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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T2 UE
음반리뷰추천 > 상세보기 | 2001-09-04 13:00:56
추천수 2
조회수   1,177

제목

[리뷰] T2 UE

글쓴이

이정섭 [가입일자 : 2000-11-13]
내용




1997년 8월 29일 심판의 날 이라 불리는 그날 핵전쟁 이후 소수의 인류만 살아 남았고..
생존자들은 기계와의 전투를 시작해야만 했다. 저항군 사령관인 존 코너를 처치하기 위해 기계들의 두목인 스카이넷은 터미네이터를 보냈지만 실패로 끝났지만 스카이넷은 어린 존 코너를 없애기 위해 또다른 터미네이터(T-1000)을 보냈다. 그리고 존코너 역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전편의 사이보그 모델인 터미네이터-101을 보낸다.

목적이 다른 두 터미네이터들의 승리는 누가 될것인가?




화질

아나몰픽이구 깨끗한 화질은 보이고 있지만..ULTIMATE라는 타이틀에 맞는 선명한 화질을 제공하지는 못하는 듯 하군요.
다이노소어랑 비교해보면 조금 차이가 나네요


음질

사운드 부분은 dts5.1 es와 dd5.1 서라운드ex 그리고 돌비2.0이 지원됩니다.
역시 dts쪽이 더 선명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들려줍니다만 영화에 빠지다 보면 오십보 백보라는 느낌이 드네요.
사운드 분리도도 뛰어나고, 대사의 전달도 확실하게 느껴지게 하구요.
개인적으로는 라이언DD보다도 더 좋은 느낌을 받았구요. 아직 라이언dts를 들어보지 못해서 뭐라고는 못하겠지만..라이언dd보다는 훌륭했습니다.

사운드 부분의 비교를 위해 알텍스 제품과 와피데일 제품을 놓고 비교한 결과
AV환경에서는 알텍스 제품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듯 하네요.
와피데일7.2는 하이파이쪽에서는 좋은데..영화감상시에는 박력(?)이 거의 없는 듯 하네요.
총격씬이나 폭파씬에서 아주 확연하게 나타나더군요
지금은 이 두녀석 모두 미션에 프런트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당근빠따 알텍스가 리어로... ^^


부록

[DVD에 대한 소개]
Studio: ARTISAN ENTERTAINMENT
Theatrical Release Date: July 3, 1991
DVD Release Date: August 29, 2000
Run Time: 360 minutes
Production Company: Artisan Entertainment
Package Type: Keep Case(알루미늄)

▣ Aspect Ratio(s):
·Widescreen anamorphic - 2.35:1

▣ Discographic Information:
·DVD Encoding: Region 1
·Available Audio Tracks: English (Dolby Digital 5.1), English (DTS),
English (Dolby Digital 2.0 Surround)

▣ Edition Details:
·Region 1 encoding (US and Canada only)
·Color, Widescreen, Dolby, DTS Surround Sound, Digital Sound, THX
·Commentary by 26 Members of cast and crew
·Commentary by director James Cameron
·Commentary by Arnold Schwarzenegger
·Theatrical trailer(s)
·1.85 Widescreen - Theatrical Version
·1.85 Widescreen - Special Edition Version
·Over 6 hours of content
·"The Making of T2" Featurette
·"T2: More Than Meets the Eye" Featurette
·"The Making of T2: 3-D: Breaking the Screen Barrier" - in depth look into the making of the MCA/ Universal theme park attraction "Terminator 2: 3D: Battle Across Time"
·Supplemental Material - additional features which cover every aspect of the Terminator 2: Judgment Day film making process
·Cast and Crew Information
·Entire Screenplay
·Over 700 Storyboards
·Limited edition case
·Special 32 page collector's booklet
·Widescreen anamorphic format




