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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공각기동대(내용전개에 관한..)네이버 게시판 김태규님의 리뷰입니다.
음반리뷰추천 > 상세보기 | 2002-06-04 11:03:51
추천수 3
조회수   3,362

제목

[리뷰] 공각기동대(내용전개에 관한..)네이버 게시판 김태규님의 리뷰입니다.

글쓴이

박성민 [가입일자 : 2001-07-01]
내용
-내용이 워낙 훌륭하여 원저자의 허락을 받으려 했으나 메일이 주소불명으로 다시

돌아온 관계로 허락을 득하지 않고 게재합니다.

이 글을 김태규님이 보시고 문제제기를 하시면 즉각 삭제할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공각기동대의 스토리가 지닌 세부사항을 보실 수 있으며 저도 이글을 읽고 다시 감

상하려 할만큼 제가 생각한 것에 +@를 더해줍니다-



공각기동대] 신화, 과학을 업고 철학으로 강림하다





1. 일본신화의 재생



스사노오가 뱀(야마타노오로치)의 중간 부분의 꼬리를 짜를 때 칼날이 상했다. 그리하여 칼끝으로 갈라보니, 그곳에는 매우 훌륭한 큰 칼이 있었다. 스사노오는 특이한 이 칼을 아마테라스 여신에게 바쳤다. 이것이 바로 쿠사나기(草那藝)라는 칼로 나중 3종의 神器중 하나다

-일본 [古事記]에서



세상만사는 모두 가미(神)의 조화이다. 비유하대 가미는 인간처럼 작동하고 인간은 머리와 팔다리가 있는 人形처럼 작동한다...인간은 다만 저절로 선을 추구하는 人形과 같은 존재로 선악 모두를 포괄하는 가미를 좋든 싫든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무라오카, [日本神道史]에서



내가 춤추면 아름다운 여자 취하게 되리

내가 춤추면 달빛에서 소리 울려퍼지리.....

결혼에 가미(神)는 강림하고

동터올 때 호랑지빠귀새 우네

-[공각기동대] 주제가 중에서



뒤늦게 개봉된 [공각기동대]는 참 여러 모로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런데 이후의 여러 SF영화들에 많은 영향을 줬다는 이 작품의 근저에는 고대 일본신화가 자리잡고 있죠. 미래와 고대의 반복적인 모티브, 과연 르네상스(고대로 돌아가자!)적입니다.

우선 주인공 쿠사나기 소령의 이름 자체가 일본고대서 [고사기]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명검이자, 일본 천황가의 정통성의 근거가 되는 3종의 신기(칼, 거울, 곡옥)중 으뜸으로 나오죠. 더욱이 그 정체 자체가 사람이 아닌, 원래부터 뱀(생명체)과 융합된 기계인데다 무기인 칼인데야 이름 자체가 '사이보그'적 아닙니까. 여신에게 바쳐졌으니 당연히 여성성(!)일테고.

반면, 쿠사나기의 파트너로 가장 과거의 보통사람답다는 토구사는 '아오히토구사(蒼生)'='밭종자=피지배층인 백성들이 먹었던 잡곡'에서 나온 명사니까 곧 '평범한' 인생의 상징이겠죠.

人形師는 어떤가요.

두 번째 인용에서 보듯, 일본의 전통종교 神道의 인간관은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는 가미(神)이 영혼과 세상만사를 주재하고, 인간은 단지 그에 따르는 '인형같은 존재일 뿐'이란 거죠. 선악과 도덕을 초월해서 '존재'란 모든 것에 깃들인 것=고스트. '고스트없는 인간(인형)'들을 조종하는 '인형사'=가미의 개념이 부합되는 것 같죠. 우리 민담들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죠, 왜 귀신이 인간의 등에 업히거나 머리에 올라앉아 조종한다는 것 말이예요.

세 번째 인용은 [공각기동대]의 주제가이자, 과거 일본건국신들과 천황을 위한 마츠리(축제)때 불리워진 찬가로, 내용은 천황가의 유래인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천손강림)을 맞는 거죠. 그러고 보면 영화의 처음, 알몸으로 초고층빌딩에서 하강하는 쿠사나기의 모습은 바로 신화상의 알몸으로(강보에 싸인채지만) 내려오는 천손과 오버랩되는 장면이기도 하죠. 그리하여 서너번 반복되는 노래는 쿠사나기/인형사의 神性과 융합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상징이겠죠.

