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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지역에서 명기로 인기있는 오디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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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5 20:1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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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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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가입일자 : 2016-0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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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지역에서 명기로 인기있는 오디오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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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78 입니다.
무려 43년전에 마산 자유 수출 지역에서 만들었으며 대한민국 최초로 탄생 한
고급 FM/AM Stereo Receiver 입니다
스테레오 분리, 소리도 깔끔하여 요즈음 미주지역에서는
" Gorgeous Vintage"
로 불리워 짐니다.
이런 골져스 대열에 올라간 오디오가 국산 제품이라는 것 모르셨지요?
그 당시 국내 최장 콤베아 길이 60M 에서 량질의 노동력 우리 한국 아가씨들 손으로 만들었으며
품질 수준은 1천대에 불량 1% 이하로 keeping 기록을 세운 좋은 제품이였지요.
front 다이알 판넬에 치부 된 맑은 창은 정전기 처리를 핈후적으로 거친 후에 부탁을 해야하여 처음으로 일본에서 정전기 처리 기계를 수입해와서 제조 라인에서 사용 되었지요.
별 기술이 없는 제가 본 대한민국 최초 22W 대출력 레시버 제품 제조 생산 담당 계장을 했었습니다.
아직 삼성,금성, 해태,대우,잉켈은 이런 오디오 꿈도 못구던 시절이였습니다.
자료 차원에서 올려 드림니다.
튜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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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동호인 집에 방문 해보면 의외로 불량 외제 튜너나 레시버를 소장 하신 분들이 제법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병이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93.1 소리 재생에 문제가 있을 경우...
" 이거 소문난 명기인데요!"
"손 싹 봤는데요!"
"이거 얼마나 비싼 튜너 인데요!"
이런 말로 자기 튜너를 불량인데 량품으로 우기는 분들 제법 있습니다.
93.1 소리재생은 위에 언급한 세가지 튜너 사고로 끝까지 주장 하시는 분은 결국 대화를 포기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다행이 개중에는 제가
"튜너가 문제가 쫌 있습니다 "
설명 드리면 ..바로 인정 하시는 분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면 바로 해결잭이 나오지요.
튜너의 소리 재생은 전자 과학입니다
추후 저를 만나는 분은 제가 튜너 불량이라고 판독 하시면 믿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왜야하면 상기 sta-78 제조 라인을 맡아서 일하다가 바로 미국 Radio shack ED 부서에서 오래 근무 했었구요.
하여 나름 별 기술은 없어도 ,
튜 너가 불량인지 아닌지는 100% 판독이 가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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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래 |
2022-03-26 16:46: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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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글을 잘 못 해석 하셨네요.
모델 이름에 sta -78 입니다
즉 78년도가 아니고 78은 모델 이름입니다.
이 제품이 나 올 그당시 잉켈은 이런 모델 급 오디오를 생산 한적이 없습니다.
제가 잉켈 방학동 공장에도 오디오 제품 수출 바이어 검사를 직접 자주 나갔던 공장이라서 쪼매춤은 압니다.
참고로 oem 제품들은 구매 측 바이어들이 직접 제품 제조 공장에 나가서 튜너를
aging test, running test, filed test,drop test, 바이브레이션 테스트 등을 거치지요.
이제품 제조시 ...우리도 이런 고급 오디오를 제조한다..뭐 이런 감동으로 .김포공항 메인광고 보드에 정부에서 광고 했구요
외국 고위급 산업 시찰단이 한국 방문하면 방문 코스 하나였을 정도로 나름 전자산업을 수출 주도로 이끌던 정부의 자랑이였지요.
그래선지 외국 손님이 김해 공황에 내리면 제가 그분들 모시고 마산으로 이동 할 때는 앞뒤로 경찰들이 캄보이도 해주던 시절이입니다..
가끔은 tv 방송사에서 촬영해서 뉴스에서도 나오고는 했지요.
참고로 저는 박선생님이 딴지를 건다는 생각은 전혀 안합니다 ㅎㅎ
국산 중고 5만원짜리 튜너 소리 만도 못한 것도 외제라면 전부 명기로 존중해주는 분들이 존재 하는 나라여서
딱히 상기 제품이 허접 하다 한들 국내 오디오 맨들의 개인 평가는 처음에는 들어도 보고 했지만 이젠
전혀 관심도 없구요
다만 미주지역에서도 제가 오래 살아봐서 미국인들은 이 모델을 가격대비 상당히 알아주는 모델은 맞습니다.
미국 근무시 초대형 서부 우시장이 있던 old down town Radio shack store에서 파견 근무시 미국 고객들과도 직접
본 제품 판매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미국 손님들은 우리처럼 메이드인 korea 제품이라고 선입견으로 차별 평가 하지 않고
나름 제품의 가격 대비 기능과 디자인 ,품질 ,그리고 소리 맛으로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는 미국 오디오 고객들 평가를 더 신뢰하고 존중 합니다.
참고로 본제품 재료비는 산출 및 fob 가격 산출도 제가 직접 했었는데 대략 100$ 선이였구요 ,판매는 300$ 선으로 기억 합니다.
