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현재 팝 영역에서 활동하는 혼성 듀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천재성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모든 곡을 자작하면서
포크와 전자 댄스음악까지 모든 스타일을 다 소화할 수 있으면서
20년 이상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의 귀를 낚을 수 있는 갈고리를 지니고 있으면서
고독한 도시 남녀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으면서
부부의 연을 맺은 최고의 그룹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트래이시 쏜과 벤 와트로 구성된 이 그룹 EBTG의 마지막 정규 앨범은
바로 이 앨범, Temperamental 입니다.
유래없이 빌보드 차트에서도 엄청난 성적을 거뒀던 Missing 리믹스 이후로
자신들의 스타일을 완전히 뒤집고 전자음악으로 거듭났던 실험적인 Walking Wounded 앨범 이후, 전자음악에 대한 방법론을 완벽히 마스터하고 또한 스타일을 완벽히 흡수해서 내놓은 걸작이 바로 이 앨범입니다.
단순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비트가 꿈틀대는 트랙속에는 이 그룹만의 맬랑콜리한 정서는 오히려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들으면 잘나가는 DJ들의 앨범보다도 더 흥겹고 신나지만,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분위기는 항상 쓸쓸하고 어둡고 고독하고
또한 도회적입니다.
Five Fathoms 라는 곡을 보면 늦은 저녁에 도시를 혼자 방황하면서 사랑을 갈구하는 젊은 도시인의 정서가 나타납니다.
코러스로 반복되는 I want you to love me, there's a river in my head를 듣다보면 뭔가 고립되어 있는 사람의 정서가 느껴집니다.
앨범명과 동명 트랙인 Temperamental 은 재미있는 곡입니다.
자신들의 개성적인 음악을 당신이 사랑해 주길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팬들의 기대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 사이의 괴리감을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I don't want you to love me, I don't want you to love me
you're like an empty cup, but I can't fill you up
사실 EBTG의 팬들의 절반은 과거 포크 음악으로 회귀해주기를 바라기도 합니다만.
http://www.youtube.com/watch?v=-hrZPNwZWIo
이들의 라이브를 보면 국내 댄스음악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느낄겁니다.
무대에서 아무도 춤을 추지 않지요. 댄서도 없구요.
Lullaby of Clubland는 제목에서 죠지 셰어링의 Lullaby of Birdland를 연상시킵니다.
따로 리믹스를 하지 않고 그냥 클럽에서 틀어도 될 정도로 신나는 곡인 이 트랙은
듣고 있으면 피크 타임에 달한 클럽의 풍경과 쌀쌀한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 앨범이 나오기 전에 워싱턴 DC의 잘나가는 DJ인 Deep Dish와 함께
작업했던 the Future of the Future가 앨범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앨범 이후로 이들의 공식 활동이 이어지고 있진 않지만,
둘이 결혼해서 애낳고 잘 살고 있고,
남편인 벤 와트는 클럽에서 디제이 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레이블인
Buzzin' Fly를 통해 꾸준히 (최고의) 음악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트래이시 쏜도 피쳐링을 해주다가 자신만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애 키우느라 바쁜건지... EBTG를 공식 해체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부창부수로 EBTG의 멋진 걸작을 들고 다시 팬들 곁으로 돌아오길 기대합니다.
국내의 댄스 음악은 전부 저급 딴따라로 몰락해버렸고,
간혹 정말 드물게 전자 댄스음악이라고 들고 나오는 팀들은 단지 전자음악일 뿐
평작도 안되는 수준이었던게 현실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못받고의 문제를 떠나서 그나마 가장 모범적이라 생각되는게
롤러코스터 정도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90년대의 클럽 음악을 가장 대중적으로 풀어낸 영국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접해보고 싶은 분께 이 한 장의 명반을 추천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