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사시는 오디오 동호인 집을 방문 하는 날은 새벽에 일어나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지요.
오늘도 일찍 자고 조금전 일어나서 지방으로 갈 준비 하다가 아래 제 글에 달아주신 주신 류선생님 뎃글을 보고
예문은 답필이라 잠시 시간을 내어서 이 새벽에 인사 답글을 별도로 드리고 지방으로 출발 하려고 필을 들었습니다.
필리핀에가면 코피노 고아원이 있습니다
막 버린 우리의 핏줄들이 너무 많다보니 결국 코피노 고아원이 생길 정도지요.
한 때 우리는 필리핀 보다 더 못 살았던 나라입니다.
1970년대 초반만 하여도 지금 억소리나는 아파트 들이 줄 나래비로 들어 선 동서울 터미널 한강변은 동네 이름 자체가
"똥통 동네"
였습니다.
그 당시
한강변 판자 촌에는 공동 화장실도 없었고...뚝 아래가서 똥을 누거나 아님 가마니 거적데기를 둘러서
임시 화장실을 했었지요
그러니 겁이 많은 아이들은 밤중에는 뚝 아래 똥 누러 가기가 겁이나니
전부 밤에는 골목에 똥을 누었고
자고 나면 골목 여기 저기 똥들이 있어서 .....자연히 똥통 동네로 불리워 지게 되었지요.
지금 고속터미날 과 오디오 가게들이 들어선 그 큰 빌딩이 있고 바로 아래는 서울 시민들이 먹는 물 한강 취수장 있구요 .....인간들은 그런 취수장 바로 위에서 여기저기 똥을 누던 나라였습니다.
그후 우리가 잘사는 나라로 발돋음하여
코로나 전에는 동남아 골프 여행객이 하루에 2천명이 넘었던 나라이지만
불과 반세기 전에는 쉽게 이야기해서
"오줌 똥도 못 가리던 나라"
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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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리핀 코피노들이 사는 동네에가면 70년대 우리나라 처럼 화장실이 없는 집들이 많습니다.
화장실을 우리는
뒷칸, 통시, 변소,해후소, 정낭...이름 만큼만 다양하게 호칭 했지요
필리핀은 화장실을
"씨알"
이라고 합니다
그런 씨알이 없는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오줌똥을 전부 ..집 주변 숲에 들어가서 해결 하지요.
그만큼 열악 합니다.
우리가 잘사는 나라로 발돋움 하면서 정부가 가난한 나라 도와주는 경우가 있는데...
글세요 제 생각이 이상한지는 몰라도 ..
비열하게 도망친 한국 아버지 때문에
오늘도 숲속에 들어가서 오줌 똥을 싸는 ....고피노 아이들이 사는 동네에 공동 화장실이라도 지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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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선생님.
저도 나이들고 근자에 와서는 지나 온 삶에 있었던 일에 반성까지 할 인품은 안되지만 ....스스로 자책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아시다싶이 인생..신이 아닌고로 누구나다 실수 하면서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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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하나 드림니다.
전쟁 후 ....봉화 깊은 산골에서 메주 7장 들고 서울 청량리 도착하여
당장 그날 밤 잠 잘 곳이 없어서 역광장에서
메고 온 이불을 갈고 노숙하고 그 다음날 청량리 광장에서 메주를 팔아서 청량리에 정착한 분이 있습니다.
그후 동대문구에서 재산세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재산을 이루엇지만
말년은 눈물로 보내다가 이제 큰 재산을 이룬 부모는 산으로 가시고 없고 ,,,
지금은 자식들이 재산 싸움으로 진흙탕이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뇌가 조금 이상해진 형을
명석한 아우가 건물 3채에 눈이 멀어서 몸이 불편한 형을 깊은 산속 요양 병원에
가두어 버렷지요.
제 친구 고모 자식들 이야기입니다.
.....,,,,,,.......
원래 우리나라는 형과 형수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부모 대신 자리 입니다.
하여 형과 형수는 깍듯이 모시지요.
그런데 어찌 된 세월인지...그딴 예의범절을 깡그리 무시하는 인간들이 존재 하고 은헤를 원수로 갚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월입니다.
이건 자랑이 아니고 그냥 사람사는 이야기로 접하시길 바랍니다.
전 몇년전 아직 비행기 타 보지 못한 술 고래 형님? 을 모시고 동남아 단체 여행을 갔는데
다들 부부 동반이더이다....자녀분들과 같이 여행 하시는 분들도 있고....
저만 형님하고 온 사람이구요.
그 단체 여행자 속에 썩여서 여행하는데..잘은 못하지만 쇼핑시 외국어 통역 문제로 금방 많은 분들과 친해지게 되고
한국 여행 가이가 데리고가는 가게는 비싸고 저녁에 저와 같이 로컬 시장에 나가면 물건들을 매우 싸게 구입 가능하니 자연 여행 그룹 중에 저가 금방 인기더군요
예를들면 .한국 가이드가 이끌고 간 마사지 샵은 3만원 선이면 저녁에 여행자 분들과 로컬 마사지 삽에가면 8천원..
망고가 가이드 따라가면 kg 당 7천원...저 따라 쇼핑하면 달랑 천원 돈..그러니 여행 내내 저를 좋아 하더군요.
어느 날 그런 즐거운 쇼핑 이후에 저희 방에서 술판을 벌였는데 .....
술을 몇잔 들이 킨 어느 공기업 명퇴자 분이 눈물을 보이더이다.
이유 인 즉 ...몇년전 자기 형님이 돌아 가셨는데....
마지막 말이
"동생하고 소주 한잔 못하고 산 것이 후회 된다고...."
형은 국졸로 일평생 농사짓고 살고
자기는 형이 농사지어서 학비 보태어 대학나와서 서울 살았는데.....
단체 여행 내내 조선생이 형님 하고 여행 다니는 모습보고
자신이 죽은 형님에게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사드리지 못한 점이 이제와서 너무 후회 된다고.....
이처럼 인생은 누구나다 실수하고, 후회하면서
살지요
제 인생도 실수 투성입니다
류선생님이 좋은 뎃글 주신점에 저도 반성할 일이 있는 인생입니다
감사 드림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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