기타

이건 http://www.kcm.co.kr/korchur/한살림/SHE/TER.HTM#TOP
요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혼자 보기엔 조금 아까워서 첨부했는데.
이렇게 해도 되는건지? 글쓰신분 성함도 없구..
글쓰신분 양해 부탁드릴께요. 혹시 불쾌하시다면 연락주세요.
바로 삭제할께요..^^

자본과 욕망, 테크놀로지가 빚어낸 우울한 디스토피아
- 제임스 카메론감독의 [터미네이터 II] -

- 욕망이 만들어내는 미래

세기말, 물질의 무한한 소비로 대변되는 인간의 쾌락을 향한 욕구는 방향성에 있어 그 궤를 전혀 달리하는 또 다른 욕망을 낳고 있다. 안락과 편익을 위한 첨단기계문명을 소비,구가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편의성 안에서는 맛볼 수 없는 원시적 모험과 일탈을 꿈꾸는 것이다. 힘든 테니스 놀이를 하인에게 시키는 양반처럼 자기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스릴과 서스펜스, 오금저리는 모험의 긴장을 '편안하게' 즐기기 원하는 현대인의 모순된 욕망은 그 수요에 대한 충실한 응답으로서 자본과 상상력을 동시에 자극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반영해 줄 간접체험의 방식으로 영화산업은 자극과 일탈과 쾌락이 고도로 농축된 '어드벤처 통조림'과도 같은 상품들을 대량 생산해내고 있다.
그렇게 과도하게 달궈진 인간의 욕망은 우울한 미래를 예견하게 하지만,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그렇게 예견되는 어두운 미래가 성찰의 한 방식이라기보다 색다른 자극과 관심을 고조시키는 상업적인 요소로 더 크게 쓰임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90년대 들어 유난히 어둡고 참담한 미래세계가 영화속에 자주 등장하여 모든 폭력과 자극적인 요소들을 정당화하는 배경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들이다. 기존의 모든 질서와 규율과 도덕이 무너지고 가공할 폭력과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인류의 참담한 미래, 그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세계에서 다시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면, 아니 그러한 미래가 도래하는 것 자체를 막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폭력적인 노력도 옹호될 수 있으며 그러한 폭력을 보고 즐기는 것 역시 면책권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거대자본과 그 자본의 상업적 욕망이 낳은 상상력, 그리고 최첨단 테크 놀로지가 상호 결합하여 탄생시킨 SFX 영화 [터미네이터 II]는 그러한 자본주의 상품미학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쾌적한 관람석에 편히 앉아서 빗나 간 미래를 바로잡기 위해 악을 응징하는 주인공 영웅들의 화려한 폭력과 경탄스런 첨단 특수효과를 별 의식없이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즐거움을 위해 소비한 돈은 또 다시 더욱 색다른 즐거움을 위해 재투자될 것이고 그렇게 가속화되는 쾌락과 소비의 악순환속에서 어느새 진짜 어두운 디스토피아의 미래가 우리 앞에 바짝 다가오게 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 무너지는 벽, 혼돈 속의 세계

90년을 전후하여 이미 금이 가 있던 모더니즘의 합리성이라는 거대장벽 이 아예 무너져버리면서 그 여진으로 크고 작은 개념과 개념사이의 벽들마저 무너져내리고 있다. 과학적 논리의 작은 틀안에 답답하게 갇혀있던 것들이 제각기 뛰쳐나와 다시금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마치 그간의 고정관념들은 깨지기 위해 존재해 왔다는 듯이 기존의 틀을 벗어날 것을 요구하고, 그러한 주장은 보다 절대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터미네이터 II]에는 그러한 혼돈과 와해의 시대적 징후가 잘 반영되어 있다. 과거-현재-미래 라는 직선형의 절대적 시간관, 인간과 기계, 남성과 여성, 심지어 삶과 죽음이라는 이항대립의 관념까지도 상호침투의 물꼬를 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념의 무너뜨림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발상의 전환'에 기여하는 것인지, 대안없는 파괴로 다만 '텅 빈 표피적 새로움'에 머물고 마는 것인지 분석하고 평가해 보는 것 이 이 글의 한가지 목적이다. 논의에 앞서 이해를 돕기 위해 일단 영화 안으로 들어가 줄거리를 살펴보기로 하자.