고통을 준 존재이자 황국사관의 중심인 천황가의 신화를 기본 모티브로 깔았다는게 영 찝찝하지만 그만큼 또 자신들의 '민족문화'를 엑세tm해서 오늘의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되살린 거니까 신화매니아 오시이감독이 자부심을 가질만도 하겠군요.



2. 인간의 필요충분조건-신체와 영혼?



조금씩 기억을 잃기 시작하면 우리들의 삶을 만드는 것이 기억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기억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우리들의 기억은 우리들의 일관성이자, 우리들의 이성이며, 우리들의 행동이며, 우리들의 감정이다. 기억없이는,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루이스 브뉘엘



모든 신체들은 마치 강물처럼 계속 흐르고 있으며, 부분들은 계속 나타나고 또 사라지기 때문이다...동물들에게서 종종 형태변이가 일어나긴 하지만, 신체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영혼들은 없으며, 신체없는 정령들도 없다. 神만이 신체를 가지지 않는다.

영혼과 유기적 신체 사이의 결합...영혼들은 목적인의 법칙에 따라 육동 작용, 목적과 수단을 통해서 행위한다. 신체들은 운동인의 또는 운동의 법칙에 따라 행동한다. 그럼에도 이 두 영역, 즉 운동인의 영역과 목적인의 영역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라이프니츠, [모나드론]에서



[블레이드 러너]이래 많은 영화들이 다뤘던 인간의 정체성 기준으로서의 '기억'이란 내용은 [공각기동대]에서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곧 기억으로 대표되는 '자신을 규정하는 영혼'이 조작되며 표준화된 프로그램으로 탄생된다는 거죠. 자기 존재의 '유일함' '주체적'이란 단어들이 거세된 인간의 모습을 한 존재들을 보노라면, 데카르트가 일찍이 얘기한, '동물들은 아무 생각없이 움직이는 자동인형에 불과'하다는 명제가 인간에까지 적용된 예라고도 보여집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현재의 인간 역시 기억의 편의적 조작과 집단적 프로그램화에 노출되어왔다고 느껴지죠-홍상수의 여러 영화에서 보인 기억의 왜곡과 단절, 나치나 일제의 집단적 기억조작 혹은 망각 등등... 영화에선 그것이 훨씬 더 일상화되고 구조적 재생산되었다는 것일뿐.

그럼 왜곡된 기억일지라도 기억 및 그걸 '프로그램'화한 영혼이 있으면 인간일까요?

플라톤 이래 서구철학자들의 사고에는 상당부분 본질=이데아=신 혹은 영혼의 인식이 깔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인간이란 신 혹은 영혼의 지배하에 놓인 기계적 신체란 얘기가 나왔겠죠. 그런 점에선 영혼이 본질, 신체는 껍데기란 이분법적 논리가 가능했을 것이구요(그 수많은 천국 혹은 지옥으로 간다는 영혼들과 썩어가는 신체를 대비해서 보면 굉장한 설득력이 있었겠죠-기독교나 이슬람 등의 공간철학이 그것이고)

그러나, 신체(형상)없는 그 무엇을 인간 혹은 생명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아직까진 아니죠. 그래서 끊임없이 이 세계와 저 세계를 나누고, 현실과 가상을 나누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혼체(혹은 유령에게), 네가 있을 자리에 있으라는 것. 신체와 영혼이 결합되어 있을 때 이 세상에 있을 자격이 있다는 것 등등...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다' '끊임없이 전유럽을 배회하는 공산주의란 유령' 등등의 영향력을 들다보면, 현대의 사이버, 네트개념이 등장하기 전에도 '기호(정보) 자체가 존재가 되는 '(유기체적) 생명 아닌 어떤 생명체'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은 들죠.

