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나라나 최고법원 앞에
디케의 여신상이 하나의 상징처럼 서 있다.
이름하여 정의의 여신상이다.
우리 법원 앞에도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신이 들고 있는 건 우리의 경우 저울과 두꺼운 법전(?)이지만,
외국의 경우 한손에 저울과 다른 손엔 긴 칼을 들고 있음을 본다.
저울은 다들 아시다시피 법 판단에 좌고 우면 하지 말고 공평함을 유지하라는 뜻이고,
다른 한손의 긴 칼은 그 공평함을 유지하기 위해 칼이 상징하는 무력(?)
즉 힘(우리에겐 그 힘은 다름아닌 촛불이나 언론, 선거 등)이 뒷받침돼야 함을 웅변으로 알려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법을 일컬어 사회 정의의 초석이자, 정의 구현의 최후의 보류라고들 한다.
그 초석이 여지없이 박살남을 보고, 우리는 한겨레의 그림판 처럼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휑한 심사를 겪고 있다.
소위 조금 배웠다는 놈들의 전횡이 우리를 절망케 한다.
게다가 더욱 초를 치는 것은 사법의 독립 운운하며 그것 그대로 존중돼야 함을 강조한다.
시간이 가면 그 또한 지나가리라 본건가?
미국 대통령 제퍼슨은 동료들이 국가고시에 먼저 패스함을 개의치 않고
반드시 읽어야 할 교양서적을 읽었으며 하루 한번씩 피아노를 치며 음악적 소양을 쌓고
심신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남을 사랑하는 가슴의 뜨거운 열정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인문 교양서적 한번 접해 보지 않은 자들이 알량한 법서만 달 달 외어 출세욕만 가득한 함량미달의
인간들, 이들로 하여
. 중요한 국가적 가치판단을
그르치게 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 질 수 있다.
그래서 칼로 상징되는 힘이 굳건하게 받치고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많은 모순과 부정의로 뭉쳐져 있지만,
그것이 때로 잘못가는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하고, 그래서 다수의 대중들이 거침없이 숨쉬며
살아가게 하는 힘을 얻는 것은 사법부의
정의에 합당한 호쾌한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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