전편 [터미네이터]에서 핵전쟁 이후 기계들과의 싸움에서 인간을 이끌게 될 지도자를 탄생시키기 위해 과거로 회귀했던 미래전사 카일은 사라 코너와의 동침을 통해 앞날이 이미 결정된 '존'이라는 인물을 잉태시킨 바 있다. 그 가운 데 사라는 존의 탄생을 저지하려던 터미네이터(T-800)와의 처절한 싸움을 경험함으로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 자신의 아이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후편에서는 소년이 된 미래영웅 존 코너(에드워드 펄롱)를 한시바삐 처단하라는 슈퍼컴퓨터 스카이네트의 명령을 받고 급파된 T-1000(로버트 패트릭)과 다시 그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띠고 파송된 T-800(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이 일대 혈전을 벌이게 된다. 정신병원에 갇혀있던 사라 코너(린다 해밀튼) 역시 T-800과 함께 아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병원을 탈출하여 고군분투한다. 결국 좀처럼 물리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던 T-1000을 패퇴시키고 존과 사라는 생명을 구하지만, T-800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해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든다.
시각적 표현양식이 화려할수록 줄거리가 단순하고 논리성도 빈약한 반 면, [터미네이터 II] 는 비교적 탄탄한 시나리오에 기대고 있다. 물론 존의 생명 을 보호하기 위한 T-1000의 제거라는 절대절명의 목적에 모든 갈등구조가 종속되어 있긴 하지만 그 갈등의 양태는 속도와 폭력, 예기치 못했던 공격과 반전이라는 형식으로 다양하고 개연성있게 표출된다. 막대한 자본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결코 있을 수도 없었을 시나리오지만, 직접 이 시나리오를 쓴 제임스 카메론은 이미 자신에게 투자될 돈의 무게를 가늠할 만큼 자신있는 도박사였던 것 같다.

