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사기공화국이라는 얘기를 접할 때마다 필자는 ‘우리나라만 그런가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1년 전 신문에서 우리나라의 사기죄 건수가 일본의 6배라는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참고로 일본 인구는 우리나라의 두 배가 넘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이 된지도 한참 됐는데 죄질이 나쁜 ‘음식 갖고 장난치는’ 사기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
이런 사기의 대부분은 결국 돈 때문에 벌어진다.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양심을 파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이런저런 제도를 만들어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도 양심과 금전적 이익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 ‘남들도 다 하는데 뭐…’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결국 돈을 택한 게 아닐까. 물론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마음도 무뎌지겠지만.
거짓말 37%에서 15%로 줄어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4월 25일자에는 이런 갈등 상황에서 양심이 이길 수 있게 뇌를 도와주는 방법을 소개한 논문이 실렸다. 즉 오른쪽 앞머리 두피에 전극(양극)을 붙이고 약한 전류를 흘려주면 사람이 정직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을 ‘경두개직류자극(tDCS)’이라고 부른다.
스위스와 미국의 공동연구자들은 정직성에 관여하는 의사결정을 할 때 우뇌 배외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경두개직류자극으로 이 부분의 활성을 변화시킨다면 정직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가정하고 실험을 설계했다. 즉 경두개직류자극의 양극이 닿아있는 두피 아래 부분은 활성이 촉진되고 음극이 닿아있는 두피 아래는 활성이 억제된다.
따라서 우뇌 배외측 전전두피질이 양극의 자극을 받을 경우 양심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고 음극의 자극을 받을 경우 돈의 유혹에 더 약해질 것이다.
연구자들은 주사위 던지기 게임을 통해 정직성을 평가했다. 즉 실험참가자가 주사위를 던져 홀수가 나오면 9스위스프랑(약 1만 원)을 받고 짝수가 나오면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전부 10회를 하기 때문에 최대 90스위스프랑을 벌수 있는 짭짤한 아르바이트다. 아무도 볼 수 없고 카메라도 없는 공간에서 참가자들은 주사위를 던지고 컴퓨터 모니터로 결과를 직접 입력한다. 따라서 짝수가 나와도 홀수가 나왔다고 쓰면 ‘건당’ 9프랑을 더 받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눴다. 첫 번째 그룹 47명은 머리에 착용한 경두개직류자극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두 번째 그룹 49명은 두피에 양극이 붙어있고 세 번째 그룹 49명은 음극이 붙어있다. 참가자는 물론 연구자들도 어느 그룹이 양극인지 음극인지 혹은 가짜인지 모른다. 그리고 거짓말 여부도 알 수 없다. 대신 주사위를 던졌을 때 돈을 벌 확률이 50%라는 걸 바탕으로 각 그룹의 정직성을 추론하는 방식이다.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 대조군인 첫 번째 그룹의 성공률(홀수가 나올 확률)은 68%로 기댓값 50%보다 한참 높았다. 꽝인 짝수가 나왔을 때 37%는 홀수가 나왔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는 말이다(참가가자 47명이나 되므로 우연의 일치로 68%가 나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홀수가 나온 횟수에 따른 분포를 보면 열 번 다 홀수라는 사람이 8.5%(4명)로 기댓값 0.1%(1/2의 10승)보다 훨씬 높았다. 홀수가 9회, 8회, 7회라고 답한 사람도 기댓값보다 높았다.
두피에 양극이 붙어있는 두 번째 그룹은 성공률이 58%로 기댓값 50%보다는 여전히 높지만 대조군에 비해서는 뚝 떨어진 값이다. 이 경우 꽝인 짝수가 나왔을 때 15%만이 홀수가 나왔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고 추정된다. 전기자극으로 우뇌 배외측 전전두피질이 더 많이 활성화되면서 정직성이 커진 셈이다. 그럼에도 열 번 다 홀수라는 사람의 비율은 8.2%(4명)로 변화가 없었다. 양심에 철판을 깐 사람(물론 확률적으로 0.1%는 진짜다)은 이정도 전기자극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만일 이 네 사람을 뺀다면 성공률이 54%로 떨어져 기댓값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 된다.
뻔뻔한 사람에게는 소용없어
다음으로 두피에 음극을 붙인 세 번째 그룹으로 ‘예상과는 달리’ 성공률이 67%로 대조군과 비슷했다. 한 77%까지 올라갔더라면 재미있었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두 가지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먼저 경두개직류자극에서 음극은 양극에 비해 인지행동에 미치는 영향이 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미 거짓말의 비율이 꽤 높아 더 이상 나빠질 여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경두개직류자극(양극)을 받았을 때 더 정직해진 것이 정말 개인의 금전적 욕심과의 갈등에서 이겼기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연구자들은 작동하지 않는 전극을 붙인 그룹과 양극을 붙인 그룹을 대상으로 주사위를 던져 짝수가 나온 뒤 입력할 때 느낀 마음의 갈등을 평가하게 한 뒤 그 정도에 따라 둘로 나눴다. 그 결과 갈등이 작은 쪽의 성공률은 가짜 전극이 73%이고 양극이 70%로 경두개직류자극의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반면 갈등이 큰 쪽의 성공률은 가까 전극이 63%이고 양극은 50%였다. 즉 양심에 꺼리는 결정을 할 때 경두개직류자극의 도움을 받으면 정직이 승리한다는 말이다.
경두개직류자극은 뇌에 전류를 흘려보내는 것이라 좀 위험할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까지 어떤 부작용도 보고되지 않았을 정도로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미세한 전류이므로). 이번처럼 참가자 수백 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있는 이유다. 양심과 돈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쓰라고 관공서에 경두개직류자극장치를 비치해 무료로 대여해주는 날이 올수도 있지 않을까.