불교에서 '나'(我)란 존재를 궁극적 존재요소인 식(識)의 총체(執)으로 보고 我執(나란 존재)을 버릴 때 해탈이 온다고 규정했는데, 영혼/신체의 이분법보단 훨씬 논리적이지만 그것으로 현실의 생명존재들을 다 설명하긴 힘들다고 보죠. 그런 면에선 철학자 이정우님 얘기대로 위 인용문의 라이프니츠의 영혼/신체론이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것도 같구요.



3. 존재의 철학에서 생성의 철학으로



모든 것이 온전해질 때 온전치 못한 이 모든 것도 없어집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말하는 것이나 생각하는것이나 판단하는 것이나 모두 다 어렸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렸을 적 말이나 생각이나 판단을 모두 다 내 버렸습니다.

우리 비록 지금은 희미한 거울 속 들여다보듯 희미한 모습만을 비춰보지만,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분명히 볼 것입니다.

내 비록 지금은 알고 있는 것 모두 다 몽롱하고 흐리나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모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약,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래서 전적인 탄생이나 완전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경우들은 영혼의 분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탄생이라 부르는 것은 발생/펼쳐짐이자 생장일 뿐이며, 죽음이라 불리는 것은 접힘이자 쇠퇴일 뿐이다....

우리는 (항구적인 우주의 거울인) 영혼만이 아니라 동물 자체도 파괴 불가능하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비록 동물의 경우 그 기계가 종종 부분적으로 파괴되며 또 유기적 껍질들을 벗어던지거나 입는다 하더라도... -라이프니츠, [모나드론]에서



일본민속 중 수확의례를 보면, 가미(神)들이 먼저 자신들의 혼을 인간에게 볍씨로 제공하고, 인간은 이를 소중하게 길러 쌀로 열매맺어 먹음으로써 '혼과 신체를 교환하는' 상징행위를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또 천황이 자신의 신적 생명과 활력이 쇠약해지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에게서 생명을 새로 받는 죽음과 재생의 의식을 벌이기도 했죠.

'존재'자체가 하나의 실체로 고정된 게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타자)와 융합하고 그 에네르기(힘)를 빌어 재생한다는 '유연한 흐름 그 자체'란 일본인의 존재관에서 아마 오시이감독은 [공각기동대]의 인형사와 쿠사나기가 나도, 너도 이미 지양된 보다 고차원의 새로운 생명체 융합아이디어를 발견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쿠사나기도, 인형사도, 우리자신도 '자신을 지키는 것만으론' 자신이 존재했던 그 場/구조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아니까요. 새술은 새부대에, 새로운 생명체는 새로운 장에서...

더욱이 위 고린도전서의 인용을 성장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존재의 흐름, 그리고 그에 따라 소멸되는 것과 생성, 발전하는 것의 교차로 본다면,

또한 자연사박물관에서 쿠사나기와 전차간 싸움에서 총구멍박힌 벽의 생명진화계통도(그 끝에 인간이 있는)가 무한한 지구생명의 전역사속에서 계속 새롭게 진화할 것이 필연적이라 본다면, 영화 마지막 '새 신체를 지닌 새 생명체'의 메세지를 '불안하지만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죠.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정우선생처럼 서양주류철학의 존재론이 '인간은...이다' '존재는...한...이다'란 명사,형용사의 철학이었다는 것과 [공각기동대]에서 얘기하는 철학이라 할 '...로 가는 존재' '....로 생성해가는 존재'라는(동사의 철학) 명제에도 끄덕일 수 있겠구요.

여하튼 낡은 신화가 과학을 등에 업고 철학으로 재림한 [공각기동대]. 다시 한번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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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oo@passmail.to 2002-06-06 02:29:03
답글

쩝..결국 끝까지 못읽었음...공각기동대 좋은 애니죠.

bosscat@channeli.net 2002-06-09 13:09:49
답글

흠.... 이런뜻 저런뜻 다 몰라도 애니만 잘보면 장땡.. 과대해석 골치아프군요...

yjwan@hitel.net 2002-06-10 23:29:35
답글

헉...저만 다 못읽은줄 알았는데....^^

aimhigh@hananet.net 2002-06-12 11:21:31
답글

그래도 몰랐던 상징들을 알게 됐네여.. 다 읽진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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