이제 앞서 상정했던 문제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터미네이터 II] 에서는 현실의 시간관념이 와해되고 있다. 미래는 현재속에 '기존의 시간', 즉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이미 일어난 시간이 되어버리고 그러므로 기지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되는 다른 상황으로 바꿔내기 위해 현재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1997년 슈퍼 컴퓨터 스카이네트는 핵전쟁을 일으켜 전권을 장악하지만 그에 저항하는 인간들과의 싸움에서 불리한 형국에 처하게 되자 인간지도자 존 코너의 탄생 자체를 막기 위해 미래로부터 T-800에게 존의 어머니인(가 될) 사라 코너를 살해하라는 임무를 지워 과거로 보낸다. 그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존 코너 자신이 부하인 카일을 보내 어머니의 생명을 지키도록 한다. 사라가 죽는다면, 존 코너는 태어나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기계쪽이 불리한 형국의 전세는 달라졌을테지만 사라가 살아남음으로 미래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후 다시 존 코너를 없애기 위해 1994년 과거로 T-1000을 파송하지만 그 계획 역시 실패할 뿐더러, 사라 코너의 공훈으로 스카이네트 컴퓨터 프로그램 자체를 말살함으로 1997년의 핵전쟁의 가능성은 사전에 봉쇄된다.
여기서 과거와 미래는 '이미 일어났다'는 점에서 동일한 성격을 지니지만, 과거는 현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반면 미래는 얼마든지 변화시켜 낼 수 있다는 면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 간을 성실하게 일구어가는 것하고는 사뭇 그 성격을 달리 하는 것이다. 시간의 공백을 뚫고 미래에서 현재로 파송된 터미네이터를 통해 미래는 '기억'되고, 그 기억에 의거해서 정확히 예측되는 만큼의 각도로 현재를 바꿔냄으로 미래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언뜻 현재의 노력에 정비례해서 주어지는 미래의 결과라는 도식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미래가 이미 일어난 사건으로 주어진 만큼 기계적이고 폐쇄적인 사고의 회로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A'라는 미래에 A라는 현재의 노력이 대응하고, B'라는 미래에 B라는 현재가 대응한다면, 대응되는 미래를 위해 요구되는 만큼의 노력을 기울이면 그 뿐일 따름이며, 반대로 그 일에 실패했을 경우 무한한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사라 코너와 T-800이 존 코너의 생명을 구하는 데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식과 실천 양 영역에 있어 분명한 한계를 지닌 인간존재는 현재의 노력이 미래를 가꾸어간다는 상식을 과거의 경험을 통해 체득하지만, 그 상식과 믿음이 곧 현재의 최선의 실천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 속에서도 열려있는 미래의 구원을 소망하는 종말론적 신앙은 오늘의 게으르고 부족한 자신을 추동한다. 닫힌 미래가 현재를 양자택일의 이분법으로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열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죄로 가득한 현실안에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한껏 열어젖히는 것이다. 존 코너의 생명을 구한 이후에도 신앙인의 할 일은 널려 있으며, 설사 그 일에 실패했더라도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구원은 인 간 자신의 노력을 요구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또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 영화안에서는 주체와 객체, 생명과 물체의 대립개념으로만 이해되던 '인간 vs 기계'의 관계가 변화한다. 껍데기는 인간의 형상과 피부를 지 녔으나 알맹이는 기계로 대체된 터미네이터의 존재가 그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인간과 기계는 서로 뒤섞여 완전한 형태변이, 즉 양자의 한계를 넘어서는 동시에 그 정체성을 상실한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고통과 죽음을 뛰어넘지만 눈물의 의 미는 알지 못하고, 자신에게 입력된 임무에 충실하지만 그것에 대한 가치판단은 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싸이보그 T-1000은 그 자신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악한 임무가 입력되었기 때문에 악한 존재가 된다. 이러한 기계인간은 존재의 새로운 지평을 예고한다. 지배권력의 강화와 효율적인 통제를 위해 개발된 기계인간은 스스로의 가치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입력된 임무수행만을 위해 무한한 물리력을 행사함으로 통제능력을 지니지 못한 인간들이 그들에게 지배되고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비단 [터미네이터 II] 뿐만 아니라 [로보캅],[토탈 리콜]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그 들은 [람보]의 인간적 한계를 초월해 있기 때문에 더욱 개연성있는 허구와 환상을 창출해낸다. 문제는 이들이 인간의 욕망의 결과를 암시하는 경고성 메신저 (messagenger)라기보다 잔인하고 극단화된 폭력행사를 합리화하는 존재로 역할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싸이보그의 존재는 인간적인 죽음의 형식과 의미까지도 바꾸어놓 는다. 그들의 죽음은 다만 에너지의 소진일 뿐이며 대체에너지의 주입으로 곧 생명(?)을 회복한다. 그들은 웬만해서 죽지도 않지만 기계 자체의 치명적인 훼손으로 죽음을 맞았다면, 새로운 기계로 대체되면 그 뿐이다. 즉 그들의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손실'의 의미를 지닐 따름인 것이다. 이는 이윤을 위한 대량생산, 대량복제의 시대, 유한한 존재가 지니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전복시키고 한없이 가볍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편 이 영화의 여주인공 사라 코너는 융기된 앞가슴을 제외하면 남성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전사'의 이미지를 지닌다. 강하고 용감하고 두뇌회전이 빠 른 여성전사의 이미지는 과거의 보호받던 여성성의 전형을 단번에 뒤집어 놓지만, 동시에 참된 여성성이 무엇인가를 회의하게 하기도 한다. 존을 보호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남자싸이보그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여자인간 린다 해밀튼은 아무런 차별성도 지니지 않는다. 둘 다 근육질의 몸을 지녔고, 노련하게 무기를 사용하며, 고통앞에 의연하고, 자기 의무에 충실하다. 여성이 성적 매력 으로 바라보는 즐거움을 주던 대상의 자리에서 벗어나 용감하고 적극적으로 싸움에 나서는 모습으로 변화한 것은 일견 긍정적이지만, 그것이 곧 남성적 육체와 남성적 행동양식의 구현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어쨌든 기존의 남성과 여성이 전통적으로 행해 온 역할과 이미지의 견고한 벽이 무너지고 서로 뒤섞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 첨단 테크놀로지와 보수 이데올로기의 만남

