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처음 구입한 레코드 되시겠다. 영등포 롯데 파이오니아 대리점에서 5단 합체 전축을 사던 날 난 거의 울뻔 했었다.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로만 음악을 듣다가 전축 (당시엔 오디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무조건 전기 축음기의 약자 전축으로 통했었지)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그만 경외감 마저 살짝 느낄 수 있었다. 종교가 없지만 어떤 숭고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전축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가격은 당시 85만원 정도였고 당시 소형차가 400만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하니.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300만원이 넘는 물건이라고 보면 될 듯싶다. 정확한 모델명은 지금 찾아보니 페르소나 s-55d였다. 턴테이블이 프론트 로딩 방식이어서 유난히 멋져보였다. 이 모델은 제조가 일본이었고, 국내에서는 판매만 했던 제품이다.
전축을 산 다음날 영등포 모 백화점에서 구입한 앨범이 두 장 있는데, 바로 위 앨범과 주다스 프리스트의 Screaming for vengence였다. 이 두 앨범은 너무 많이 플레이해서 추후 다시 중고로 재구매를 해야했다. 오늘 리뷰하는 음반도 처음 샀던 음반이 아니라 나중에 재구매했던 것이다.
당시 스콜피언스는 국내 FM 애청자들에게 대단한 사랑을 받았던 팀이다. 이미 '할러데이'는 도깨비 차트 순위에 단골로 리퀘스트 되던 애청곡이었고, 이 음반을 사던 해에는 '스틸 러빙 유'가 그해 팝 차트를 휘젓게 된다. 김광한과 김기덕 모두 열심히 이곡을 틀어댔고 연말에 진행하는 올해의 TOP 100에서 최상위권에 오른다.
자켓 커버는 맞춘 듯 검은색 가죽으로 깔맞춤한 아자씨들 다섯이 노려보고 있는데, 오리지널 자켓은 너무 야하다고 판단해서 뒷 커버를 그대로 가져온 듯 싶다. 뒷 커버랑 앞 커버가 같다. (얼마나 야한지가 궁금하면 검색해보면 알 것. 당시로선 심의를 통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와서 다시 들으면서 느끼는 건데, 내가 너무 스콜피온스를 멸시한 듯 해서 많이 미안해진다. 사실 이들의 음악은 연주력, 작곡능력, 가창력, 음악성 등등 전혀 모자람이 없다. 마이클 솅커가 참여했던 데뷔앨범에서 보여준 프로그레시브함, 울리히 로스가 그 자리를 메꾸고 발매한 앨범들에서는 경이로운 기타 연주를 보여주었다. 지금도 이들의 도쿄 테입스 더블 라이브 앨범을 듣게 되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치명적 아름다움 그것이다.
이들을 얕잡아 본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중적 밴드라는 사실. 그거 였을 것이다. 대가리가 물러터질 정도로 많은 음악들을 듣고 난 후 재평가하는 지금. (무려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들의 음악은 대단히 좋다. 마티아스 얍스. 워낙 거장 둘이 밴드를 거쳐갔던 탓인지 그는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느껴졌고, 실제로 그에 대한 평가는 지나칠 만큼 박하다. 그는 그 만큼 튀지 않고 밴드 속으로 녹아든 한데. 그것이 어쩌면 밴드 구성원으로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지만 저평가를 받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가만히 한 곡 한 곡 들어보면 적재적소에서 부족함 없이 자신의 실력을 노출하고 있다. 분명 슈퍼 기타리스트까지는 아니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연주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앨범은 수록곡 전부가 준수한 곡들 이상으로 알차게 채워져 있어야 하는데, 이 앨범이 바로 그렇다. 지루한 곡 없이 수록곡 전부가 각자 나름의 정체성을 가지고 존재 가치를 뽐내고 있다. 배드 보이즈 러닝 와일드에서 스틸 러빙 유까지 쉴 새 없이 청자의 귀를 즐겁게 해준다. 루돌프 솅커의 충실한 백킹과 마티아스 얍스의 베일듯 예리한 솔로가 귓구멍을 션하게 뚫어준다. 이들이 향후 독일 메탈 밴드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은 무엇보다 수려한 멜로디일 것이다. 크레아토르 같은 예외들도 있지만 대개 독일산 밴드들은 지독할 만큼 멜로디에 중독되어 있다.
라인업은 보컬 - 클라우스 마이네 (밴드의 역사 자체)
퍼스트 기타 - 마티아스 얍스
세컨드 기타 - 루돌프 솅커
베이스 - 프란시스 북홀츠
드럼 - 헤르만 라레벨
내가 모은 스콜피온스의 음반은 12장이다.
그 중 가장 많이 들었고 ,가장 애착이 가는 음반이 바로 Love at first sting(한방에 뿅가는 사랑)이다. 앨범명과는 반대로 오랫동안 듣다가 정이 든 경우라고나 할까. 그 놈의 정이 아니었다면 도쿄 테입스를 최고로 꼽았을 것이다.
롯데 파이오니아 전축과 첫번째 구입한 음반. 이 앨범을 처음으로 리뷰하는 이유다. 달리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첫사랑, 그 잊을 수 없는 그 상흔과도 같은 애틋함.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독해지는 그리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