대 초 헤비메탈 음악을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들을 수 있는 루트는 많지 않았다. 미군방송(AFKN)을 통해 간간히 접할 수 있는 정도였다. 어느날 솔리드 골드였던가 하는 티비 프로에서 나이트 레인저가 등장해서, 빌보드 히트 싱글 '시스터 크리스찬'(싱글차트 4위까지 순위가 올라갔던 걸로 기억)을 멋지게 라이브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 이제 헤비메탈도 빌보드 정상에 오를 날이 머지 않았구나하며 흐뭇해 하던 기억이 난다. 얼마후 본 조비가 실제로 넘버원 싱글로 이를 증명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에 따라서는 벤 헬런의 점프가 최초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벤 헬런이나 본 조비를 헤비메탈로 볼 수 있겠느냐는 근본적 의문도 가질 법하다. 헤비메탈이 보다 극단적으로 변해버린 지금, 그들을 어떤 범주로 묶을 것인가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당시에는 넓게 보아 '팝메탈'이라는 범주로 그들을 함께 묶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84년도에 벤헬런이 차트를 점령한 후, 보스톤, 본조비 등이 연이어 싱글 차트를 석권하며 팝음악계에 헤비메탈 일진광풍이 불어닥친다. 그런데 이러한 헤비메탈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밴드 중 하나는 아마도 데프레퍼드일 것이다. 이들은 3집 방화광 앨범을 엄청나게 팔아치우며, 헤비메탈의 상품가치를 증명했고, 그해 연말 그래미 어워드에도 노미네이션된다.
데프레퍼드의 음악은 드러머 릭 앨런의 부상 전후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교통사고 때문에 드러머의 생명과도 같은 한쪽 팔을 잃었을 때, 밴드는 해체냐 멤버교체냐의 기로에 서있었다. 각고의 노력으로 릭 앨런이 한쪽 다리로 잃은 팔을 대신하는 특수한 드럼세트를 가지고 복귀했을 때, 전 보다 훨씬 더 많은 팬들이 밴드를 열광적으로 끌어 안았다. 히스테리아 앨범은 많은 히트곡을 양산하며 10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다.
애초에 팝 지향적이긴 했지만, 부상 전의 데프레퍼드의 사운드는 황소처럼 힘이 넘쳤고, 연주는 결코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무겁고 단단했다. 그 중심에 릭 앨런의 해머 드럼이 있었다. 가뜩이나 어린 팀원들 중에서도 최연소자였지만, 데프레퍼드 구성원 중 가장 탁월하게 돋보이는 연주자는 릭 앨런이었다. 부상 이전 릭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앨범이기에 그 의미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락계의 맘모스 AC/DC의 프로듀서였던 로버트 존 '뮤트' 레인지가 프로듀싱을 해서인지 두 밴드의 음악은 너무도 닮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담백하다. 순간적인 폭발력보다는 지칠 줄 모르고 꾸준히 달리는 중거리 육상선수랄까. 안정적이고 조직력이 돋보이는 연주다.
조 엘리엇의 보컬은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쇳소리를 들려주는데, 이것도 ac/dc의 보컬들(본 스콧이나 브라이언 윌슨)을 연상케 한다. 전임 피트 윌리스를 대체하며 새롭게 가세한 걸 출신의 필 콜렌이 드문드문 깔끔하면서도 전광석화 같은 솔로를 뽐내준다. 릭 앨런의 드러밍은 일취월장하면서 본 앨범에서 절정을 찍고 있다. 부상이 아니었다면 존 본햄을 잇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었을 것이라는 데 오백원 걸고 싶다. 아쉽다면 앨범 전체 러닝 타임이 다소 짧다는 점이다.
방송에서는 미디엄 템포의 '포토그래프'가 선전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foolin''을 제일 좋아한다. 특별한 히트 싱글 없이 앨범 차트에서는 오랫동안 상위에 머물러 있었다. 뉴웨이브 어브 브리티시 헤비메탈의 총아들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던 팀이지만 3집까지는 골수 헤비메탈 팬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만한 음반이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