제임스 카메론은 원래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였다. 그런 만큼 감독으로 나선 이후에도 그의 관심은 줄곧 시각적인 특수효과에 집중되어 왔다. 형체가 마음대로 바뀌는 액체형상합금인간 T-1000의 탄생은 그의 끈질긴 노력과 열정의 결과물이었다. T-1000의 특수효과를 내는데만 5백 5십만 달러가 들었고, 특수효과 필름 3분 30초를 찍기 위해 여덟 달을 소요했다고 한다. [트루 라이즈] 이전까지 [터미네이터 II] 는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자된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그런 만큼 이 영화의 시각효과는 뛰어나다. T-1000의 부분, 또는 전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화하는 과정이 완벽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다른 인간의 형태뿐만 아니라 물체의 모습, 심지어 액체로까지 변화하는 모습은 가히 경탄스럽다. 이 영화의 어떤 결점들도 이러한 뛰어난 특수효과의 표현력 뒤에 쉽게 은닉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바로 그러한 시각적 화려함 뒤에 은폐된 이데올로기이다. 무엇보다 카메론 감독은 인류의 암울한 미래에 대해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하지 않는다.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싸움터 위에서 다시 질서를 회복 하기 위해 싸우는 존 코너라는 영웅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최선일 따름이다. 그 가 제시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는 아무런 현재적 성찰의 계기로 작용하지 않는다. 존 코너를 살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선과 악을 단순구도로 대립시키는 것이 흥행을 위한 그의 상업적 시나리오일 뿐이다. 또한 그렇게 암울한 미래에 대한 예견을 단지 두 사람의 인간 -사라 코너와 존 코너- 만이 인식함으로써 공동의 사회적 과제를 개인으로 축소시켜 버린다. 그것이 진실임에도 아무도 그들의 주장에 귀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정신병자로 취급함으로써 모두가 불행한 미래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연약한 여성상에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전사로 탈바꿈한 사라 코너는 얼핏 감독의 진보적인 여성관을 반영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여성의 외형과 행동양식이 어떻게 변화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목적하는가'이다. 사라 코너는 보통 남성들보다 강인한 체력과 정 신력으로 전투에 임하지만, 결국 그녀가 그토록 처절하게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딸도 아닌- 아들일 뿐이다.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자 보다 거시적인 안목을 지닌 주체적 여성이라면 미래를 위해 '어머니'로서 아들을 지키는 행위에 머물기보다 '인간'으로서 공동의 책임의식을 환기시키고 함께 노력할 수 있는 일들 을 꾀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녀가 단련된 육체와 강철같은 의지로 줄곧 주장하는 바는 여성이 지닌 '모성애'의 중요성일 따름이다. 어머니 이전의 여성은 남성들의 보호를 받는 것이 미덕이지만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자식을 보호 하기 위해 모든 인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받는다. 이러한 역할기대의 이중성은 여성 자아의 존재를 자유롭게 정립하고 그 정체를 모색하는 것을 억압한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못하는 여성들의 설 자리는 좁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사라 코너가 세상을 위해 할 일은 자신을 던져 아들의 목숨을 지키는 것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는 여성을 가정과 자녀에 묶어두는 통념의 답습일 뿐이다.
더불어 [터미네이터 II]를 비롯한 카메론의 영화에는 인종차별적 관습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유일하게 비중있는 배역으로 등장하는 흑인과학자 마일즈 다이슨(조 모튼)은 자신이 개발한 과학기술 -스카이네트 프로그램-이 악용되리라는 사실도 모른 채 사라의 습격을 받는다. 그는 무지하며 스스로를 보호할 방어능력조차 지니지 못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녀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동조하지만 결국 무력하고 비참하게 죽어간다. 그가 폭사하는 것은 숭고한 희생이라기보다 불가피하게 주어진, 무력한 선택일 뿐이다. 카메론 감독이 만든 일련의 영화 [에일리언 II]나 [어비스], [트루 라이즈] 등에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이 어떤 배역을 맡고 있는가에 주목한다면 이 감독의 차별의식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어떻게 할 것인가?