이 제품에 삽입 된 ift coil은 품질 좋은 tokyo coil,과 미쯔미 coli 이 자삽되었구요
top wood case는 일본 파이오니아,샨슈이,럭스만 튜너 wood case를 제조했던 국산 메이커 제품이라서 최상의 품질입니다.
그때 제조라인에서 저와 같이 일했던 한분이 그 이후에 일본 럭스만 튜너 회사에가서 개발 이사를 근무하다가 지금은 명퇴 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 튜너 회사에서 개발 이사를 한 분이 처음이지요.
뎃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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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시군요....
대한민국 전자 기술의 시발점은 사실 조금 빈약 했습니다.
중곡동 별표전자, 자양동 동남전자 , 청계천 라디오 골목...동남전자에서 저하고 북한으로 공중 낙하 하던 라디오와 미국 야구장 중계 수신 용으로 사용했던 라디오와 대한민국 최초의 야외전축 tect- 시리즈를 제조했던 제 동료들이 전부 였는데
종전 후 미국이 산업 전자 사회로 발전하면서 일본으로 밀려들어오는 넘치는 전자제품 제조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마침 박통 발빠르게 전자 산업 제조 수출 단지를 마산 부,평 등지에 만들고 부터 갑자기 제 동료들이 부평공단의 신성전자(도시바 oem)-잉겔 전자 -해태전자 -그리고 마산 자유 수출지역 등지로 퍼진것이 전부 입니다.
개발 기술은 전부 일본 전자 기술자들이 담당 했구요
솔직히 우리는 개발 기술이 미치지 못하고 단순히 농어촌에서 도시로 나 온 젊은 량질의 여공들을 제조 공장에 투입하여
일본 oem 제조기술 즉 단순한 生産技術 수준이였습니다.
그래도 그당시 일본인들이 구축해준 튜너 제조라인 조정 실드룸 박스가 완벽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50년이 지나도 그 때 수준의 계측기로 튜너 수리나 조정을 하는 곳은 실제로 전자 회사말고 개인이 하는 곳은 거의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지요.
라디오,워키토키,인터캄,녹음기,테레폰 시스탬,앰프,튜너,레시버...거반 일본에서 금형을 들고와서 제조된 것들입니다.
1972년도에 처음으로 일본 전자 회사 아가씨들이 한국에 나와서 제조라인 품질 관리를 했구요
제가 1976년 일본 전자회사 연수 갔을 때 이미 일본은 젊은 아가씨들은 고임금으로 라디오 제조라인에서 사라지고 아주머니들이 제조 라인에서 일하던 시절입니다
그러니 1972년 깃점으로 일본 전자 산업이 한국 량질의 노동력으로 oem수출로 돈을 벌고 우리는 겨우 인건비만 건지던
시절이여습니다.
허긴 우린 수출 할 광물 자원이 없었던 나라여서 초등 학생 머리를 짤라서 팔 정도로 수출소재 빈국이였습니다.
그당시 그래도 일본이 제조공장을 대만으로 돌리지 않코 한국으로 돌리는 덕분에
김해 들판에 논농사 10마지기 짓는 아빠보다 딸하나 저희 회사에 근무 하면 수입이 더 좋았던 시절입니다
1972년도 부터 노동자 보너스를 무려 900 % 이상 준 곳도 있으니 솔직히 일본 기업이 한국 근로자 임금을 선진화 시켰다고 봐도 됨니다. 일본 기업이 들어오기 전에 라디오 공돌이 월급이 겨우 6천원 선이였고 잔업을 밥먹듯이 해도 9천원을 넘지 못했구요 먹는 문제가 있던 시절이라서 점심 으로 빵과 우유를 달라하여 처음으로 시도했더니 그때부터 제조 라인에서 아가씨들이 쓸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알고보니 점심으로 지급한 빵과 우유를 먹지 않고 집에 있는 동생들에게 갖다주던 나라였습니다.
아무튼 ..일본 전자회사들이 한국에 진출하고
바로 임금이 만 오천원 선으로 뛰었구요
제조 라인 아가씨들 주거환경은 전세는 꿈도 못꾸고 한달 삭을 세 4천원 선이던 방하나를 얻어서 여러명이 기거 했고
난방은 연탄이였구요.
그래서 영등포,마산,부산지역에서는 한집에 자취방을 대여섯개씩 만들어 일명 벌집 문화가 잉태 되었지요.
저희 회사가 최초로
해마다 종업원들 30명씩 일본 관광 보내고 , 대졸자들 일본기술 연수도 보내주고, 일본어 어학 수당도 주고 하자...
함안,군북,진주,김해,부산 멀리는 전라도 광주 등지 여고에서 자기 학교 졸업 여고생들 취직 시켜달라는 부탁이 많았을 정도였습니다
하여 저는 한국 공장들의 노동 착취 수준의? 열악한 임금을 졸업 시킨 것은 바로 일본 기업들도 어느 정도 했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수출산업 초기 일본 도움으로 전자 산업 발판 이루어진점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서 드디어 우리나라도 박통의 산업 압축 경제 폭팔로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집입 하고 드디어 일본 샤프나 소니를 앞지르는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위대한 기업이 잉태되었습니다.
5천년 빈국에서 불과 반세기만에 이룩한 일이라서 저는 늘 전자회사 공돌이 출신이 자랑스럽고 행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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