자본은 이윤의 가능성이 보이는 곳에 여지없이 줄을 선다. 그 일의 목적 이 무엇이든 결과가 어떻든, 보다 큰 이윤의 창출이라는 거대 논리앞에 무화시켜 버린다. 영화라는 상품은 문화라는 어휘가 지배요소가 되어버린 이 시대 가장 강력한 이윤창출의 전략적 무기로 기능한다. 형식적으로는 도덕과 양심을 슬쩍슬쩍 건드리는 척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한껏 실속을 챙기는 게 상품화된 영화의 논리다. [터미네이터 II]는 그러한 논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제작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매력적인 기획상품 가운데 한 예이다. 기존의 인습과 관념을 무너뜨리고 전혀 새로운 그 무엇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말 그대로 새롭고 자극적인 구경거리를 제공하는데 그칠 뿐이다. 폭력적이고 스피디한 수많은 영상이미지들은 마치 거품처럼 우리의 말단에 위치한 시신경을 자극하고 스쳐지나가며 두뇌의 움직임을 차단한다. 우리는 몇 천원의 관람료를 투자하고 무한한 시각적 쾌락을 즐길 따름이지만, 그러한 행위 속에는 우리의 욕망을 더욱 새롭게 자극하고 조장할 상품을 준비하라는 암묵적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현실을 반영하고 창조적인 가능성을 열어가기 보다는 오히려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현실을 통제하고 구속하는 영화의 상품논리는 우리를 무력화시킨 채 마냥 커져만 같은 욕망의 늪에 빠뜨릴 뿐이다. 독버섯이 아름답고 개살구가 빛이 좋듯이 허위는 현란하게 자신을 치장하게 마련이다. 진실을 찾는 대신 시선을 휘어잡아버리고, 현실을 은폐하는 대신 화려한 허구를 이식시킨다.
[터미네이터 II] 류의 영화에 의식을 잃고 혀를 내두르는 동안 차츰 우리는 그것이 주장하는 바에 부지불식간 조종되는 무리로 전락하며, 우리의 차가운 외면속에 고독하게 현실과 싸우는 수많은 영화작가들의 절망을 앞당겨 놓게 될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의식적인 결단과 선택이다. 작품과 상품을 구별하는 안목과 그것을 선택하고 실현하려는 의지야말로 훌륭한 도구를 훌륭한 목적에 사용할 수 있도록 풍성한 창조의 텃밭을 일구는 자양분으로 역할할 것이다. 현란한 허구와 초라한 진실 가운데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우리에게 신앙은 또 하나의 결단을 시급하게 요청하고 있다. 우리의 선택과 거부가 참으로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총평

첨 출시당시 아주 많은 호응을 받았던 타이틀이었지만..너무 기대가 많았던 탓인지..
실망의 소리도 많았죠?
화질및사운드가 이름에 걸맞지 않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구요.
저의 시스템에서는 그래도 다른타이틀보다는 괜찮은 음향과 화질을 보여주고 있어..후회는 없더군요.
누가 뭐라해도 소장가치는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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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성 2001-09-05 01:15:55
답글

헉...오늘 저 집에오자마자 또 봤는데..정섭님두 보셨나여?(찌찌뽕~~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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